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 사건 이후 희수와 지영 사이에 말없는 거리가 생겼다.
누가 먼저 멀어졌다고 할 수 없었다. 연락이 뜸해졌고, 마주쳐도 가볍게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희수는 그 거리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하린이가 초등학교 입학 가방을 멘 날 아침, 희수는 딸의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줬다. 아이는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만족스러워했다.
"엄마, 나 예쁘지?"
"응, 제일 예쁘지."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영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었다. 희수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희수 씨, 오늘 하린이 첫 등교날이죠? 어떻게 됐어요?"
목소리가 반가웠다. 진심으로 반가운 것처럼 들렸다.
"지금 막 나가려던 참이에요."
"그렇구나. 참, 희수 씨. 나중에 시간 되면 차 한 잔 해요.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연락해요."
전화를 끊고 걸음을 옮기는데 하린이가 올려다봤다.
"엄마, 누구야?"
희수는 잠깐 멈췄다.
"응, 아는 분."
친구라고 하려다 멈췄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그 단어가, 조용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며칠 후 지영과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지영은 예전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말이 많았고, 웃음이 잦았고, 이야기의 중심에 늘 자신이 있었다.
"희수 씨, 학교 어때요? 담임은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첫 주니까."
"담임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져요, 진짜로." 지영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희수 씨 담임, 박 선생님이죠? 그분 좀 까다로운 분이에요. 선 긋는 스타일이라 처음엔 당황할 수도 있어요. 희수 씨랑 비슷한 면이 있어서 오히려 갈등할 수도 있을 것 같고."
희수는 커피 잔을 감쌌다.
"그래요?"
"응. 근데 있잖아요." 지영이 목소리를 낮췄다. "학교에서 알아두면 좋은 엄마들이 있어요. 나랑 가까운 사람들인데. 다음 주에 같이 만나볼래요? 희수 씨 학교 적응하는 데 도움 될 거예요."
희수는 잠시 창밖을 봤다.
선배 학부형의 호의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데도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생각해 볼게요."
지영이 웃었다.
"너무 생각하지 말아요. 그냥 편하게 밥 한번 먹는 거니까."
그날 밤, 희수는 승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짧게 썼다. 답장을 기다리기보다는, 쓰면서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승미의 답은 빨랐다.
- 희쑤, 기억해. 공짜 점심은 없어.
희수는 그 문장을 보며 웃었다.
희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불을 껐다. 어두워진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지영이 오랜만에 연락한 건 하린이 입학 때문이었다. 그 타이밍이 우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연이 아닐 수도 있었다.
희수는 그날 밤, 결론 내리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이번엔 눈을 뜨고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