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 다른 시계를 차고 산다.

by 에벌띵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지만, 그 속도만큼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찰나 같았던 설렘과 영겁 같았던 고통 사이에서, 우리는 저마다 각기 다른 시계를 차고 살아간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반가운 안부를 나누던 중, 친구의 큰딸이 시집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 대학 2학년이던 시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태어났던 그 조그맣던 꼬맹이가 결혼도 모자라 벌써 아들을 낳았단다. 젊어도 너무 젊은 할머니가 된 친구의 소식은 경이로우면서도 어쩐지 당황스러웠다.

​친구는 내 딸의 안부를 물었다. 이제 만으로 열일곱이 되었다는 내 답에 친구 또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갓난아이 때의 사진이 기억의 전부인 친구는 "벌써 그렇게 자랐어?"라며 반문했다. 그야말로 사돈 남 말 하는 격이었다.



​시간은 참 많은 것을 이뤄낸다.

젖먹이 아기를 어여쁜 처녀로, 철없던 소년을 듬직한 아빠로, 말썽꾸러기를 의젓한 어른으로 성장시킨다. 가슴 깊이 남은 상처를 무디게 깎아내고, 죽도록 미워하던 사람조차 삶의 밖으로 밀어낸다. 상실의 무게를 견디게 하고, 묻혀 있던 진실을 드러내어 기어이 인과를 밝히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은 늘 이별과 맞닿아 있다.

평생 함께 살 거라 호언장담하던 아이는 어느덧 독립을 꿈꾸고, 언제나 쉴만한 언덕이 되어줄 것 같던 부모님은 곁을 떠난다. 나만 보면 배를 까뒤집으며 애교를 부리던 반려묘는 예고도 없이 가버렸고, 제 똥도 부지런히 먹어치우던 사고뭉치 반려견은 언젠가 떠날 줄 알았으면서도 끝내 슬펐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던 철부지는, 이제 흐르는 시간이 야속해졌다. 어느 순간에 정지해 버린 채 더는 흐르지 않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내가 붙잡으려 애써도, 혹은 외면하려 해도 강물처럼 묵묵히 흐를 뿐이다. 나는 그저 흐르는 물결 속에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남긴 무늬를 가만히 만져본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슬픔에 잠기기보다, 그들이 내 삶을 스쳐 지나가며 남긴 온기를 기억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시간을 견뎌내고 기꺼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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