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균형

축하는 못해줘도 사랑은 해

by 실버라이닝

똑같이 숨을 참고 달려왔지만 그의 시간은 계단 위를 오르고 내 시간은 싱크대 구멍을 맴돌며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고 생각하던 저녁이었다. 그의 승진 소식이 쇳소리처럼 날카롭게 가슴에 꽂혔던 건. 부푼 맘으로 왔을 그에게 비꼬는 말을 던지던 밤, 독설 속에 사랑은 없었다. 그날 밤 사랑은 이유와 방법을 모두 잃었다.


그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뒤, 부엌에 혼자 남아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냈다. 축하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의 승진이 꼭 내 사랑을 제물로 얻어낸 축복 같아서?


젠장, 걱정은 둘 다 하고, 행복은 누구도 하지 못하잖아.


무덤 앞에 사랑이 발끝을 내민다. 시간으로 염을 한 사랑. 누워 있는 나무 관에서는 향긋한 술 냄새와 모기향 냄새가 나는데. 너를 죽인 건 누굴까.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말을 걸어보지만 사랑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꼭 그의 꾹 다문 입술 같다.


소주가 반쯤 남았을 때 화는 이미 빠져나가고 없었다. 대신 우리가 원래 어떤 사이었는지 또렷하게 떠올랐다. 함께 마시면 웃음이 먼저 나고,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잔을 부딪치던 밤들. 오늘 밤이야말로 그래야 했는데. 그의 승진을 핑계 삼아 더 늦게까지 마시고, 취한 목소리로 서로를 칭찬하며 즐거워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내가 그 모든 장면들을 스스로 걷어찼다.


내 안의 불균형을 견디지 못해 아무 죄 없는 그에게 던져버린 말들. 내 사랑 게임의 규칙을 몰라 이유도 모른 채 당황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뻐해야 할 밤에 혼자 남겨졌을 그에게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제때 꺼내지 못해서.


관 속에 누운 사랑보다 먼저 숨이 멎은 건 나였구나. 느끼고 실행할 내가 없으니 사랑은 육신을 잃어버린 혼이되어 내내 유랑할 수밖에. 곧 내가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결혼을 하면 눈길이 안으로 향해야 하는데 내 시선이 자꾸만 밖으로 퍼져 나가서. 자꾸 떠오르고 싶은 사람이라서.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엄마가 되고 끝없는 역할에 허둥대다 사랑을 바다 깊은 곳에 빠뜨려 익사시켰는지도 모른다고.


이 깨달음이 제발 늦지 않았기를. 미안해. 나를 다시 찾아와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