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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inity Lee Mar 15. 2019

판문점 선언이 한 일

  해외 여행 계획을 세운지는 오래되었다. 철도가 연결된다는 소식이 심지에 불을 붙였다. 바다 넘어, 국경 넘어 어디든 간절히 가고 싶었다.

  곧 기차를 타고 유럽을 갈 수 있다니. 간절함이 기회로 탈바꿈하는 기분이 들었다.

 

  비행기를 ‘주로’ 탄 것은 뉴 밀레니엄 이전이었다. ‘주로’라는 것은 비행을 즐겼다는 뜻이기도 하고 자주 타기를 기다렸다는 뜻이다. 2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탄 적도 있었다.


  뉴 밀레니엄이 지나고 베트남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국내선으로 갈아탔다.

  음료 수레가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주스를 마실까, 커피를 마실까 하던 참이었다. 이상한 기분이 스쳤다. 잠깐 멍한 기분에 빠졌다. 수레를 밀고 오던 승무원도 잠깐 멈추고 등받이를 잡는듯했지만 곧 음료서비스를 다시 시작했다.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잠깐의 급강하가 있었단다.

  그랬구나.

  별 일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잊어버렸다.


  곧 국내선을 타야하는 일이 생겼다. 비행기를 타러나가는데 심장이 도리질 쳤다. 그때 그 멍한 기분이 공포로 다가왔다. 

  비행기가 떠오르자 천 길 낭떠러지에서 허공으로 밀려나는 기분이 들었다. 좌석 손잡이를 꽉 잡고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이제 다 와간다, 다 와간다, 다 와간다…, 중얼거려도 거친 착륙은 더 무서웠다. 그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공항은 활주로가 짧아 위험하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공포감은 점점 더 심해졌다. 


  비행기 탈일을 상상만 해도 탄 것처럼 두려움이 몰려왔다.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비행기를 잊은 동안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차로 떠나곤 했다. 앞좌석은 오디오를 켜고 끄는 아이가 앉았고, 뒷좌석은 간식을 나눠주는 아이가 앉았다. 십 여 년을 틈날 때마다 길 위로 나섰다. 그러나 국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들린 소식이었다. 기차가 연결되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을 지나 러시아를 횡단할 수 있단다. 이제 기차로 삶을 넘고, 음식을 넘고, 생각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멀리 떨어뜨려두었던 러시아 선율, 아랍 남자의 터번, 사리 입은 인도 여인의 눈망울이 밀려들었다. 다른 것들을 밀어내고는 온통 마음을 차지했다.


  그래도 지금 당장 유럽으로 떠나는 기차는 없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여전히 숨 막히는 일이다. 다시 러시아 선율을, 아랍 남자를, 인도 여인을 밖으로 밀어내려고 했다. 


  마음 속 기차가 증기를 내뿜었다. 한 걸음만이라도 내디뎌 선을 넘어보라고 했다.    

  딱 한 걸음이 되는 곳이 어디일까.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 비행 50분 거리. 일본 후쿠오카 행을 결심했다.


  이륙 전 엔진이 악을 쓰며 소리를 높였다. 이때만큼은 아이들 뇌 구조까지도 바꾼다는 스마트폰의 신령스러운 힘에 기대기로 했다. 테트리스 게임 앱을 실행시켰다. 울렁거리는 감각을 외면하려고 화면에 집중했다. 


  도형이 떨어지는 속도가 원래 이렇게 더뎠었나. 어서어서 떨어져서 나를 긴박감에 몰입시켜다오.


  허공에 떠 있는 두 발을 잊고 싶었다. 허공에 건물을 짓듯 테트리스 도형으로 바닥을 다지고 다졌다. 

  비행기는 중심 없이 기울어지고 흔들렸다. 두 발을 바닥에 딱 붙이고는 조각조각 날아다니는 두려움을 화면에 쓸어 담았다. 


  테트리스는 무사히 나를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주었다. 선을 넘고 싶었던 간절함은 ‘왔다!’ 한 마디에 신나는 자유로움으로 바뀌어 간다. 선을 넘은 자의 여유가 생겨난다.


  새로운 일에 신나하던 나의 마음에 다시 샘물이 솟기 시작한다.  

  길 위로 나서는 느낌이 상큼하다.



  제목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syslg7/22078803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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