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 예순이는 첫째 아이 민돌이와는 판이하게 다른 아이다.
민돌이는 매일 아침 학교를 늘 데려다주고 데려고 와야 했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인기가 많은 데다가 무대 체질이면서도, 겁이 많았다. 학교 후문으로 등하교를 했는데, 학교 정문에서 만나자고 해도 겁을 먹었다. 학교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나면 친구와 조잘조잘거리면 잘 가면서도 엄마가 뒤에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10월이 되어서야 혼자 등교할 수 있었다.
둘째 아이 예순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도 나는 육아휴직을 했다. 중요한 시기이니만큼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싶었다.
예순이의 야무짐에 혀를 내둘렀다. 학교 준비물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날 미리 챙기고, 숙제도 미리미리 했다. 가정통신문 배달률도 100%였다. 준비성은 교사 엄마인 내가 봐도 100점이었다. 첫째 아이 민돌이는 매일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는 바람에 아래층 눈치를 보느라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둘째 예순이는 1학년 입학 첫날부터 모범생 포스 뿜뿜이었다.
그런데 낯을 많이 가리고 친구들에게 말을 안 붙였다. '같이 놀자' 한 마디가 입에서 안 떨어지는 아이였다. 학교에서도 말도 잘 안 하고 잘 어울리지도 않으며 쉬는 시간에도 가만히 앉아 책만 본다는 소문이 들렸다. 걱정스러웠다. 아이의 성격인 건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데도 용기가 없어서 저러는 건지... 아이에게 캐묻기도 어려웠다. 엄마의 걱정이 얼굴 표정에 드러나서 아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마음이 쓰였다.
우리 예순이 같은 아이를 둔 학부모가 나한테 상담을 해온다면 난 어떤 조언을 해줄까. 아마 아이를 잘 관찰해보고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도록 이끌어보라고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나는 답이 없다. 남의 문제는 답이 너무 잘 보이는데 내 문제에는 답이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첫째 아이 민돌이 때처럼 또 크게 결단을 내렸다.
시근이 들면 친구들 잘 사귀겠지... 아무렴 지가 평생 저렇게 살겠냐...
그러고는 애써 아이의 내성적인 학교생활을 외면했다. 아이와 추억 만들기에 골몰했다. 같이 놀러 다니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면서 아이와 즐겁게 보냈다.
위대한 학자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혼자 놀고 그랬대잖아. 우리 예순이도 그런 면이 있어서 그럴지도 몰라.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큰 인물이 될 아이일지도 몰라...
그래도 공부는 곧 잘했다. 칭찬을 하면 더 열심히 했다. 내성적인 거 빼고는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