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음악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낭만이 있었던 우리 시절
요즘의 젊은이들은 로드 스튜어트를 알까 모르지만,
학창 시절 우리 시대엔 로드 스튜어트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오늘 유튜브에서 음악을 찾다가 로드 스튜어트가 문득 눈에 띄어 쿠욱~ 클릭~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르는 Have you ever seen the rain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학창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내가 한국을 떠난 후에는 이문세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단연코, 김기덕, 이종환, 서금옥이었다.
그들이 진행하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선
로드 스튜어트의 음악은 단골손님이었고,
청취자들이 보내는 편지를 읽어주며 신청곡을 틀어주곤 했다.
참으로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시절이었다.
행여나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가던 길을 멈추고 누구 눈에 뜨일까 봐 조용히 레코드 가게 옆에서 그 곡이 끝날 때까지 듣곤 했던 기억.
살포시 미소가 그려진다. 그렇게도 좋았을까.
우리 집은 그 당시 아빠가 사업에 실패하신 후였기 때문에 가난했고..
다섯 남매 학비 내시기도 벅찼던 시기였다.
당연히 우리 집에 레코드가 있을 리 만무였다.
그랬기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레코드 가게에서 녹음을 부탁해서 듣곤 했다.
레코드 가게에 좋아하는 곡이 적힌 리스트를 들고 가 카세트 녹음을 부탁했는데
그러면 상황에 따라 하루나 이틀 또는 그보다 더 많은 날을 기다려야 했다.
그 기다림이 얼마나 설레고 행복했는지.
물론, 좀 시간이 지난 후엔 내가 직접 카세트 레코더로 녹음을 했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비용을 지불하고 카세트에 녹음을 해서 음악을 듣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를 할 때나 책을 읽을 때는 늘 음악을 듣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녹음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당시엔 언제나 카세트 레코더에는 녹음을 할 수 있는 공테이프가 끼워져 있었고
언제든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곧바로 녹음을 할 수 있도록..
Record 버튼과 Play 버튼, 그리고 Pause 버튼이 항상 눌러져 있었다.
(Stop 버튼이었나..? 기억이 가물하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공부하다 말고 번개처럼 버튼을 눌러 녹음을 하곤 했는데,
DJ 목소리가 들어가면 눈물을 머금고 다시 지우곤 했다.
내가 간절히 기다리며 듣고 싶어 했던 음악에 이물질(?)이 끼어들어
음악에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 참으로 싫었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음악이든 내 마음껏 구해서 들을 수 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그때, 음악에 대한 나의 고집은 참으로 집요했던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테이프를 들어보니
그때는 그렇게도 싫었던 음악에 끼어든 DJ 목소리가 참으로 정겹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아예 프로그램 자체를 녹음을 할걸....
그 아쉬움은 지금껏 안고 있다.
지금도 그 테이프들을 모두 갖고 있다.
추억이 묻어있는 것은 찢어진 종이 한 장 버리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성격..
그렇게 이 나라 저 나라로 다니면서도 그 추억 보따리를 그렇게 안고 다녔다.
유학 시절, LA에 폭동이 일어났을 때도 동생 친구네로 피신하면서 내가 챙겼던 것은
옷과 식량이 아니라 바로 내 카세트와 CD였음은 말 다했을 것이다.
그런 내 모습에 모두들 경악했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철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
어쨌거나 그 당시 내가 좋아라 했던 음악을 들으면
눈물 나도록 아름다웠던 그때의 추억에 울컥하며 코끝이 시큰거려진다.
드라마 ‘응답하라’를 보면서 그리도 꺼이꺼이 울며 눈물로 보았던 것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섬세한 디테일까지 표현해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난해도 낭만이 있었던 우리 시절...
그랬다.
우리에겐 음악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낭만이 있었다.
오늘 로드 스튜어트의 음악이 더욱 반가웠던 것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젊었을 때의 그 매력적인 목소리가 여전히 살아있었음이다
마치 오랜 세월을 타지에서 보내다 그리운 고향에 돌아왔는데
그대로인 우리 동네를 볼 때 느껴지는 울컥해지는 그런 반가움....
허스키 보이스라 그런가.
아무리 좋아했던 가수라도 대체적으로 세월과 함께 변해버린 목소리에
듣다가 슬퍼지곤 하는데 그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좀 더 부드러워진 느낌은 있었지만..
I don’t wanna talk about it
고등학교 때는 그냥 노래가 좋아서 마냥 들었던 곡인데..
좀 더 커서는 자꾸만 어쩔 수 없이 깊어지는 사랑으로 눈물로 밤을 지새우게 했던 곡이다.
내가 좋아했던 그는 내게 자기 여자 친구 문제까지 다 의논하던 친구였다.
그에게 나는 남자 친구 같은 편한 친구였다.
그랬기에 '친구'라는 우정을 깨고 싶지 않아 10년을 가슴에 묻어둔 해바라기 사랑...
어느 날 밤, 동생이 틀은 라디오에서 때마침 흘러나온 'I don’t wanna talk about it'
참고 참았던 울음을 꺼이꺼이 터뜨린 나를 놀래서 쳐다보던 내 동생은 그 후로 슬픈 곡은 절대 틀지 않았다.
지금은 내 옆지기가 된 남편을 그렇게도 사랑했었네.
지금은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음에도
남편을 사랑하며 들었던 음악을 들을 때면 눈물이 맺히곤 한다.
'그렇게도 좋았을까' 살포시 웃음도 나오고...
애교도 없고 무뚝뚝한 나에게 종종 남편이 하는 말~
"나 좋아한 거 맞아..?"
" @##%$@#@$##@@"
음악을 들을 때면 언제나처럼 지난날의 추억이 함께 선물처럼 따라온다.
팝송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음악의 황금기 시절을 함께 누린 우리.
그것도 가장 섬세하고 정서적으로 가장 풍요로웠던 사춘기 시기에 그들의 음악과 함께 했다는 것은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축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