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클래식 음악 연주회를 찾아다닌 지 10년이 넘었다. 공연 예절을 하나하나 일러주면서도 혹시 지겨워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순간이 어제 같은데 말이다.
운이 좋으면 거장들의 연주회 관람을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노장, 중견, 신예 연주자들이 펼치는 무대는 각기 다른 감동을 동반한다.
지난밤, 이미 시작된 두 달이나 지났지만, 새해를 맞이해 오케스트라와 뮤지컬 가수들이 협연해 이뤄진 공연을 관람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웅장한 Suppe “경비경” 서곡으로 시작되어 천상의 목소리라 일컬어도 모자라지 않을 뮤지컬 배우의 노래로 이어졌다.
가수가 전면에 나와 노래를 시작한다. 오케스트라의 볼륨은 줄어들고 가수의 목소리는 커진다. 화려한 드레스, 핀 조명, 퍼포먼스가 더해진 가창력은 압도적이다. 반박불가한 주인공이다.
어느 때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습관적으로 핀조명 아래 선 가수보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앉아 각자의 역할을 해내는 연주자들의 소리가 더 자주, 또렷이 들린다.
한 번은 100분이 넘는 연주 시간 동안 모두 합쳐도 연주 시간이 5분은 될까 할 악기가 눈에 띄었다. 화려한 현악기들이 5분은 쉴까 싶은 연주와 대조적이었다. 그 5분, 단 한 번의 ‘쿠쿵’하는 소리, 10초의 맑은 떨림을 들려주기 위해 전체 오케스트라의 악보를 쉼 없이 따라가고 집중하는 그들의 기다림이야 말로 예술적이었다. 주책맞게 눈물이 날 만큼의 감동이 가슴을 꽉 채웠던 그 연주를 잊을 수 없다.
어제는 절정으로 달려가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묵묵히 받쳐주는 바이올린 솔로 연주에 꽂히고 말았다. 노래가 옅어지고 바이올린이 짙어지는 순간의 먹먹함이란….
때로 우리는 착각한다. 세상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아무리 황홀경을 선사하는 서사와 실력을 가진 이가 작품의, 무대의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그 뒤를 받쳐주는 서브 주인공에 꽂히기도 한다. 악역의 서사에 공감하기도 하고, 배경을 채우는 음악이 작품보다 더 유명해지는 오묘한 일도 일어나는 게 알 수 없는 세상 이치다.
어쩌면 아니 분명하게, 세상을 채우는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주인공이다. 제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1인이 모여 세상은 그 무거움을 견딘다. 때론 서브로, 때론 배경으로, 때론 끝없는 기다림으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린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전체 무대를 장악하는 북처럼, 그 순간의 역할을 위해 인내하는 우리 모두는,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