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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Jun 07. 2020

죽어서도 잊을 수 없을 David Garrett 공연

거부할 수 없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 가게 하는 치명적인 연주


오늘 우리 꼬마들 한글 수업을 준비하면서

'바이올린을 켜다' 할 때의 동사 ‘켜다’와 '치다'를 헷갈려하는 친구들이 있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확실하게 익힐까 고민하다가 바이올린 연주 동영상을 넣어 설명을 하기로 했다.


내가 고른 곡은 바로 David Garrett의 Viva la Vida~

수업 준비를 위해 동영상을 다시 보는데..

꿈에도 그리던 데이빗 가렛 공연을 보러 독일에 갔던 그때가 떠올라

가슴 시려왔다. 


David Garrett - Viva la vida (Coldplay)


그게 벌써 6년 전이구나...

그 당시 내가 떠날 상황이 아니었다.

여행을 떠나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꿈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렇게 좋아?”

“응~ 너무너무~”

“그렇게 좋으면 갔다 와”


마침 애리도 독일에 있으니 겸사겸사 갔다 오라며 배려해주는 남편..

그렇게 나의 독일 여행은 시작되었다.


데이빗 가렛의 독일 투어 공연 날짜를 보니 

Mannheim 공연은 Frankfurt 다음으로 SAP Arena에서 딱 하루 공연이다.

행여나 매진되었을까 표부터 사버렸다. Vip석으로.

내가 유일하게 사치를 부리는 부분은 바로 책과 공연이다.


해외 사이트에서는 처음 사보는 거라, 행여나 사기당한 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독일에서 브라질까지 UPS로 보내오다니.


이렇게 비행기 편을 알아보기도 끊기 전에 공연 티켓부터 달랑 끊고는 좋아라 룰루랄라~

애리 보러 가는 김에 공연 관람이 아니라,

데이빗 가렛 공연 보러 가는 김에 애리도 만나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이 철없는 엄마의 독일 여행은 이렇게 무모한 용기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


David Garrett 공연이 있던 Mannheim의 SAP Arena


그렇게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데이빗 가렛의 공연.

드디어 두근거리는 여행은 시작되었고, 공연 날짜가 다가왔다.

마치 데이트를 가듯,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에 고민

하지만, 그렇다고 드레스를 입으랴~ 

평소 나답게 청바지에 회색 자켓을 입고 스포티한 차림으로 나섰다.


공연장인 SAP Arena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만하임 기차역까지 가서 다시 기차를 타고 가야 했는데

역에 내려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 걸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곳에서 내린 모든 사람들이 공연에 가는 이들이었으니.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우리는 여유롭게 안내를 받으며 자리로 갔다.

Gate를 찾아 들어가 우리 자리가 어딘지 물어보려고 티켓을 보여주는데

안내원 아가씨가 어찌나 상냥하던지 그 예쁜 미소로 우리 자리까지 안내해준다.

그녀의 미소가 나의 행복한 기분을 더욱 북돋아주고..


거금을 주고 간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가까이서 그를 보게 되다니. 

티켓에 적혀있는 좌석은 1번 2번 석.

내가 고른 자리가 아니라 배당이 된 자리라 큰 기대 안 했는데,

헉~ 바로 맨 앞줄 가장 중앙. 완전 명당자리였다~!!


공연은 첫 순간부터 감동을 안겨주며 시작되었다.

데이빗 가렛은 언제나 첫 입장을 드라마틱하게 시작하는 것을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바..

나는 당연히 그가 뒤 또는 중간쯤에서 들어올 거라 생각하고 뒤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바이올린 소리는 들리는데 데이빗은 보이지 않고

나중에 함성을 지르는 청중 따라 위를 보니 공중으로 들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역시 데이빗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공연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도가니, 열광의 도가니였다.

나의 느낌을 표현할 수 없은 내 언어의 한계가 좌절스럽다.

내 평생에 이렇게 멋지고 환상적인 공연은 결코 본 적이 없다.

