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민이 뭐였더라?
끝이 없이 돌아오고, 안 할 때만 티가 나는 집안일은 나에게는 도대체가 맞지 않았다. 누가 태어날 때부터 집안일 체질이겠냐만은 나는 유독 정리정돈에 약했다. 굳이 체질이나 기질을 따지자면 몽상가 쪽에 속했다 그런 나에게 냉장고 정리를 하고 철마다 옷정리를 하는 일은 컴맹이 해킹을 하는 것처럼 머리가 복잡해졌다. 시작 전부터 짜증이 나고 그렇게 내 시간을 두세 시간씩 보내기 속상했다. 요리에도 영 재미를 못 붙였다. 장 보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가격비교를 하지 않고 예쁘고 신선해 보이는 걸 사는 나를 보며 남편은 늘 안타까워했다. 그런 나에게 포인트나 쿠폰사용은 제2외국어나 다름없었다.
“제 돈 주고 햄버거 먹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야. 제발 쿠폰 좀 사용해.”
워낙 꼼꼼한 남편이 가계부를 쓰며 집안 제정을 관리했다. 나는 특별한 지출 계획이 없는 스타일이었다. 그저 덜 쓰고 덜 입되 정말 필요한 것만 사자는 주의였다. 정말 필요한 것은 대개 책이나 캐릭터 학용품, 여행지에서 파는 기념품, 하나밖에 없는 굿즈들이었다. 남편은 늘 가격을 물어봤고 나는 가격을 몰라 대충 둘러대곤 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고들 한다. 이런 성향의 내가 살림을 하려니 늘 집안은 어수선했다.
해가 쨍하고 바람이 부는 어느 봄날 이웃집 엄마는 이불 빨래하기 너무 좋겠다며 신나 했다. 나는 강원도 바다에 가기 딱 좋은 날인데 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이가 등교를 하자마자 대충 집정리만 하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차로 10분쯤 가면 멋진 풍경이 있는 카페가 있었다. 아이와 내내 붙어 있다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첫날 몇 년 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을 때 모비딕을 들고 달려갔던 곳이다. 친정 엄마가 옆에서 그런 나를 보며 한마디 했다.
“내가 딸을 낳았는 줄 알았더니 선비를 낳았어. 쟤는 옛날에 태어났으면 한량이 됐을 거야.”
“프레드릭! 나는 프레드릭으로 태어났는데 엄마가 되어서 그래. 프레드릭처럼 계절의 색과 냄새를 모아서 시를 써야 하는데! 내가 지금 알타리를 절일 때가 아니라고!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처럼 꽃향기를 맡으러 나갈 거야!”
가족에게 나를 그렇게 선언하고 나는 시간만 나면 카페로 책과 노트북을 들고나갔다. 옆에서 함께 노트북을 두드리는 젊은 남녀들의 모습에서 에너지를 받았다. 나도 곧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안일을 하는 것 자체도 피곤했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은 내 영혼에 몸살감기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긴 시간 몸살을 앓고 있었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진통제를 맞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총천연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화관을 두른 채 환하게 웃는 지인의 사진을 보았다.
샘, 이게 뭐예요?
훌라요! 하와이 전통춤 훌라!
순간 전율이 흘렀다. 그녀의 대답만으로 나는 하와이로 순간이동을 했고 귓가에 하와이 음악이 울려 퍼졌다. 우쿨렐레 소리에 맞춰 야자수 아래에서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훌라를 추는 내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인스타그램을 뒤져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는 수업을 찾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첫 수업을 하러 갔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시간마저 나에게는 온통 힐링이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 오직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로 귀부터 뇌로, 가슴과 온몸을 채운다. 내가 좋아하는 비오의 음악을 듣다가 욕이 나오는 쇼미 더 머니의 랩을 듣는다. 거의 도착할 즈음에는 오늘 배울 곡을 들으며 온몸을 나른하게 풀어준다. 사실 이때쯤부터 아까 집에서 가졌던 불안과 짜증, 걱정스러웠던 마음은 잊은 지 오래다.
알로하! 안녕하세요!
