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은 뿅망치로 내리치겠어
“알로하!”
두 번째 훌라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을 신청할 때에는 뜨거운 남태평양에서 신나는 비트에 골반을 세차게 흔드는 훌라를 상상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만난 곡은 바다 절벽 끝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홀로 부르는 세레나데 같았다. 함께 수업을 듣던 사람들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느리고 잔잔한 곡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숨을 헐떡였다. 빨리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버티는 동작은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느리게 추는 게 어려운 건 실수하는 동작이 더 잘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의 손끝 발끝 하나가 온 천하에 다 생중계되는 느낌이었다.
“손 끝에 힘을 빼보세요. 훌라 핸즈에 힘을 빼는 날 진짜 훌라댄서가 되시는 거예요.”
때로는 파도 위에 손을 올려놓는 기분으로, 때로는 파도를 달래려 어루만지는 기분으로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돌 틈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처럼 마음에 작은 여유가 생겼다. 조금씩 아는 동작이 많아지면서 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사에 귀를 기울이니 몸이 가사를 따라갔고 절로 박자가 맞았다. 춤을 추며 가만히 해변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는 상상을 해보았다. 생각해 보면 바다는 빠른 비트보다 느린 비트가 어울렸다. 철썩! 한 번씩 부서지는 파도의 박자를 떠올렸다. 내가 움직이는 스텝이 지금 딱 그 속도였다. 훌라는 내 안의 파도를 꺼내는 춤이라고 했던가. 천천히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몸을 움직이자 훌라핸즈를 따라 내 마음이 일렁였다. 물결을 타고 손끝으로 마음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문득 마음을 졸라맸던 코르셋이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최근 몇 년간 나를 힘들게 했던 증상이 드디어 고쳐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난 건 동생이 죽고 1년쯤 되었을 때였다. 둘째를 임신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숨이 차기 시작했다. 임신해서 그런 거려니 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와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호흡은 점점 더 거칠어졌고 100미터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숨이 찼다. 다음 호흡이 준비되기 전에 호흡이 찾아오는 과호흡은 스스로 숨을 쉴 수 없게 했다. 나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 도서관 직원에게 부탁해 119를 불렀다. 사무실 바닥에 누워 119를 기다리는 5분 동안 내가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재미있는 건 그 순간 죽으면 동생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죽음이 두렵지만은 않았다. 119가 도착하고 구급대원은 내 몸상태를 몇 가지 빠르게 점검했다 그런데 내 몸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호흡도 맥박도 산소포화도도 정상이었다. 나는 죽을 것 같은데 몸의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그 순간 구급대원이 말해주었다.
“일단 다니시는 산부인과에 가셔서 진료를 받아보시고요. 이상이 없으시면 공황장애 관련 검사를 받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전에도 이런 증상이 있으셨나요?”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가 이런 것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수치로는 정상이지만 숨을 쉴 수 없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병. 그리고 몇 달 후 다시 증상이 나타났다.
딸의 리듬체조 공연장에 가는 길이었다. 그때는 한 번의 경험이 있었기에 30분만 참자고 스스로를 달래며 버텼다. 이제 막 1학년이 된 딸은 리듬체조 대회로 가는 내내 설렜다. 아이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며 심호흡 한 번, 운전기사님이 운전하시는 핸들을 눈으로 따라가며 심호흡 두 번, 지나가는 차들을 세어보며 심호흡 세 번. 그렇게 20여분이 지나니 쪼그라든 뒷머리가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이마와 손에서 식은땀이 나고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다행히 증상이 다 지나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집에 돌아와서 병원에 가봐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내 증상의 원인은 명확했고 동생은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하기에 나는 스스로 극복해 보기로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했다. 가족 모두 잠든 밤에 혼자 식탁에서 울기도 하고 술에 취해 친한 친구에게 전화해 동생이 보고 싶다고 술주정을 부리며 조금씩 아픈 상처를 흘려보냈다. 그 후로 한동안 괜찮았는데 아주 오랜만에 다시 증상이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 찾아온 녀석은 동생 때문이 아니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다.
“엄마, 나 엄마 공황장애 약 좀 빌려 줘.”
방에서 컴퓨터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증상이 나타났다. 이번엔 느낌이 강했다. 최근에 엄마가 공황장애 약을 처방받으신 게 기억났다. 증상이 나타날 때 급하게 먹는 약이라고 했다. 증상이 같으니 내가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엄마에게 전화로 겨우 약을 달라고 이야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엄마가 공황장애 환자라 다행이야.”
엄마를 향해 피식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고 얼른 약을 삼켰다. 30분 후 긴장이 풀린 나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축 쳐진 몸으로 다시 출근했다. 그날도 일이 산더미였다. 해야 할 일 목록을 적으니 10개쯤 되었나 보다. 갑자기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학원 수업에 새로 시작한 온라인 플랫폼 수업 론칭 일이 겹쳐 빨리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한가득이었다.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시간이 30분이나 지난 걸 알고 마음이 더 급해졌다. 어젯밤 나를 괴롭혔던 증상의 원인을 찾았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조급증에 더해진 불안감이 현실의 벽 앞에서 화장실 급한 아이처럼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예전에 같이 일했던 원장님이 생각났다. 강남에서 오랫동안 영어학원을 운영하시다가 제주에 내려가서 도시락 사업을 하고 계신 분이었다. 내가 말단 강사시절 나를 애정으로 돌봐주시고 늘 개인적으로 챙겨주신 분. 종종 안부전화를 주시고 나도 보고 싶으면 한 번씩 전화를 드리는 사이였다. 그분께 갑자기 전화를 하고 싶었다.
