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조차 남지 않게 1

by 에벌띵

할머니는 나르시시스트였다. 외현적 나르시시스트 중에서도 악성에 가까웠다. 완벽한 악이 아니라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폭탄 돌리기 게임을 하듯,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터져 상해를 입힐지 모르는 할머니는 이간질의 귀재였다. 일곱이나 되는 자식들을 돌아가며 찾았다. 첫째에겐 둘째가 네 흉을 봤다, 셋째에겐 네 큰 형이 너를 욕했다, 막내에겐 넷째가 네가 문제라 했다며 자식들이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오자미 돌리듯 돌렸다.

나의 조부모는 주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웠다던 부자였다. 장롱 문을 열면 그득히 쌓여 있던 현금 다발을 지금도 기억한다. 여는 서랍마다 돈다발이 발견됐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라고 신기했던지. 그런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란 아버지와 형제들은 단 한 번도 제때에 월사금을 내 본 적이 없었다. 가죽 구두에 맞춤옷을 입혀 학교에 보낸 건 할아버지였지만 등록금으로 낼 현금을 틀어쥔 건 할머니였던 탓이다. 늦게 낸다고 이자가 붙는 것도 아닌 걸 학교에서 서너 번은 쫓겨난 끝에야 마지못해 월사금을 줬으니...... 제대로 된 엄마 노릇이라 보긴 글렀다.


이간질의 귀재였던 할머니는 부모 자식 간 당연한 친밀감도 견디지 못했다. 질투했고 분노했다. 자식을 향한 할아버지의 애정 한 톨도 당신 몫이어야 했다. 그리니 배갯머리 송사는 당연했고, 아버지와 형제들은 연유도 모를 폭탄세례를 받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그랬다.



할머니의 나르시시즘이 나를 향한 건 할아버지의 사후부터였다.

본채, 아랫채, 사랑채로 나뉘어 방만 여덟 칸이었던 집에 혼자 살 수 없다며 몇 날 며칠 아버지를 괴롭혔다. 우리 가족이 합가를 하려 했지만, 자식 간 이간질을 해놓은 탓에 큰 아버지는 우리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걸 반대했다.

차선책은 다름 아닌 나, 중학교 3학였이었던 어린 나였다. 억울하고 원통하게도.


할머니의 실체를 알기엔 어렸던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듯 할머니를 대하면 된다 생각했다. 다정하고 따뜻한 손녀 노릇에 최선을 다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할머니와 그 큰 집에 지내게 된 나는 남편을 여읜 할머니가 안쓰러웠다. 제 코가 석자인 주제에 말이다.

할머니는 나를 당신 소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여겼다는 걸 알기까지 많은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조모의 손녀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신뢰했던 나를 향한 할머니의 배신적 행위의 시작에 조력자는 큰 어머니였다. 내가 얼마나 싸가지 바가지인지, 할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갉아먹는 좀벌레 같은 존재인지 서로 맞장구치는 현장에 내가 있었다. 중년 이상의 두 어른은 옆 방에서 조용히 책을 읽던 내가 있을 거란 상상도 하지 않고 입에 모터를 단 듯 씹어댔다. 잘근잘근, 꼭꼭.

신뢰했던 집안 어른들의 배신적 행위에 충격을 받은 나는 울며 뛰쳐나왔다. 그리고 할머니의 본격적 가스라이팅과 나르시시트의 폭력이 펼쳐졌다.


내가 받은 상처의 크기와 깊이는 입에 담을 거리도 되지 않았다. 할머니 집에서 나오겠다 결정한 내게 할머니는 사과는커녕 협박을 해댔다. 당신과 내 아버지 사이가 멀어지거나 틀어지면 죄다 내 탓이라 했다. 아들과 사이가 나빠지면 내가 보는 앞에 죽어버리겠다며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내 앞에서만 그랬다.

사죄는 아버지와 엄마에게만 했다. 큰 며느리와 나누는 대화를 손녀가 들을 줄 몰랐다며, 실수였다고 변명하는 게 전부였지만 부모님은 사과로 받아들였다. 사과를 받았으니 내가 할머니를 용서해 주길 바랐다. 뒤에서 어떤 협작을 벌이는 줄도 모른 채였다.


어린 나는 할머니의 협박이 현실에서 일어날까 두려워 입을 닫았다. 할머니를 죽게 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꾹꾹 눌러 견디고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성적은 하향곡선을 탔다. 감정은 들쑥날쑥했다.

사고를 쳤어야 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를 쳐서 할머니의 악행을 만천하에 알려야 했지만, 아버지를 사랑했던 나는 모범생으로 자라야 한다는 당위를 나에게 강요했다. 마음이 곪고 피가 흐르는 걸 방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