그는 클래식뿐만 아니라, 일반 청중들이 좋아할 만한 팝이나 깐소네, 또는 영화음악을

함께 믹스하여 들려주었는데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귀도 눈도 나의 영혼도 함께 춤추는 아름다운 감동의 도가니에서 허우적거리고.



Andrea Bochelli & David Garrett - Ma Dove Sei


안드레아 보첼리가 노래하는 영상을 배경으로 연주되었던 Ma Dove Sei,

‘눈물을 흘리면서’가 아닌 ‘엉엉 울면서’ 보았다.

감당하기 힘들게 북받쳐 오르는 컨트롤하기 힘든 감정은 눈물이 아닌 울음이 되어 터져 나왔고,

눈물로 자꾸만 흐려지는 모습에 자꾸만 자꾸만 눈물을 씻어내야 했던...


애리 말이 자기도 눈물이 났단다.


Mozart Requiem - Lacrimosa


모차르트의 레퀴엠 Lacrimosa는 내 안의 세포가 하나하나 돋아나는 소름 끼치는 전율...

소년소녀 합창단의 환상의 하모니와 어우러진 웅장하면서도 애절한 레퀴엠을

어떻게 눈물 없이 들을 수 있단 말인가..?



La Bamba는 아는 노래라고 따라 부르며 어깨춤을 추었고,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했던 그가 좋아하는 ABBA의 I have a dream은

바로 오늘 이 순간의 나를 위한 노래 같았다.


나의 꿈이 현실이 되고 있는 바로 이 순간.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뒤범벅인 바로 이 순간 나를 위한 노래였고,

Queen의 We are the Champion 연주는

우리 모두 챔피언이라며 모든 청중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함께 떼창으로 불렀던 시간이었다.


Coldplay의 Paradise


Coldplay의 Paradise를 연주할 때는 금박 종이가 뿌려져 내리자

그 많은 청중들이 미친 듯이 함성을 질러대고...
물론, 나도 뒤질세라 한 다리 껴서 우와아아아~ 외쳐대고~


기념으로 그 금박 종이를 내 어젠다에 담아왔다. 


Babooshka

 

Babooshka를 연주할 때는 어찌나 신나던지 

우리는 어깨춤을 추며 같이 박수를 치면서 함께 손을 흔들며 환호하며 열렬하게 호응했다.


DJ로 나온 친구가 어찌나 귀엽고 웃기던지.

춤을 추고 팔을 흔들고 난리 부르슨데 살짝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그는 전문 DJ가 아니라 바로 밴드의 드러머였던 것. 

그러게 머쓱할 만도 했겠다. 


끝나고 나서 자기 드럼 자리로 가서 앉더니 부끄러워서 얼굴을 푹 숙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우리 모두는 깔깔대며 웃어대고.

서로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이렇게 음악 안에서 하나가 되는 우리들.


데이빗 가렛 공연에는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이 함께 하는데 

그것은 바로 청중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즉 공연을 관람하러 온 관객들 중 한 명을 뽑아 그녀를 위해 연주를 하는 것.


'만약 내가 뽑힌다면....'

행여나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나 혼자 속으로 야무진 꿈을 꾸어보지만

역시나 깨몽~!! 뭐, 꿈이야 꾸라고 있는 거니까. 


어쨌든, 이번 공연에서는 순진해 보이는 소녀가 우아하게 스태프의 손을 잡고 걸어 나오는데, 

독일어로 설명하니 내가 알 수가 없지만

애리 말이 그 날이 바로 그 소녀의 생일이었단다.


소녀에게 바치는 Your Song


그 소녀를 앉혀놓고 엘튼 존의 Your Song을 연주하는 데이빗..

오. 마. 이. 갓~!!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환상 속의 한 장면 그 자체였다.


