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공포가 고성능 레이더라는 자원이 되다
"자식은 부모의 불안을 딛고 선 존재다."
내가 한 말이다.
나는 불안이 뼛속 깊이 새겨진 사람이다. 그 뿌리를 캐자면 끝이 없겠지만, 시작점은 명확하다. 조부모부터 삼촌까지 북적이던 유년 시절의 대가족 환경. 그곳에서 나는 어른에 대한 신뢰보다 불신을 먼저 배웠고, 본능적으로 나를 지켜야 한다는 방어막을 세웠다. 어린 나를 에워싼 환경의 파장은 늘 견고하지 못한 방어막을 흔들었고, 그 떨림은 필연적으로 '불안'이 되었다.
딸을 낳기 전까지 나는 이 감정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한 두려움이나 공포라 여겼을 뿐이다. 맞벌이 부모님의 부재는 친척 어른들이 어린 나와 동생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여지를 주었고, 그 기억은 공포의 잔상으로 남았다. 나는 그 공포를 지우기 위해 '바쁨'을 선택했다.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상을 빈틈없는 스케줄로 덮어버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묻어둔 감정은 반드시 고개를 든다. 신생아였던 딸을 안고 산부인과 문을 나서는 순간, 꾹 닫아둔 뚜껑이 열렸다. 제 성질을 못 이겨 새끼를 죽이고 마는 토끼처럼, 나는 품 안의 아이를 누가 빼앗기라도 할까 봐 온 감각을 곤두세웠다. 심지어 친부모님조차 한동안 밀어낼 만큼 나의 방어기제는 날카로웠다.
시간과 돌봄, 그리고 모성은 형체 없던 공포를 '불안'이라는 다룰 수 있는 크기로 줄여주었다. 의미가 축소되었다고 해서 사라진 건 아니었기에, 나는 불쑥 솟아오르는 불안을 받아들이며 오래도록 공부했다. 인과관계나 논리만으로 해결될 영역은 아니었지만, 그 과정에서 불안의 효용성을 깨달았다. 잘만 다루면 꽤 근사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불안은 조절의 대상이 아니다. 불안이라는 포장지 속에 숨겨진 '진짜 욕구'를 보는 것이 핵심이다. 안전하지 못했던 아동기의 그림자 때문일까, 나의 불안은 대개 '안전'에 대한 갈망과 연결되어 있다.
외부 사람들은 나의 불안을 모른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은 다르다. 내 불안의 농도에 따라 그들의 삶도 영향을 받기에 '정직한 고백'이 필요했다. 단어 하나, 사진 한 장에도 불쑥 반응하는 내 감정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내가 무엇에 자극받는지 투명하게 나눴다.
가족들은 비난 대신 기꺼이 나의 방어막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내 불안의 농도는 제법 옅어졌다. 이제 나는 이 불안을 자원으로 사용한다. 팬데믹이 닥치기 전,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물품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예민한 감각 덕분이었다.
불안이라 쓰고 '고성능 레이더망'이라 읽는 감각. 이는 이제 코치로서 나의 가장 큰 자질이 되었다. 상대가 보지 못하는 것을 먼저 느끼고 발견하는 즐거움 덕분에 매일의 대화가 새롭다. 가족의 사소한 변화를 알아채 건강과 마음을 챙기고, 때로는 눈치껏 갈등을 피하기도 한다. 여전히 과발휘하여 오지랖 부리지 않는 것이 숙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원이 된 불안은 딸을 세심하게 돌보는 힘이 되었다. 하등 쓸모없다 여긴 감각이 장점이 될 수 있음을 아이와 함께 배워갔다. 다행히 딸의 불안은 나보다 작고 따뜻하다. 자신의 불안을 목표를 향한 열정으로 치환해 사용하는 딸의 모습은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다.
간혹 나는 신에게 의탁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겸손을 배운다. 그러니 나의 불안은 결국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선물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