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팠던 성 주변 해자에 배를 띄워 뱃놀이를 하는 곳에 왔다. 신발을 벗고 배에 올랐다. 앉은뱅이 테이블 아래 다리를 집어넣고 뱃머리 쪽에 자리를 잡았다. 11월에 태어나 14살이 된 아이는 옆에 앉았고 10월에 태어나 11살인 아이는 맞은편에 앉았다. 코타츠로 데워진 담요를 어깨까지 끌어올렸다.
작은 배들이 엉켜있는 선착장을 사공이 긴 막대기로 밀어내니 물길로 배가 나선다. 헐렁한 겨울 공간이다.
배는 물길 위에서 뱃사공이 이끄는 대로 흘러간다. 굽이를 돌고 마을 옆을 지난다. 여기는 일본 야나가와.
이 물길을 거니니 이십 대의 내가 떠오른다. 그때 난 방향을 모르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냈다. 가고 싶은 길이 여의치 않아 가야할 길을 정하지 못 하고 두리번거렸다. 진로를 고민하고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길 위에서 이정표를 살피며 선택을 고민하고 늘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길 위에 있었다.
그러다가 길 위에 문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문을 지나야 했다.
어릴 때도 문이 있긴 했다. 내 뜻으로 여닫는 문은 화장실 문이 고작이었다. 교실에 있으면 문을 열고 선생님들이 들어와서 가르침을 주었다. 기다리고 받아들이면 되었다. 처음 만난 아이들에게는 ‘우리 같이 놀자’, ‘밥 같이 먹을래?’하면 친구가 되던 때다. 같이 놀고 같이 먹으면 마음이 오갔다. 그걸로 충분했다. 문이나 벽은 집짓기 놀이나 블록놀이 할 때 필요했다.
열고 싶은 의지를 가지고 두드렸던 건 대학문이 처음인 듯싶다. 문안에 들어서자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제 내가 많은 문을 열어야 했다. 내가 열지 않으면 문은 나를 막아서는 벽이 되었다. 수업시간에 맞춰 강의실 문을 열어야 했고 동아리 문을 두드려야 했다. 미성년자에겐 막힌 문도 열 수 있었다. 호기심이 깃든 문을 열 때는 작은 쾌감도 있었다.
그 즈음 내 마음에도 문이 생겼다. 사람을 대할 때 호감, 비호감에 따라 마음의 문을 여는 정도가 달라졌다. 내 쪽에서 상대방 마음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일도 생겨났다.
졸업을 하고 교문을 나섰다. 학교 밖 세상이 힘들다지만 그래도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곳이겠지. 이젠 학교 시간표가 아니라 내 시간표대로 살아보리라. 내가 주인공이야! 경계를 나누는 문 따윈 내 앞에 두지 않으리라.
그러나 나는 곧 새로운 문을 만났다. 그 문 안에서 맞닥뜨린 또 다른 많은 문을 분주하게 여닫는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엄마가 되어야 하고, 직장 문을 들어서면 나는 다른 사람, 업무 조직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새 길을 떠나고 새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길을 오가고 어제 열었던 문을 또 연다. 벽인지 문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도 많다.
요즈음 ‘유목민’이라는 말에 마음이 간다. 사람들이 길 밖으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유목민은 빙하 위 썰매처럼 미끄러지듯 공간을 간다. 길은 없지만 모두 길이다.
요즈음 이십 대는 참 다사다난하다. 부모와 선생님들이 이끄는 대로 길을 따라왔다. 문 너머의 세상을 열심히 준비하고 패기 넘치게 여기까지 왔다. 문을 만났다. 두드리지만 열리지 않는다. 벽보다 굳게 닫힌 문…. 보이지 않는 문은 벽보다 더 단단하다.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라고했던 건 이 시대엔 선별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럭셔리한 진리일까?
이제 유목을 떠나야 할 때가 왔다. 앞서 간 길, 이미 만들어진 길은 벽이 막아선다. 이제 그 길을 외면할 때이다. 길이 아닌 곳을 걷는 거다. 사막을 가로지르고 산맥을 넘고. 지나온 점을 하나의 선으로 주욱 연결해놓은 것, 그것이 나의 길이다.
야나가와 뱃사공이 콧노래를 부른다. 겨울 수로에 선상 가게가 보인다. 11월에 태어난 아이가 간식거리를 재빠르게 훑고는 10월에 태어난 아이에게 신호를 보낸다. 과자를 받아든 아이에게서 뽀얀 입김이 새나온다.
가을에 태어나 겨울부터 맞이했던 두 아이는 앞으로 어떤 길에 서게 될까.
배는 좁은 돌다리 아래를 아슬아슬 지나간다. 아이들이 이 물길을 떠올리면 좋겠다. 막다른 길에 서거나 쉽사리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릴 때 이 길을 기억하면 좋겠다. 침입을 막는 벽으로 만들었지만 이곳은 물길, 길이 되었다. 벽이 또 다른 길을 만들어냄을, 굽은 길일수록 물이 더 세차게 흐름을 아이들이 알아차리면 좋겠다.
물결은 잔잔하고 겨울바람은 비장하다. 두 아이가 태어나 맞이했던 그 첫 겨울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불 속 더 따뜻한 곳으로 아이들을 끌어당긴다.
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