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사랑을 발굴하러
다녀오겠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딸이 스터디 카페에 다녀온다며 문을 나서는 일요일 오후 두 시. 창문을 통과한 햇살이 온 집안을 부드럽게 데우고 있었다. 거실 바닥 한가운데 빛이 만든 동그라미 안에 반려견 뽀식이가 배를 대고 눕는다. 유리 어항 속 거북이 두 마리는 할로겐 조명에 등을 말리고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 더미가 온기를 품은 채 쌓여 있고. 소소한 장면들이 조각을 맞추어 완성된 작품명, 평화.
자기야, 우리 둘이 여행 갈까?
소파에 모로 누워 책을 펼쳤다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그에게 무심결에 말을 꺼냈다. 오래전 버스에서 마주친 그에게 소주나 한잔하자고 말했던 날처럼.
큰 싸움 없이 살았지만 평화는 어쩌면 고요한 불만족이 아닐까 걱정이 되던 차였다. 언제부턴가 둘의 술자리가 결론 없이 서로의 불만을 성토하는 자리가 되어 버린 것 같아서. 언어를 바꿔가며 외치는 서로의 이야기가 해석되지 못한 채 심장에 쌓여 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러니 한 번씩 예고 없이 심장이 쥐가 난 듯 단단해질 때가 있었다. 아무리 주먹으로 세게 쳐도 풀리지 않을 때면 실을 칭칭 감아 바늘로 땋고 싶을 정도였다.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와야 비로소 심장이 박동을 다시 시작할 것처럼.
생각해 보면 양팔 저울의 끝에 있던 둘이었다. 자유와 안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 온 시간. 한 명이 달아나면 반대편 사람이 밑바닥으로 추락할 것 같아 서로를 위해 버텨온 건 분명한데. 둘을 그렇게 버티게 한 악력은 과연 사랑이었나. 사랑은 아직 숨을 쉬고 있을까. 확인하고 싶었다. 갑자기 떠오른 곳은 물 맑은 고성. 그래 가자, 묻어둔 사랑을 발굴하러.
아침 10시, 고성에 도착하자마자 둘이 문어 국밥에 소주 네 병을 마신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은 어떻게 됐더라? 일단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밥 앞에서 우리는 이유 없이 웃었고, 문어 초무침을 씹을 때마다 바다 내음이 입안에서 번졌다. 다 먹었는데 오전 11시라니, 아직 하루가 한참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한없이 느슨해졌다. 예전처럼, 소주병이 비워지는 만큼 말은 줄고 웃음이 늘었다.
그러고는 곧장 노곤해진 몸을 바닷가에 나란히 눕혔다. 아침 햇살을 품은 모래가 제법 뜨끈해서 뭉근하게 등을 데워 주었다. 내가 훌라를 추기 시작하자 그가 핸드폰 카메라를 들었다. 취한 탓인지 모래밭에 발이 푹푹 빠져 춤은 엉망이 되었다. 어설픈 손짓과 골반 움직임에 그는 비웃음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번갈아 물에 들어갔다 나오고, 캔맥주를 따서 한 모금씩 나눠 마시는 사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오후 2시. 달궈진 몸을 식히러 숙소로 들어왔다. 편의점에서 산 술과 과자를 조금 더 먹다가 무거워진 몸을 침대에 나란히 눕히니 또 피식 웃음이 난다. 우리가 다툰 적이 있었나, 언제 긴장하며 살았던가. 한 번도 힘든 시간이 없던 사람들처럼 행복한 뻔뻔함이 가득한 침대. 그의 팔이 무심하게 나를 끌어당겼을 때 금세 잠이 들었나 보다.
일어나, 가오리 찜 먹고 싶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