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엄마 (5)

엄마의 탄생

by YJ

13년 차 장기 경력단절 엄마는 유급의 일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남편과 밤늦게까지 언성을 높이며 티격태격거리다가 속상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자다가 새벽에 살포시 눈이 떠졌다.

속상한 마음으로 잠이 들어서 그런지 자면서도 내내 마음이 답답하고 불편했다.

그런데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는데 느낌이 너무 이상하다. 뭔가 으스스하기도 하고.

"아악!!!!!!"

구불구불한 뱀들이 쌔근쌔근 잠자고 있는 아기를 감싸고 혀를 날름 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몇 마리인지 너무 많아서 샐 수도 없다. 징그럽고 무섭지만 민주는 필사적으로 아기를 뱀 무더기 사이에서 들어 올리려고 애를 쓰는데 이상하게 아기가 잡히지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엉엉 울면서 아기를 들어 올리려고 애쓴다.


그 순간 눈을 번쩍 떠보니 다행히 꿈이었다.

휴우.........

본능적으로 아기가 자고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는데 다행히 아기는 뱀 무더기 사이에 있지도 않고 평소처럼 무사히 잘 자고 있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아기의 몸이 유난히 뜨끈뜨끈하게 느껴진다.

이럴 리가 없는데...

머리맡에 있는 체온계로 아기의 체온을 재봤다.

잠결에 어스름하게 겨우 치켜 뜬 눈으로 디지털체온계에 표시된 숫자를 쳐다본다.

4... 으응?!

눈을 비비고 초점을 맞추려고 눈동자에 힘을 주고 다시 잘 쳐다본다.

40.1도?!

뭐라고? 말도 안돼!

민주가 정독했던 육아서에는 아기의 체온이 40도가 넘으면 열성 경련을 일으키고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심장이 쿵쿵 거린다. 파르르하게 떨리는 손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서둘러서 아기의 옷을 벗기고 물수건을 적셔와서 몸을 닦인다.

자다가 생경한 느낌에 놀란 아기는 악을 쓰며 울기 시작한다.

"으앙~!!!!!!!"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아기와 함께 종합병원 응급실에 와 있다.


아기는 해열제를 먹어도 체온이 내려가질 않고 응급실 담당의 선생님은 일단 일반 병실로 입원해서 지켜보자고 한다.


종합병원 어린이 병동의 다인실에 배정되는 과정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민주는 출산 후 1년이라는 기간을 목표로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중이다.

엄마의 몸은 너무나 신기하게도 아기가 먹을 식량 만큼을 시간에 맞춰서 만들어낸다. 언제든지 내 새끼 하나는 배 곯이지 않도록.

그런데 오늘은 병원에 온 이후로 아기에게 한 번도 수유를 하지 못했고 이제는 찌르르하게 젖몸살이 올라온다.

아기는 고열에 쳐져서 젖을 먹을 힘도 없어 보인다.

이른 아침 정신없이 병원에 오느라 유축기나 젖병 같은 아기 용품들을 미처 챙겨 오지 못한 탓에 지금은 젖이 퉁퉁 불어나는 것을 꾹 참아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자꾸 쳐져서 잠만 자는 아기가 걱정이 되어서 찌르르한 젖몸살로 아파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 아기는 괜찮은 걸까?


배정된 다인실 앞의 복도에서 담당 간호사의 입원 관련 설명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팍에 축축한 게 느껴진다.모유가 새어 나와서 민주가 입고 있던 셔츠를 적신 것이다.

어떡하지?!

그런데 하필이면 마침 그때 복도 저편에서 전문의 교수님과 회진을 도는 수련의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민주 옆을 스쳐 지나간다. 새하얀 가운을 입은 수련의들은 민주랑 비슷한 또래들로 보인다.

모유로 얼룩져 있는 가슴팍을 감싸고 어디라도 숨고 싶은데 왜 그런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기둥처럼 서 있다.

민주는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된 것 같다.

‘저 사람들은 사람인데, 나만 짐승.’


“어머니?! 괜찮으세요?”

한참을 설명하던 간호사가 민주의 눈빛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어본다.

"아, 네... 괜찮아요... 방금 뭐라고 그러셨죠? 어디에 서명하면 된다고요?"

대충 서명을 하고 도망치듯 병실로 들어왔다.


아기는 열에 들떠 몸이 쳐져서 여전히 자고 있다.


그렇게 입원날짜가 하루 이틀 지나가는데 아기의 고열은 좀처럼 떨어지질 않고 이제는 온몸에 붉은 반점들이 퍼지더니 몸도 얼굴도 퉁퉁 부어서 민주가 알던 아기의 얼굴이 아니다. 병원에서의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삼일이 되도록 아기가 왜 아픈지 원인을 알 수가 없다. 하루하루 걱정만 늘어간다.


종합병원 어린이 병동은 참으로 묘한 곳이다. 겉으로는 평화로운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파서 힘없이 누워있는 아이들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소란스러움이 부재한다. 어쩌다 소란스러우면 한 아이가 주삿바늘을 새로 꼽고 있거나 억지로 약을 먹고 있다.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나 조부모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누렇게 떠있다. 민주도 그중 하나이다.


병원에 입원한 지 5일이 지나자 진단명이 나왔다.

가와사키병.

만 3-4세 미만의 영유아에게 발생하는 급성 열성 발진증이라고 한다.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병인데 민주의 아기처럼 고열이 5일 이상 지속되고 몸에 붉은 반점이 퍼지고 온몸에 부종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기는 몇 일째 눈에 힘이 없다. 담당의가 이름도 낯선 병명을 설명해주는데 면역 글로불린을 수액으로 몇 병 맞으면 이제 괜찮아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준다. 왠지 그동안 긴장하고 걱정했던 마음이 탁 풀리면서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누렇게 뜬 민주의 두 볼 위로 흘러내린다.

"흑흑...... 흑흑.....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흑흑... 흑흑흑..."


담당의 말대로 면역 글로불린을 수액으로 두 번 정도 맞으니까 퉁퉁 부어올랐던 붓기도 싹 가라앉고 열도 내렸다. 아기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붓기가 빠지고 나니까 살이 많이 빠져서 수척해져 있다. 민주는 본인도 아픈 아기를 돌보며 며칠 새 수척해졌다는 걸 느끼지도 못한다. 아기가 회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냥 감사할 따름이다.

‘불쌍한 우리 아기. 고생 많이 했어.

그리고 고마워. 잘 이겨내 줘서.’


한 살 엄마 민주는 그렇게 호되게 신고식을 치러냈다.


퇴원 후 몇 달은 아기도 민주도 떨어진 체력을 다시 보충하느라 거의 집에서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볕이 따뜻한 날 오랜만에 다 같이 공원에 소풍을 가기로 했다.

수척했던 아기는 다시 넘치는 생명력으로 포동포동하게 살이 쪘고 체력도 회복했다.

언제 그렇게 아팠었나 싶다.

남편이 저 쪽 꽃밭이 예쁘다면서 민주에게 사진을 찍어줄 테니 아기를 안고 서보라고 한다.

아기를 품에 안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민주의 가슴속에 한 줄기 생각이 머무른다.


"엄마..... 내 직업은 엄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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