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기 위해
“정신병원에 갈 확률이 높은 사주네요.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고,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겠어요. 이런 사주는 보통 예술가가 돼야 오래 사는데 공부를 하셨네요?”
20대 중반에 만난 철학관 교수님이 나의 사주를 풀어주며 꺼낸 말이다. 머리에 물이 많아서 현생과 저 세상의 중간쯤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예지몽도 잘 맞는 사주란다. 동생의 사고가 있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여러 번 예지몽을 꾸었다. 그나저나 정신병원이라니. 가끔 농담으로 똘끼충만한 편이라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이렇게 차분하고 전문적으로 평가를 받으니 정식으로 나에 대해 고찰해봐야겠다 싶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뮤지컬 배우나 글작가, 현대미술 작가들을 흠모해 왔다. 학창 시절 가끔은 내가 공부를 잘 못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자만심 가득한 가정을 해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소질은 없었고 그저 묵묵히 읽고 생각하고 이해한 다음 외우면 되는 공부가 나는 제일 쉬었다. 공부를 즐겼고 성적도 잘 나오는 편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가끔 생각했다. 만약 내가 공부를 못했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일과 육아를 오가며 정신없게 살며 질문은 잊혀지는 듯 했지만 다행히 육아의 중심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 날이 찾아왔다.
그 날이 오기까지 시작점은 결혼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다 보니 결혼 전부터 많은 어머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인성도 바르고 영어실력도 좋은 아이들 어머님과의 상담시간은 나에게도 유익했다. 나중에 결혼하면 써먹으려고 열심히 새겨들었다. 여러 상담을 통해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내가 손으로 꼽는 바르고 멋지면서도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의 어머님은 일을 하시든 하지 않으시든 모두 제1순위로 꼽는 육아관이 있었다. 바로 잠자리 독서였다. 나는 예민하긴 하지만 디테일하게 챙기는 건 잘 못하는 체질이라 육아관에 대해서도 굵은 중심만 잡기로 했다. 잠자리 독서를 중심으로 자연 속에서 낭만을 즐기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꿈을 가졌다.
첫 아이를 낳고 하루 종일 큰 소리로 떠드는 일을 하고 오면 지칠 대로 지쳤지만 아이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주었다. 직업이 어린이 영어강사이다 보니 감정을 넣어 읽고 집중시키는 건 내 특기였다. 아이는 엄마와 책 읽는 시간을 사랑했고 밤마다 읽고 싶은 책을 탑처럼 쌓아 놓고 엄마를 기다렸다. 큰 아이가 7살이 되던 해 둘째를 낳았다. 둘째에게는 더 적극적으로 그램책을 읽어주었다. 첫째 때에는 다른 엄마들처럼 유명한 책 위주로 읽어주었는데 둘째는 낳고는 그림책 탐구가 과정을 들으며 조금 더 전문적으로 책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러니 읽어주는 나도 더 즐거웠다. 2층 침대에 한 명씩 눕혀놓고 책을 읽던 밤들이 나에겐 그 어떤 영화보다 아름답게 기억되어 있다. 유치할 텐데 첫째도 동생의 그림책을 좋아했다. 자기가 동생 나이였을 때 엄마가 읽어주던 목소리가 생각난다고 했다. 얇은 책을 읽어 줄 땐 하루에 한 권, 긴 문고판을 읽어줄 땐 일주일 동안 조금씩 나누어 읽어주곤 했는데 아이들이 어느 날 끝까지 다 읽어달라고 할 때면 두 시간씩 읽어주기도 했다. 플란다스의 개를 읽었던 날이 그랬다. 아이들과 나 모두 눈물을 닦으며 책을 덮었다.
코로나가 극심했던 시기 내가 처음으로 확진자가 되었다. 둘째는 엄마와 떨어져 자는 게 처음이었다. 이틀 후에 확진자가 되어 안방으로 들어오던 아들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나도 걸렸대! 엄마랑 같이 잘 수 있는 거지? 나 그리고 어젯밤에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가 읽어주던 그림책 안고 잤어.”
