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의 상속

by 에벌띵

"말 술 마시게 생겨서 의외네?”

대학생이 된 이래 술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의례히 듣던 소리다.

뭘 어떻게 생겨야 말 술을 마신다는 건가 싶어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무례한 언사에 기분 상한 티라도 낼 것 같으면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 쿨하지 못한 인간’이 되기 십상이었다.


언젠가 친구 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주던 중 술 좀 하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지난 10년간 맥주 한 모금 한 적 없을 만큼 술을 못한다는 내 답에 그는 웃었다.

“에이, 술 못 마시면 같이 놀기 어려운데, 친하게 지내기는 어렵겠어요 하하하”

술 부심 가득한 그와 맥주 한 잔 하지 못하는 나는 결국 친구가 되지 못했다. 술잔을 비우지 못하면 마음도 나눌 수 없다는 그 기준이 오히려 고마웠다.




나는 술을 해독하지 못하는 체질로 태어났다. 맥 주 한 잔에도 온몸이 빨개져 볼썽사나워진다. 이 가게 술을 너 혼자 다 마신 거냐며 친구들이 내 음주를 발 벗고 말 릴 정도였다. 어쩌다 보니 남편도 비슷한 사람으로 만났다. 빨개지긴 해도 잘 취하지 않는 나와 달리 남편은 인사불성이 된다. 그러니 우리 집 냉장고에는 그 흔한 맥주 캔 하나가 없다. 1+1이 아니라 1+10을 해줘도 무용지물이 된다.



곧 성인이 될 딸이 자신은 술을 잘 마실 수도 있지 않겠냐며 가능성을 타진했다. 뱅쇼를 만들기 위해 사놓은 와인을 망설임 없이 딴 후 유리잔에 담아 내밀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까. 제법 큰돈을 주고 구입한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킨 딸의 얼굴이 오만상 찌푸려졌다.

“웩!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바닥에 겨우 깔리게 담긴 것도 다 못 마시고 내려놓았다.

“하하하.. 너도 술은 안 되겠다.”

싱겁게 끝난 도전이었다.




뜨겁게 데운 다관에 보이차 한 줌을 넣는다. 첫 물을 걸러내고 두 번째 우린 찻물 잔 마다 조금씩 담는다. 아버지가 잔을 들면 우리 자매도 따라 잔을 들고 조심스레 마신다. 그윽한 향이 온 입안을 맴돌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속에서부터 달큼한 향이 숨 쉴 때마다 올라온다. 다음 잔도 그다음 잔도 천천히 비워낸다. 주도 대신 다도를 배운 나는 딸에게도 찻 잔을 건넨다. 말 술은 못 마셔도 말로 차는 마시니 이만하면 꽤 근사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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