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inity Lee Jul 08. 2019

너의 까만색을 인정하마

나는 자식 해봤다. 너는 부모해 봤냐.

이 아이는 내게 까만색이다.

자기를 숨기고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 표정마저 묵묵부답 까만색이다.

내가 다 알아서 할 거야. 좀 놔둬.

장막을 한 겹씩 치더니 이제 제법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중2.

까만 베일을 걷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베일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들 때면 억지로 심장에 눈가리개를 씌운다.

까만 애는 어제와 오늘 창원야철전국국악대전에 나갔더랬다. 대회라는 게 처음이었다.

예선을 마치고  결과판을 들여다보더니 내게 다가왔다.

'엄마, 나 예선 떨어졌어. 내 이름이 없어.'

까만 애 얼굴이 하얬다. 당황, 실망, 난감, 이럴 줄 알았어, 그렇지만 표 안 낼래가 섞인 표정이 우유처럼 흔들렸다.

아, 어떡하지. 큰일 났다. 어떻게 위로해야 되지.

그래? 결과가 나왔나 보네. 결과판으로 다가갔다.

엉뚱한 부문에서 자기 이름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름이 없을 수 밖에.

아이는 벽에 찐득하게 달라붙어서 결과를 기다렸다. 2등으로 예선 통과를 확인하자 까만색으로 돌아왔다.

오늘 본선까지. 우리 모두 처음 해보는 경험.

피곤에 절어 집에 돌아왔다. 들어서자마자 축구공을 들고 다시 나가는 까만 아이.

너의 까만색을 인정하마. 놀다 오너라.

아이는 땀범벅이 되어 돌아왔다.

몸과 마음에서 펄펄 날뛰던 까만색이 비비고 비벼져 투명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러고는 이내 까만 베일 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난 자식 해봤다_너는 부모해 봤냐

매거진의 이전글 물이 흐르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