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로 땡겨 쓴 사랑, 이제 원금을 갚을 시간
자식을 키운다는 건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한다. 육아의 성패가 기다릴 줄 아는 인내에 달렸다 해도 과한 말은 아니다.
“너는 네가 혼자 큰 줄 알지?!” 만국 공통으로 나오는 절규다.
맞다 나는 내가 혼자 큰 줄 알았다. 부모의 공로를 모르는 바 아니나, 크고 뜨거운 사랑에 두루마리 휴지마냥 감겨 자랐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혼자 뚫고 겪은 줄 알았다. 오만과 착각이 대단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게 놀랍도록 말이다.
오만했던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을 낳았다. 땅에 내려놓지 않고 키웠다는 말의 현신이나 엄하고 단호히 키운 딸은 유순해 손 갈데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황’씨다. 고집과 순함이 더해지면 ‘입꾹닫’이 되는 탓에 초고속 사고와 결정을 동시에 나와 대립각을 이루고는 했다.
일찍이 깨달은 바,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조상들의 지혜의 말씀이요,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법이라는 속담의 실존이었다.
입을 꾹 닫는 자식에게 특효약은 없다. 그저 저 입이 열리기를 인내와 고뇌로 참을 인을 가슴에 촘촘히 새기며 기다리는 것만이 길이다. 한 대 쥐어박았다가는 영원히 닫히거나 사그라들지 않는 뒤끝에 무한 반복 재생되는 사과를 해야 한다.
순한 만큼 겁이 많은 탓에 정돈된 마음으로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들릴까 말까 한 속삭임으로 제 말을 하기 시작한다. “크게!”라고 외치고픈 입술을 꽉 다무는 인내가 필수다.
부모가 된 날로부터 단 한순간도 기다리지 않은 적이 없다. 태어나길, 뒤집기를, 걷기를, 뛰기를, 말하기를, 나를 불러주기를…. 매 순간 절실히 기다렸다. 너무 기다린 부작용인지 이젠 그만 자라서 지금 이대로 내 옆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만 커진다. 나를 잊지 않고 되돌아 봐 주길, 내 품에 안겨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시간이 놓여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아부지~ 어렸을 때는 아부지 손이 약손이더만, 이제 딸내미 손이 약손이 돼버렸네?”
간밤에 고열로 고생하다 정신을 차린 아버지께 농을 쳤다. 통증으로 아픈 중에도 나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어쩔 수 있나~ 어렸을 때 금이야 옥이야 키워주셨으니 이제 내 차례가 된 거죠. 세상은 받은 만큼 뱉어 내야 하더라고! 내가 선금을 너무 땡겨 썼어~ 이자는 못 붙여도 원금이라도 잘 갚아 볼게요!”
곁에 앉은 엄마도 소리 내어 웃으며 아버지의 손을 연신 쓰다듬었다.
육아는 아니지만 비슷한 버전이 내 앞에 놓였다. 기다림으로 키워낸 딸이 장성해 아픈 부모가 나아지길 기다린다. 내일은 털고 일어나시길, 모레는 큰 소리로 호통치시길, 내년에도 그다음 아니 20년 후에도 내 곁에서 정정하시길 기다린다.
어째 세월이 갈수록 통장 잔고는 줄고 기다림만 느는 건지. 하지만 이 또한 감사, 또 감사하며 기꺼이 해내리라 단단히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