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기록의 힘

by 에벌띵

국민학교 다니면서 가장 고역은 일기 쓰는 일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용도로 잘도 써먹는 소재였다. 위대한 그도 쓴 걸 너희 주제에 쓰지 않을 이유가 있느냐며 비아냥댔던 6학년 담임선생의 논리에 일기 숙제를 제출하지 않는 걸로 삐딱선을 타기도 했다. 쪼르르 엄마에게 일러 야단맞게 만들고만 비겁한 담임에 대한 복수는 잊지 않았다.

위대한 인물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 일기를 써야 한다는 무적의 논리를 들이댄 그 시절, 나는 생각했다. 위대한 인물이 안 되면 어쩔 건데? 3천 명의 전교생 중 과연 몇 명이나 위대해질 것이며 한 두 명의 위대함을 위해 2,998명이 희생되어야 하는 이유가 뭐야?라고 진짜 내 일기장에 적어 무논리의 논리를 까댔다. 비겁했던 6학년 담임에 대한 까대기도 놓치지 않아 복수를 마무리했다.



반골기질은 유전된다(?). 초등학교를 보냈더니 딸이 그런다. 선생님이 무슨 권리로 일기장 검사를 하느냐고. 본인도 사생활이 있는데 그걸 왜 침해하냐는 딸의 주장에 할 말이 없었다.

반골 엄마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숙제 검사용은 대충 적고 진짜 네 일기장은 따로 만들어. 선생님이 일기를 쓰라는 목적은 아마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글쓰기 연습을 하라는 걸 거야. 하지만 네 말대로 네 사생활도 중요하니까 숙제용 일기, 진짜 네 마음용 일기를 따로 만드는 거야. 엄마가 너만 할 때 썼던 방법인데 어때?”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 탓에 기록에 미친 자가 되어 하루를 30분 단위로 쪼개고 기록했던 때가 있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제패했던 그때,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종이 위에 나를 까발렸다. 종일 집구석에 틀어 박힌 일상이 빛나면 얼마나 빛나고 위대하면 또 얼마나 위대했겠나. 매일 한 시간을 쏟아부어 얻은 건 자책이요 실망이었다. 내가 싫었다.

글을 썼다. 과거를 더듬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기대해 보는 나를 자율롭게 만나는 곳, 비교할 대상도 필요도 없는 나만 아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정리하고 기록했다. 그러니 살만했다. 남들과 다른 내가 보이고 그런 내가 좋아졌다.


더는 남이 만든 다이어리를 사지 않는다. 불렛 저널을 쓴다. 더 깊은 내면을 마음껏 유영하고,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아 더 통쾌한 쓰기로 나를 기록한다. 그 기록이 모이고 흩어져 글이 된다. 어린 시절의 그 실력이 어디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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