“여보세요? 원장님 저예요. 잘 지내시죠?”
수화기 건너 원장님의 온화한 미소가 느껴졌다.
“선생님, 안 그래도 전화 기다렸어요. 요즘 많이 힘드시죠?”
SNS로 나를 지켜보고 계시던 원장님은 최근 내가 많이 걱정되었다고 했다. 너무 바쁘게 지내는 내 모습이 기특하기보다 안타까우셨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으셨단다.
“선생님,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세요. 큰일 날 거 같죠? 그런데 아무 일도 안 생겨요. 괜찮아요. 다 안 해도 괜찮아요. 빨리 안 해도 괜찮아요. 몇 개 안 해도 돼요. 못하는 건 포기하고 부탁도 거절해요. 그리고요 가족들에게 말하고 하루만 혼자 조용히 여행 다녀와 보세요. 멀리 가도 좋고 가까운 곳도 좋아요.”
통화를 끊고 다시 해야 할 목록 리스트를 점검했다. 오늘 꼭 안 해도 될 일, 양해를 구하고 취소할 수 있는 일, 거절을 못해서 일단 하겠다고 한 일을 하나씩 지웠다. 그리고 여행 계획을 잡았다. 난 내 병을 고쳐야 했다. 한번 놀랐던 심장은 조금만 조급해지면 그때 받은 충격으로 착각하고 움츠러들며 숨을 멈추려 하는 듯했다. 내 심장을 살살 달래 줄 시간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오랫동안 점찍어둔 북스테이 책방지기님께 연락했다. 혼자 운전을 하며 북스테이로 가는 길은 내내 막혔지만 차가 도로 위를 밟지 않고 공중부양을 하는 기분이었다. 남들은 나를 빠르고 실천력 강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내 속도는 그날 북스테이로 가는 차의 속도였다. 고속도로보다 구불구불 느리게 주변을 구경하며 가는 국도의 박자. 정상을 향해 치닫는 등산보다 온갖 나무와 바위틈 이끼 보는 산행의 리듬이 맞는 나인데 그동안 너무 빨리 내달렸다. 책방에서 혼자 느긋한 하루를 보내고 아침에 책방지기님이 내려주신 커피를 들고나갔다. 멀리 산자락이 보이는 마당에 서서 기나긴 호흡을 했다. 아주 오랜만에 온몸이 느리게 숨을 들이마시었다가 내쉬었다. 심장이 적당한 속도로 톡톡 노크하듯 안부를 전했다.
그날 깨달은 내 마음의 비트를 느린 훌라곡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책방은 매일 갈 수 없지만 훌라는 언제고 내가 추면 되니 드디어 내 속도에 맞는 약을 찾은 셈이다. 느리게 살아야지 하다가도 관성으로 자꾸만 빨라지던 나에게 내 속도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느린 곡이라고 해서 쉽지 않죠? 해보시니 어떠세요?”
“전 이번 곡이 너무 좋네요. 제 몸이 딱 이 박자에 맞는 것 같아요.”
내 말에 훌라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훌라에도 여러 비트가 있는데 자기 심장의 비트에 맞는 곡을 좋아하게 된다더라고요. 정은님의 심장의 비트는 이 박자인가 봐요.”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다시 한번 느린 훌라곡을 들으며 다짐했다. 집에 가고 수업을 하더라도 서두르지 않기로. 조급증이 다시 고개를 쳐들면 두더지 뿅 망치처럼 내리치고 훌라를 추기로 말이다. 그렇게 여전히 느리게 살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할 것임을 안다. 느리게 산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유연성을 발휘하며 살아내겠다는 결심이었다. 끌려다니는 삶은 내가 준비되지 않은 채 출발하고 속도를 올려야 한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추지 못하면 숨이 가쁘고 심장에 무리가 오는 법이다. 그러니 훌라를 춘다는 건 내 가쁜 삶에 잠시 쉼표를 찍고 나만의 이야기를 쓴 다음 느낌표를 찍겠다는 선언이다. 이 시간이 없으면 내 인생이라는 글은 쉼표 없이 기나긴 문장을 나열해서 읽는 사람이 숨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
알로하
- 안젤라
지하철 2호선
이어폰에서 와이키키의 파도가 흘러나와
사람들 사이를 넘실댄다
잠실새내역 어느 지하 연습실
회색 트레이닝복 대신
하얀 플루메리아 꽃을 머리에 꽂고
무지개색 파우를 입는다
말로 차마 꺼내 보지 못한 마음
손끝에 담아
파도 위를 떠다닐 때
거울 속
내가 나에게 보내는 미소는
도돌이표가 되어 끝없이 이어진다
서두르지 않고
춘다
느리게 느리게
훌라춤을 추기 좋은 날은
아직
많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