입이 귀에 걸리고 눈은 보이지 않을 정도도 감겨 갈매기 모양을 한 채로 환하게 웃는 선생님께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모두들 나만큼이나 어색해서 선생님이 주신 꽃핀을 그저 만지작만지작하며 무용연습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마지막 수강생이 어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자 곧 수업이 시작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각자의 고민을 한 보따리 싸서 온다고 했던가. 훌라를 추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존재의 이유를 찾으러 모였다.
왜 훌라를 추고 싶으세요?
춤이라는 이유로, 그것도 관광지의 대명사 하와이 춤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훌라를 춘다는 건 마치 세상 걱정 하나 없는 이들이 모여 유희를 즐기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각자 존재의 이유를 찾고 치유를 하러 온다.
그동안 일만 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 이직 준비하면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하고 있어요. 훌라도 예전에 한번 보고 너무 멋져 보여서 한번 해보고 싶다 생각만 했는데 우연히 여길 알게 되어 너무 기뻤어요.
퇴직하고 오십견도 오고 한동안 많이 아팠는데 이제 좀 움직일 수 있어서요. 춤을 배워보고 싶은데 훌라는 좀 덜 격정적인 거 같아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우연히 선생님 인스타를 봤는데 미소가 너무 평화로워 보였어요.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웃어본 적이 없었는데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하고요. 저는 미소가 제일 어려워요,
직장 이직 이면에 깔려 있는 자신의 열망과 비전에 대한 진지한 고민. 퇴직 후 제2인생을 설계하는 시점에서 아픈 몸을 달래며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가는 길. 엄마로의 삶이 버겁고 부담스럽지만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져 쉽게 하소연하기 힘든 엄마의 우울함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연령에 맞는 고민을 하나씩 들고 와서 보따리를 풀었다. 그나저나 이제 이 고민들을 어찌한담? 육아전문가 선생님이 와서 30대 40대 50대 금쪽이들에게 시원한 해결책을 주시지는 않을 테고. 우리는 그저 훌라 음악에 맞춰 허리와 발끝을 세우고 어깨를 폈다. 그리고 전면거울을 향해 미소를 짓고 오른쪽으로 첫 번째 스텝을 밟았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다 같이 거울을 보며 웃기 시작한다. 나를 가까이서 지켜본 한 작가님이 알아채 준 나의 미소. 행복하고 싶다. 행복하고야 말겠다. 웃다가 머릿속에서 지금 동작과 다음동작이 뒤섞인다. 옆사람 동작과 내 동작을 비교하다가 둘 다 선생님 동작과 다른 걸 알고 움찔한다. 그 사이 음악은 이미 그다음 동작으로 넘어가 있다. 혼자 반대방향으로 돌다가 옆사람과 마주쳐서 깔깔깔. 혼자 손을 잘못 들어서 부끄럽게 호호호. 우리가 실수할 때 웃는 웃음이 가장 예쁘다고 하는 선생님 말에 한번 더 웃는다.
수업이 끝나고 다시 모여 앉아 인사를 나눈다.
오늘 어떠셨어요?
땀이 쫙 나니까 아까 아팠던 곳이 좀 나은 것 같아요. 감기기운이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훌라는 쌍화탕이군요!
쌍화탕이라는 말에 다 같이 공감하며 시원하게 웃는다. 그리고 한 시간 반 전에 우리가 고민했던 일들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한들 바뀔 것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럴 시간에 이렇게 훌라를 추었으니 인생 앞에서 대범해진 우리가 참 기특해진다. 훌라라는 쌍화탕을 한 사발 마신 우리는 그렇게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고민들을 땀에 흘려버린다. 개운한 마음으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다시 집으로 향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기’라고도 하고 ‘혼‘이라고도 한다. ‘기운이 없다’ ‘혼이 나갔다’. 모두 나를 위한 에너지가 없을 때 하는 말이다. 인디언들은 번아웃이 올 때 내 영혼이 길을 잃었다고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영혼이 나를 찾아올 때까지 시간을 주고 기다려준다고 한다. 훌라를 추는 시간은 나에게 바쁜 육아와 일 사이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잠시 기다려주는 시간이다. 한 시간 반동안 추고 나면 몸은 힘들지만 기운이 난다. 혼이 들어온다. 몸에서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가고 그 공간을 행복이 채운다. 그 공간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