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헤는 밤

잠과 점

by 실버라이닝

세탁이 다 된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 건조기에 넣자 윙윙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만 조용히 들린다. 지금은 밤 11시 41분. 10분 전까지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었다. 잠이 오지만 잘 수 없다. 누가 자면 안된다고 붙잡는 것도 아닌데 나는 잘 수 없다. 나만의 고요한 이 시간을 흘려버리기 아깝기 때문이다.



“아 졸려. 잠을 거의 못 잤어.”
“얘는 맨날 못 잤대.”



엄마가 되고나서 아침에 눈 뜰 때부터 밤까지 내내 졸리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가족들은 아이가 잠이 들면 바로 자면 되지 않냐고 타박했다. 그들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가 잠이 들면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았다. 아이와 함께 ‘엄마’는 분명 잠이 들었지만 그 순간 ‘나’라는 존재가 기지개를 켰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그 시간이 좋았다.



책을 읽거나 자격증 과정을 검색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 한 시였다. 그제야 다음 날 육아와 살림을 위해 빨리 자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기 시작해 자려고 누워보지만 때를 놓치니 잠이 더 오질 않았다. 그렇게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는 날들이 계속되었고 나는 늘 졸렸다.


비슷한 일은 낮에도 반복되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 같이 자면 될 텐데 나는 또 집안일을 미리 해 두고 싶었다. 그래야 밤에 나만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일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는 나에게 동네 동생이 한마디 했다.


“언니는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 이 언니 세 쌍둥이설 있잖아. 사실 한 명이 아니라며. 그렇지 않고서는 그 스케줄이 감당이 되냐 이 말이지.”



그 말을 듣고 대답은 못하고 그냥 씩 웃고는 돌아서는 길에 혼자 속으로 읊조렸다.


“뭔가를 그리고 싶은데 지금은 재료도 없고, 그릴 시간이 없어서. 일단 점을 많이 찍어두려고 해.”




나에게 엄마란 어차피 통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일도 통으로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쪼개진 시간만 허락되는 육아의 시기를 나는 쪽잠처럼 쓰기로 했다. 육아의 사이사이, 그리고 잠을 줄여가며 강의를 듣고 자격증을 땄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함께 자기 계발서를 읽고 글을 쓰며 하루하루 점들을 찍어 나갔다. 그래도 수유시절 수유 사이사이에 강의를 하던 것보다 훨씬 살만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고 때가 되었을 때 선을 긋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고 자연스럽게 통잠자는 시간이 늘고 일할 수 있는 시간에도 여유가 생겼다. 어린이책 번역가 과정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원, 그림책 탐구가 과정 모두 내가 짬짬이 찍어둔 점들이었다. 이제 그 점들을 하나씩 이어보았다.



그 모든 과정은 그림책을 보는 눈과 영어수업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엄마들과 선생님들의 경험담은 좁았던 나의 시야를 넓히게 해 주었다. 나의 세계에 갇혀 살던 나는 타인의 시선으로 영어교육의 일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영어강사에서 영어교육 상담가로 성장하고 있었고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저 열심히 점을 찍었을 뿐인데 그동안 여러 번의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었고 자신있게 나만의 콘텐츠로 영어학원을 열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만의 교육철학으로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학부모님을 상담하고 있는 것은 모두 수없이 점을 헤던 그 밤들 덕이다.


점 하나에 글하나

점 하나에 졸음 하나

점 하나에 다크써클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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