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속에 묻어있는 아름다운 기억들...
미국 유학시, 내가 다녔던 컬리지에서 가까웠던 곳에 ‘실다이’라는 까페가 있었다.
이 까페를 알게 된 것은 같은 강의를 듣던 동생을 통해서였는데
교수님의 결강으로 갑자기 뜻밖의 시간이 주어졌던 어느 날
음악이 좋은 아주 예쁜 까페가 있다고 해서 데려간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첫눈에 반한 첫사랑이 이런 느낌일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흘러나오는 올드팝에 가슴이 설레었다.
실내는 모두 하얀색에 은은한 간접조명으로 중간중간 놓여있는 동그란 테이블을 비추고 있었고
오른쪽 벽면엔 레코드판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우리 시대에는 레코드판이었다. CD가 나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그리고, 입구 정면으로는 제법 큰 사각 공간이 둘러져 있었는데
바로 음악을 틀어주는 공간이었다.
어찌나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인지...
그곳에서는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도 없었고
다들 음악을 들으러 오는 분위기였고, 다들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 우아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아름다운 아주머니가 주인인 듯하셨고
아드님인듯한 남학생이 항상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아드님이 없을 때는 그 아름다운 아주머니가 음악을 틀어주시곤 했다.
내가 실다이를 좋아했던 것은 바로 ‘음악’ 때문이었다...
가난한 유학생이라 마음과는 달리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열심히 찾았던 실다이.
시간만 허락한다면 몇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서 밤을 새우며 음악을 듣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한쪽 벽으로 가득한 LP들. 내겐 꿈같은 공간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내 공간을 저렇게 음악으로 가득 채워야지..' 했던...
하루는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음악...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아니 전기가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까?
“이 음악 제목이 뭔가요..?”
물어보고 싶었지만, 답답하게도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때의 나에겐...
아줌마가 된 지금은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해서 제목을 물어볼 만큼 용감해지도 했고..
요즘은 인터넷으로 내가 원하는 모든 음악을 찾을 수 시대기도 하지만,
물어보거나 보지 않으면 음악을 알기가 힘들었던 그때, 나는 차마 용기가 없었다.
한동안 그 음악을 찾고자 했지만 무리였다.
그리고는 나는 학교 수업으로 아르바이트로 바쁜 일상 속에 잊어버렸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나는 결혼을 했고, 남편을 따라 브라질에 왔다.
새로운 환경 속에 일에 묻혀 지내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음악...
눈물이 툭 떨어졌다.
순간 나는 일하던 손을 멈춰야 했다.
그때의 내 온몸을 타고 흘렀던 전류가 느껴지는 듯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며
그때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마치 내 영혼이 육체이탈을 하듯 멍해지는 느낌.
'Jackson Browne의 The Load Out & Stay '
특히, Stay에서 I want you to stay just little bit longer 가성으로 부르는 그 부분은
압권이다.
내 유학시절을 떠올리면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단어는 ‘배고픔’, ’그리움’이다..
그랬기에 혹독하게 나를 단련시키며 온갖 독한 마음으로 나를 다독이고,
흐트러지지 않도록 두꺼운 갑옷과 방패로 나를 무장시켰다.
그 온갖 무장을 한 순간에 해제시키고 무방비상태로 만드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오로지 꿈과 똘똘 뭉쳐진 오기뿐 아무것도 없던 시절.
나를 가장 강하게 해 주었던 것도 음악이었고,
나를 가장 약하게 무너뜨리는 것도 음악이었다.
때때로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내 인생에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그때가 무척이나 그리운 오늘이다.
언제나 그렇다.
우리는 음악과 함께 추억을 듣는다.
음악 안에 묻어있는 아름다운 기억들...
그 안에 지난날의 삶이 있고, 사랑이 있고, 우정이 있고, 추억이 있고...
그리고 그리움이 있다.
단지, The Load Out & Stay와 실다이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데,
감정이 목까지 차오르며 울음이 북받친다.
실다이
남편과 결혼하기 전 그곳에 잠깐 들렸던 적이 있다.
분위기가 많이 변해져 있었다.
주인은 바뀌었고
운치 있게 흐르던 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오는 손님들의 분위기도 달라져있었다.
그리고는 난 그곳엘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지금 여전히 그곳에 있을까..?
그 날의 회색빛 하늘과 많이 닮은 오늘..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기억 속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