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못한 진심, 적지 못한 역사

by 에벌띵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에드워드 카의 역사에 대한 정의다.


나는 태극기 부대를 마주하면 두 가지 감정이 든다.

첫 번째는 답답함이다. 고구마 한 상자를 삶아 먹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듯 명치가 꽉 막힌다. 무엇을 위한 외침인지 잘 모르겠다. 딸과 여행 중 광화문 광장 한가운데서 그들과의 조우는 공포스러웠다. 인사도 설명도 없는, 젊다는 이유로 받는 비난이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두 번째 감정은 먹먹함이다. 찡해진 코끝과 침이 넘어가지 않는 목안의 고통으로 괴롭다. 그들 덕에 이루고 누리는 것에 대한 감사보다 ‘틀딱, 꼰대’로 대표된 비하가 먼저니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을 게 아닌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도, 받아보지도 못한 채 나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리말 좀 들어 달라’ 외치니 진심이 가려진다.




주말이면 동생네가 온다. 신혼 때부터 그랬던지라 동생 가족의 주말 방문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몇 되지 않는 가족이 둘러앉으면 1층 부모님 댁 거실은 훈기로 가득하다. 아이들이 장난치는 모습,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정답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간혹 “여자가 몇인데 장정들이 부엌에 왔다 갔다 하노!” 호통치신다. 사위들 기를 세워주려는 건지 미안한 마음을 그리 표현하는 건지 모를 일이다. 그 시절을 통과해 온 남자의 언어는 때로 본심과 반대로 흐르곤 한다. 하지만 딸로 자라 딸을 키우는 나는 “우리 집은 일 안 하면 밥도 굶어야 해요.”라며 기어이 맞대응을 놓는다.


당신 자손들로 그득한 자리가 몹시 만족스러울 때면 아버지는 지난 일들의 기억을 꺼내 놓는다. 한국전쟁 직전에 태어난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내 딸과 조카는 ‘가능해?’하는 표정이다. 월사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난 대목에서는 두 아이 눈이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보릿고개를 어찌 지났는지 들려주니 할아버지가 조선시대 사람이냐 한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밤 9시가 넘어 친구들과 어울린 모험담 앞에선 되려 ‘재밌었겠다’며 부러움을 드러낸다.


딸인 나는 일흔일곱 번만 더 들으면 백번 듣는 이야기다. 철없을 적엔 ‘또 그 이야기냐’며 투덜댔지만 나이가 드니 달리 들린다. 그 일흔일곱 번을 다 채워 백번을 듣고 싶다. 더불어 아버지 기억을 내가 받아 적어 기록하고 정리해둬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기특한 생각도 한다.

내겐 지겹게 반복되는 잔소리 같은 이야기가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고 놀라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란 걸 알고 나니 더 그렇다.


역사 그거 별거 없다. 몇 천년 전의 위대한 누군가가 유식한 한자로 남겨둔 걸 읽으며 애쓰는 것도 좋지만, 바로 우리 곁에 살아있는 역사를 먼저 알아보면 어떨까 싶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라는 에드워드 카의 말처럼 살아있는 우리의 역사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눠보자. 집집마다 독창성 넘치는 역사책 한 권씩 보유하는 날 광화문 광장은 소요가 아닌 흥으로 뒤덮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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