하지만 데이빗의 깜짝 퍼포먼스는 그쯤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한참 연주를 하다가 살짝 그녀 뒤로 가더니 우리 청중을 보고 씩 웃고는

뒤에서 팔로 그 소녀를 살짝 두르고는 연주를 하는 게 아닌가~ 


그의 팔 안에 앉아있는 건 그 귀여운 소녀인데, 정작 내가 돌아가실 뻔했다는~

그 클라이막스의 순간엔 온 청중들의 환호 소리에 연주가 묻힐 정도였다.


그렇게 그는 매 연주마다 우리를 주체할 수 없는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의 연주가 감동이었던 것은 단순히 그가 잘생겼고 그가 연주를 잘하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


그가 연주할 때 음악에 푹 빠져있는 모습은 매력적이다 못해 치명적이었고,

그가 자신을 보러 온 청중들을 위해 온 정성과 사랑을 다해 연주를 하는 모습은

최고의 위치에 올라있는 자의 겸손함이 느껴져 더 감동이었던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캐리비안 해적 OST를 시작으로 7곡의 메들리를 들려주었는데,

한 20분쯤 연속되는 음악을 그는 신들린 듯 연주하고는 퇴장을 했다.

흑~ 정녕 이게 끝이란 말인가~?



우리들의 끊이지 않는 박수와 환호소리에 데이빗은 다시 들어왔고,

그가 앙코르 곡으로 우리에게 들려준 마지막 곡은 바로 Harry Nelson의 You are always on my mind였다.

제목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MANNHAEIM~!! YOU ARA ALWAYS ON MY MIND~!!  를 외치며 연주한 마지막 곡.

그날만큼은 나도 그가 항상 기억하리라는 '만하임'의 한 명이었다.


우리는 모두 일어서서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흔들며 연주를 들었다.

그 감동의 순간에 눈물범벅으로 헐떡거렸던 이가 어디 나뿐이었을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벅찬 감동의 순간.


그 순간, 

나는 그냥 그렇게 그의 음악 안에 묻혀 죽고 싶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데이빗 가렛과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그리고 드러머



그렇게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그와 그의 밴드 그리고 오케스트라는

청중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극진하게 폴더 인사를 하고는 퇴장을 했다.


기다림의 순간은 그리도 길었는데, 행복의 순간은 찰나의 시간으로 끝났다.

장장 2시간의 연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그렇게 찰나로 느껴졌던 게다.

이 눈물나는 미칠듯한 아쉬움을 어쩌라고...


내가 또 그의 연주를 보러 독일에 갈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브라질에 오면 꼭 꼭 가리라 결심을 하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가득 안고 나왔다.


밖에 나오니 수많은 청중들은 삼삼오오 흩어져 자기 갈길을 가고.

그들의 발걸음 따라 우리도 애리 기숙사로 돌아왔다.



멍했다...

이럴 때면 나는 언제나처럼 ‘연극이 끝나고 난 뒤’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연극이 끝난 후에 관객석을 바라보며 느낄 공허함을 노래한 그 곡.

공연을 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고, 나는 관중의 입장이었지만.

뭔지 모를 그런 공허함을 느끼곤 한다.


‘공연 관람 후유증’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열광하며 몰입했던 감동 속에 온 감정을 다 쏟아내고 난 후 느껴지는 공허함.

내 온몸이 훵그러니 구멍이 나 버린듯한 느낌, 바로 그런 것이다.

게다가 밀려오는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아쉬움까지 더하다 보면

슬픔은 깊어지고.


아름다운 순간이 지나갔음에 슬퍼할 것이 아니라,

그 감동의 순간을 함께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를 하자고 스스로 다독이며 돌아왔다.


애리 말이..

“사실 엄마가 너무 좋아하니까 별생각 없이 따라갔는데, 정말 멋졌어.” 

굿~!! 