그림책을 볼 때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가 그리우면 그림책을 떠올리게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그림책이 주는 위로를 아이에게 알려주었으니 나의 육아는 이미 90프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림책이 위로를 준건 내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림책을 읽어주며 어린 나와 만났다. 댄 야카리노의 '금요일엔 언제나'를 읽었던 날은 아빠와 걷던 길이 생각나 펑펑 울었고, 미야니시 타츠야의 '영원히 널 사랑해'를 읽을 땐 하도 울어서 아들이 내 눈에 띄지 않게 책을 숨겨두기도 했다. 장현정의 '그래봤자 개구리'를 읽으며 함께 시원하게 분노를 터뜨리고 나를 추켜세워줬으며 다비드 칼리의 '완두'를 읽을 땐 나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함께 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인생의 그림책을 만났다.
레오 리오니의 책 표지에 쥐 한 마리가 바위 위에 서서 꽃 한 송이를 들고 여유 있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봄, 여름, 가을에 다른 쥐들은 열심히 일을 하는데 주인공 쥐는 혼자 일을 하지 않고 햇빛을 쬐고 있었다. 친구들이 일 안 하고 뭐 하는 거냐고 묻자 햇빛을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언뜻 보면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같지만 결론이 다르다. 겨울이 되어 친구들이 모은 음식을 다 먹고 굶주리고 피폐해져 있을 때 주인공 쥐가 나타난다. 바위에 올라가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그동안 모아 온 햇빛과 색으로 아름다운 시를 지어 들려준다. 쥐의 이름은 바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프레드릭'이다.
‘아! 프레드릭! 나는 프레드릭이었어! 그때 그 철학관 교수님이 말한 모습. 이게 나였어!’
일을 하긴 하지만 늘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나.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고만 생각하고 나를 자책하며 일과 나의 책임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는데 내가 원한 건 현생의 일들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일상에서도 친구들과 다른 포인트에서 감동을 받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뽀로로를 보다가 대성통곡을 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그냥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일상의 모든 곳에서 통증과 환희를 느끼곤 했고 그것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었다. 생업과 병간호에 치여 감상을 할 틈이 없다보니 짧은 시간에 극렬한 감상을 느끼기 위해 술에 잔뜩 취하기 일쑤였다. 가끔 보는 영화나 책을 통해 공감을 얻곤 했지만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았던 인생이었다. 나는 정신병원에 갈 수도 있는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프레드릭을 만나고 프레드릭인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작가도 되고 싶고 화가도 되고 싶었다. 나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댄서가 되고 싶었고 나의 한계를 시험해 보는 운동선수도 되어보고 싶었다. 다시 태어나면 가수가 되어야지, 외국에서 태어나면 화가가 되어야지, 키가 큰 사람으로 태어나면 댄서나 운동선수가 되어야지. 생각해 보니 나의 꿈에 대해 늘 과거형이 아니면 가정법으로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현재형과 완료형으로 꿈을 이뤄보고 싶어졌다. 다음 생까지 미룰 게 뭐가 있을까? 게다가 이번 생에 그 기질을 타고났다는데, 그 기질을 풀지 못하면 정신병원에 갈 수도 있다는데 말이다.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을 때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두드리면 열린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하지만 한 번에 열리지 않고 곧바로 길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방향을 그쪽으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책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이 있으면 참여하기 시작했고 내가 읽은 책 저자의 북토크 강연도 열심히 따라다녔다. 머나먼 이야기 같은 일이 아주 조금씩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실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어느샌가 나 역시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공감받지 못했던 나의 미세한 감정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공감되는 곳. 한 쪽눈으로 살아온 내가 드디어 외눈박이 행성에 도착한 것이다. 어느새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나와 같은 외눈박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프레드릭처럼 계절의 단어를 모아 각자 생의 시를 읊고 있었다.
그리고 언어로, 그림으로,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생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하던 어느 날 훌라를 만났다. 프레드릭을 만났을 때의 전율이 흘렀다. 말할 수 없는 깊은 환희를 머금은 미소가 나의 마음을 홀렸다. 온몸이 간지러웠고 안달이 났다.
“훌라 출 때만큼은 여기가 와이키키라고 생각해 주세요! 제가 ‘훌라 출 땐 여기가’하면 여러분이 ‘와이키키’ 하시는 거예요. 훌라 출 땐 여기가”
“와이키키~!”
와이키키에 간 프레드릭. 드디어 이번 생에 나의 정신병적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