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 정리 후, 삶이 바뀌다
2022년 5월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백혈병이라는 병마와 싸우신 지 1년 남짓한 기간을 뒤로하고 한 줌의 재가 되셨다. 인간의 삶이란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던 순간이었다. 남편과 나는 열흘 동안 시댁을 오가며 시아버지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전 청소와 정리를 즐겨하신 분이었기에 집구석구석은 깨끗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은 짐들이 참 많았다. 수납장 곳곳에 가득 쌓여있는 물건을 보며 '한 인간이 남기고 가는 물건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겨진 물건들, 그리고 그 무게
수납장 곳곳에는 안 쓰는 양말, 고장 난 전자제품, 어디서 받았는지도 모를 기념품들, 작거나 커서 안 입게 된 옷들까지 그 어떤 것도 바로 버릴 수 없었다. 아버님이 이 물건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다른 사람의 물건을 버리는 일은 그 사람의 물건에 대한 생각을 되새겨야 하기에 더 힘들었다. 그리고 그 물건을 버리면 시아버지의 남은 숨결마저도 사라질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다. 정리라는 것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힘든 작업이었다.
유품 정리에 든 시간과 비용, 그리고 감정
나와 남편이 함께 정리해도 물건을 6층 아파트에서 쓰레기장으로 내리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아는 이사업체 실장님께 부탁을 드려 70여만 원을 지불하고 가구, 잔짐 등을 모두 내렸다. 3명의 작업자가 왔는데 꼬박 반나절이 걸려 끝났다. 쓰레기장에 내놓은 짐들을 보니 또 한숨이 나왔다. 그 짐들은 결국 오래전 할머니 댁을 치워주셨던 폐기물 업체 사장님을 순간적으로 기억해 내어 그분께 연락을 드려 25톤 가까이 되는 짐들은 폐기물장으로 떠났다.
처리 비용만 150여만 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돈도 돈이지만 몸과 마음도 힘들었다.
"아버님께서 이렇게 많은 것을 다 안고 살아오셨구나. 그런데 이 많은 짐들을 자식들이 다 처리해야 하네..."
정리하지 않은 짐들은 부담으로 남는다. 나는 그 이후 이사와 카페 운영으로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다 카페 매장 운영을 종료함에 따라 카페 짐들을 정리하면서 2025년 6월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삶을 가볍게 만드는 정리
카페 장비, 베이킹 도구, 각종 일회용품 등을 보며 나의 집안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곳곳에 짐들도 필요성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꼭 필요한 물건인가?"
"용도가 중복되는 물건인가?"
"이 물건이 없으면 불편한가?"
"내가 쓰지 않으면서도 계속 가지고 있는 물건을 무엇일까?"
"사용하지 않아도 그냥 쌓아두는 물건 아닐까?"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이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면 어떨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조금씩 정리를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은 훨씬 가벼운 살림으로 살고 있다. 나는 이제 내가 가진 물건들로 인하여 '나중에 남은 사람이 힘들지 않게’ 하고 싶다.
유품 정리는 ‘삶의 리셋 버튼’
유품 정리는 누군가의 삶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남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도 하다. 내게는 그랬다. 인생의 가치관이 크게 바뀐 시기 중 하나가 시아버지의 부재였다. 지금 집 안의 물건들이 나를 삶에 짓누르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정리할 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