애리가 좋았다니, 그래서 클래식이 좋아지고, 데이빗이 좋아졌다니,

마치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한 듯 뿌듯한 마음~ 


정말 죽어서도 잊을 수 없을 벅차고 넘치는 감동을 안겨주며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David Garrett은 발레리나인 미국인 엄마 (Dove-Marie Garrett)와 변호사인 독일 아빠 (Georg Peter Bongartz) 사이에서 태어났다. 데이빗이 5살때, 아빠가 형에게 준 선물인 바이올린을 들고 혼자 뚱땅거리더니

금방 바이올린을 익혀버렸고 아들의 뛰어난 재능을 발견한 아빠는 레슨을 시키게 된다. 급기야 1년 후 6살 때 콩쿠르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며 그때부터 데이빗의  바이올린과의 인생은 시작된다.


재밌는 것은 데이빗이 8살 때, 아버지가 독일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발음하기 쉬운 엄마의 처녀 때의 성으로 바꾸어 데이빗 가렛으로 법적으로 이름을 바꿔버린 것. 아빠의 선견지명이 느껴지는 에피소드다. 결국 아빠의 바람대로 그는 수억만의 전 세계인들에게 그 정감 가는 이름 '데이빗 가렛'으로 사랑받고 있으니..


이미 그는 12살 때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Ida Haendel과 연주를 시작했으니 그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느낄 수 있다. 데이빗은 독일에서 우수한 음악 학교에서 인정을 받으며 음악 교육을 받다가 더 깊은 교육을 받기 위해 18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쥴리아드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하지만 부모는 데이빗의 학비 지원을 주지 않았고, 그는 학교를 끝내기 위해 카페나 학교 도서관, 심지어는 아웃렛 옷가게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그때 모델을 서기도 한다.  그렇게 쥴리아드를 졸업하고 로열 칼리지 음악학교를 졸업하여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라온 데이빗. 외모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꽉 찬 그가 아닌가.


자유로운 영혼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어느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클래식과 영화 음악 그리고 팝과 록에 이르기까지, 그는 음악 장르와 악기의 경계선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모든 것을 초월하여 음악을 한다. 어떤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열린 마인드로 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를 사로잡은 이유였다.  그의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거부할 수 없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그가 연주할 때의 완전 음악에 빠져있는 모습이란. 고혹적인 아름다움 속에 열정적인 오로라를 뿜어내는 것. 

사실, 내가 데이빗 가렛에 대해 알아본 이유는 인물이 좀 반반하고 바이올린을 좀 켜기에 유명해진 상업성 연주가인지 정말 실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뭐 그가 상업적이거나 아니거나 나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겠으나, 왠지 그가 진정 실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면 좋겠다는 조심스러운 바람이 강하게 일었다. 그 은근한 바람이 그를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일으킨 것이다. 


그의 바이오그래피를 읽고는 너무 감사했고 너무 행복했다. 그가 14살 때 연주한 니콜로 파가니니의 La Campanella는 감정이나 해석이나 테크닉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도저히 14살 소년이 연주를 했다고 믿을 수 없는 연주라 것이 음악가들의 이야기다. 그는 인제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클래식이 아닌,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 클래식으로 우리를 감동 속으로 내몰며 다이돌핀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만하임 공연에서 그는 연주하는 중간중간 청중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한 번은 일본 공연에 갔을 때였단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독일에 계시는 엄마에게 전화가 왔는데 하시는 말씀,


"데이빗, 냉장고가 고장 났어, 어떡하지..?"


우리는 깔깔대고 넘어갔다.

우리에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지만, 엄마에겐 그저 아들일 뿐..

지구 반대쪽으로 공연 간 아들한테 냉장고 고장 났다고 전화하는 엄마가 얼마나 친근하게 느껴지는지..

그런 사랑 가득한 가정에서 자랐음이 느껴져 내 입가엔 엄마 미소가 가득했다는...


이쯤에서 마쳐야겠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데이빗 가렛 이야기.

늘 삶의 축복이 그에게 가득 넘쳐나길....


아쉬움 속에 그의 연주 하나 더 올리고 간다.
이젠 정말로 끝~!!

Summer The Four Seasons - Vivaldi


David Garrett 주연의 The Devil's Violinist: Paganini 중에서..

Niccoló Paganini - Capriccio No.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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