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inity Lee Jul 11. 2022

답 없는 수학 성적

최저 3점, 최고 30점

첫째 아이 민돌이는 고2, 둘째 예순이는 중2이다.(아이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가명 사용합니다)


첫째 아이는 모든 면에서 실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첫째 아이 민돌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1년 동안 나도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 곁에 머물렀다. 공교육에 몸 담고 있는 교사로서 내 아이만큼은 사교육 없이 엄마표, 학교표 교육을 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같이 공부해보자고 아이를 달래느라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아이를 책상에 앉히지만 울음으로 끝났다. 오늘은 잘 가르쳐보리라 다짐하면서 아이 옆에 앉았다가 아이 등짝을 때리는 걸로 끝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사교육 금지 기간에 학창 시절을 보낸 덕분에 나는 사교육 없이 모든 공부를 해결했다. 

내 머리로도 해결한 수학을, 그것도 초1 수학을 왜 이렇게 헤매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나긋한 목소리로 시작된 수학 공부가 윽박지르는 걸로 끝내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러다가 아이와 원수가 될 것 같았다.


크게 결단을 내렸다. 수학 공부는 학교에 맡겨두기로... 그리고 나는 이 휴직기간 1년을 아이와 추억 쌓는 기간으로 삼기로 했다. 한 마디로 수학 가르치기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시근이 들면 자기가 하겠지...


2학년이 되자 지필고사가 시작되었다. 민돌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시행되었다. 당시 부산에는 지필고사를 시행하는 학교도 있고 안 하는 학교도 있다는 소문이 들렸는데, 민돌이네 학교는 시행했다. 첫 시험에서 수학을 12점을 받았던 것 같다. 나머지 성적도 형편없었다. 나름 유능한 교사라고 자부하는데, 내 아이가 이렇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를 유심히 관찰해보았다. 체육공원에 데리고 가면 처음 보는 운동 기구, 다람쥐 통 위에 올라가 손잡이도 잡지 않고 다람쥐 통 위에 서서 발을 굴렸다. 놀이터에서 각종 쇠뚜껑으로 장식된 돼지 모형에서는 뚜껑을 얼마나 리듬감 있게 두드리는지 주변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을 했다. 자전거로 요리조리 장애물을 피하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8~9살 꼬마의 몸놀림이 제법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예회에서는 남진의 '님과 함께'에 맞춰 멋들어지게 춤을 췄다. 그 신명에 반 아이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 함께 춤을 추었다. 다른 엄마들이 '아이를 어쩜 저렇게 적극적인 아이로 키웠냐'라고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머리에 있어야 할 뇌가 온 몸에 퍼져 있는 아이 같았다. 몸을 너무나 잘 쓰는 아이였다. 나머지는 너무나 더뎠다. 피아노를 보냈는데 도레미파솔라시도 악보를 보고 8 음계를 읽는데 1달이 걸렸다. 그 기간이 너무 지루하다고 1달 만에 그만두었다. 


초등학교 수학 성적은 계속 엉망이었다. 3점을 받아온 날도 있었다. 100점이 만점이다. 

나는 3점 엄마다. 

스스로 별명을 붙였다.

정 안 되면 사교육으로 따라잡으면 되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때쯤 되니 중학교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학교 앞에 수학학원에 보냈다. 주위 엄마들의 만족도가 대체로 좋은 학원이었다. 선생님도 시험 기간에는 아이를 주말까지 불러서 공부를 시켰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3점 엄마였다. 잘하면 10점대를 받아왔다. 결국 1년 반 만에 그만두었다. 학원 선생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렇게 가르치는데도 성적이 안 오르니.... 선생님도, 아이도 안쓰러웠다.


중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지인이 동네에서 잘 나가는 수학 과외 선생님이었다. 큰 맘먹고 비싼 돈을 지불하고 과외를 부탁했다.

아이는 숙제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선생님은 열심히 설명하는데 '나는 여기에 존재해줄 뿐이다.'라는 태도로 앉아있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모르겠는데요...'라며 몸을 비튼다.

수업이 마치고 나면 '이 순간에 여기에 존재해주느라 너무 힘들었다'라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피곤함을 주장한다.


아예 수학을 포기했다. 이렇게 수학을 잡고 있는 시간에 다른 과목을 올리는 게 더 나아 보였다. 고2인 민돌이는 지금도 돈 계산을 할 때 덧셈 뺄셈이 잘 되질 않는다. 휴대폰에 전자계산기 기능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사족.

악보 보는 게 너무나 느렸지만, 몸 쓰는 데는 특출 났던 민돌이는 지금 예고에 다닌다. 악보 보는 건 더뎠지만 악기 연주에는 소질이 있었던 탓이다. 음악성이 있는 아이라는 평을 듣는다. 심지어 예술 영재다. 3점 엄마와 예술 영재 엄마 사이에는 많은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지만... 이 글은 사실 우리 둘째 예순이 이야기를 하려는거라서 쓰지 않기로 했다. 쓴다고 하더라도 '이거 다 말하면 책 한 권은 나온다'류의 구구절절하면서도 어느 집이나 다 있을 법한 사연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