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에 결혼했다. 예전 경주역에서 보문단지까지, 예식이 열릴 곳까지 가는 길은 그 자체로 버진로드였다. 벚꽃처럼 하얀 웨딩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길게 늘어선 아름드리나무들이 우리의 앞날을 위한 샴페인을 터트린 듯 아름다운 날이었다.
너무 이른 축배를 들어 IMF가 왔다던 그때처럼, 시작도 전에 터트린 벚꽃 샴페인은 내 앞에 닥칠 고난을 위한 위로주였다. 11년 연애 후 결혼이라는 감동스토리는 반전을 위한 빌드업이었고.
내 전 남친은 다정한 남자였다. 그에게 나는 법이었고, 진리였으며, 유일 존재였다.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어주던 남자, 11년간 변치 않는 지고지순함까지 겸비한, 최고의 신랑감이었다.
남편이 된 전 남친은 효자로 등극했다. 새파랗게 젊은 나에 비해 늙고 초라한 엄마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제 누나를 두고 하필이면 나를 갖다 댄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나보다 마흔 살 많은 본인 엄마가 나보다 늙어 보이는 게 왜, 뭐? 어쩌라고.
서른 중반이 되도록 장가도 안 가고 애태우던 아들을 데려가겠다며 나타난 귀인이었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순진한 아들 꼬셔 간 불여시가 되었다. 타고나길 뚜렷한 내 이목구비는 근거 없는 까임의 대상이 되었다. 뭘 해도 꼴 보기 싫은 년, 그게 나였다.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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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뭣도 없는 놈하고 뭐 할라꼬 결혼했노?” 십 수년 전 내 남편을 들먹이며 현 남편이 이죽거렸다.
“뭣도 있는 줄 알고 했겠지. 순진해가지고…” 진지한 남편의 자기비판에 실없이 웃던 나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내가 아는 남자 중에 제일 멋져.”
강산이 뒤집어진다는 시간 동안 남편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았다. 다정해졌고, 지고지순해졌으며, 믿음직해졌다.
믿었던 엄마의 민낯을 보았고, 효심으로 포장한 회피를 깨달았다. 자신에게 따뜻한 가족의 이중성을 마주하고 오래 앓았던 남편. 결혼 후유증으로 생긴 기억상실을 회복했다. 그러고는 십 수년 전 내 남편 흉을 그렇게 봤다.
흐드러진 벚꽃이 온 경주를 뒤덮을 계절이 오고 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철없이 웃던 나를 향해 무구하게 피었던 벚꽃 길을 다시 걸어야겠다. 성급히 터져 제대로 받지 못했던 축배의 잔을 채우러, 뭣도 있는 남편 손을 잡고 꼭 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