사랑의 반대말

억울함

by 실버라이닝
갑자기 웬 닭볶음탕이야?
응, 나 이제부터 잘 먹어야 되거든.

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며 술을 주문했다.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그가 소주를 자기 잔에 따르고 내게도 따라줄 때 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 이제 못 마셔. 임신이래.

그가 잔을 내려놓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가 임신 테스트기 결과를 기다리던 몇 초. 딱 그만큼의 정적이 흐르고서야 그가 작게 웃었다.


걱정은 내가 할게. 행복은 네가 해.

임신 테스트기 위로 두 개의 줄이 그어지던 순간, 정체불명의 무게가 심장을 짓눌렀다. 기다렸다는 듯 떠오르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하나하나 자문자답하는 거울 앞. 앞으로 내가 포기해야 할 일과 변화할 삶의 방식에 대한 걱정을 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된 거라는 자책이 밀려왔다. 그렇게 불안과 기대를 구분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건너 마침내 아이가 태어났다.


두 줄이었던 아이는 울음소리와 함께 이 땅에 내려 오사 옹알이로 진리를 전파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스스로 증명하러 왔노니 다만 고통과 기쁨이 늘 함께하리라. 분명 아이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가장 큰 축복이었지만 그 축복을 감당하는 법을 몰랐다. 유일신인 아이, 육아는 종교가 되고 엄마라는 영혼이 충만하게 빛나는 동안 사랑은 앉을자리를 찾지 못한 채 먼지처럼 떠다녔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시간 사이 무언가 비어 있다고 느끼고부터는 슬슬 마음에 녹이 슬기 시작했다.


삶이 설거지 그릇 사이에서 덜그럭거렸다. 나는 도대체 모성애란 없는 걸까. 아이보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만큼 바스러진 나를 향한 연민이 밤마다 멈추지 않는 생리혈처럼 흘러나왔다. 새로운 요리를 알게 될수록 나를 키우는 레시피는 하나씩 사라지고 색을 지우는 표백의 날들만 계속되었다. 모유만 끊으면, 돌만 지나면, 학교만 가면. 자유를 미루는 만큼 사랑은 맥을 잃고 호흡이 느려지는데 이러다 정말 숨이 멎을 것 같은데. 부정적인 말과 눈빛이 그에게 향하는 날들이 잦아졌다. 육아는 불평등하고 사랑의 자리를 채우는 건 온통 피로와 원망뿐이라고. 내뱉는 단어와 내쉬는 숨마다 결혼한 여자의 불만과 억울함이 묻어 있었다.


네가 애 낳고 집에 있었어도 그 승진이 네 거였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