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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Jan 20. 2021

중앙대학교 휴게실에서 만난 'The Boxer'

'한 여름밤의 꿈'은 '한여름 밤의 악몽'으로 끝났지만...


퇴근길에 비를 잔뜩 맞았다. 열심히 잘 들고 다니던 우산을 오늘따라 잊었음이다.

‘비누라도 있었음 내친김에 자연 샤워가 됐을 텐데..’ 혼자 킥킥 대며 집에 들어왔다.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는 오랜만에 유튜브 뮤직을 틀었다.


랜덤으로 흘러나오는 음악들.

캣 스티븐슨의 Morning has broken을 시작으로

John Denver와 Don McLean의 베스트 앨범을 거쳐 Carol King으로 넘어가더니

Nazareth과 Black Sabbath에 잠시 머물렀다가

툭 튀어나온 Erick Clapton의 Wonderful Tonight에 아련한 추억 속에 잠겼다.

마음을 추스르고 빠져나올 때쯤 흘러나온 것은 Simon & Gafunkel의 음악이었다.

고등학교 때 미쳐라 하던 Sound of Silence, 그리고 이어진 The Boxer.


The Boxer

학생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The Boxer를 들으면 중앙 대학교가 생각난다.

그 당시 우리 학교 선생님께서는 연주회나 뮤지컬 또는 연극 등을 보고

감상문을 제출하라는 숙제를 종종 내주시곤 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국어 숙제가 바로

중앙 대학교 연영과에서 하는 ‘한여름밤의 꿈’ 뮤지컬을 보고 감상문 쓰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적에 목숨 거는 학생들.

우리는 그 귀한 토요일을 반납하고 친한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중앙대학교로 향했다.

길을 잘 모르던 나와 내 친구들은 헤매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연극은 시작된 후였다.

하는 수 없이 다음 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다음 시간까지는 많이 기다려야 하고, 일단 고픈 배부터 채우자며 우리는 휴게실로 향했다.

물어물어 도착한 휴게실, 그 방대함이란.

우리 학교의 조그만 매점만 보다가 대학교의 커다란 휴게실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하지만, 놀랬던 것은 그 휴게실의 크기만이 아니었다.

들어서는 순간 스피커에서 귀가 터져라 흘러나오는 팝송은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바로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Boxer~’

꺼이꺼이~ 거의 눈물 나오는 순간~


아~ 그랬다~

나의 온몸을 타고 흐르는 소름 돋는 전율...

바로 내가 그 순간 느꼈던 것은 바로 ’ 자유’였다..

‘자유~!!’


Paul Simon & Art Garfunkel



젊은 지성들의 집합소, 우리들이 꿈에 그리던 ‘대학’이란 곳의 자유로움

물론 대학엘 간다 해서 나에게 모든 자유가 그냥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들의 고뇌가 있고, 지금의 대학생들은 취업 준비까지 더해져 여전히 고생의 연속이고.

(어쩌면 우리 때 보다 더 고통스러운...)


하지만, 숨 쉴 수 없는 지옥의 스케줄로 꽁꽁 묶여있던 우리 고등학생들에겐

휴게실에서 남녀 학생들이 자유롭게 웃고 떠들며 팝을 맘껏 크게 틀어놓고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뒤흔드는 자유를 느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릴 만큼 부럽고 또 부러운 가슴 벅찬 감동이었으며

그것이 ‘자유’라고 느껴졌던 것은 어쩜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는..

그 자유를 느끼기 위해서 대학을 가야만 하는 것 같았고..

대학을 가지 않으면 평생 그 ‘자유’란걸 느껴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마저 느꼈다.

(그 모든 것에 ‘공부’는 빠져있었다..^^;;)


그 자유를 느껴보기 위해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자며

얼마나 다짐에 다짐을 했더랬는지.

독립투사의 각오가 그리도 비장했을까.


그렇게 감동과 감격과 부러움이 범벅이 되어 열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기대에 가득 차 들어갔던 연극 ‘한여름밤의 꿈’은 한여름의 악몽으로 끝났고

그 지루했던 연극의 감상문은 서로 베끼고 더하고 빼고 해서 대충 제출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지금 그 친구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인제 모두 중년의 여인이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겠지.

그때 함께 한 친구는 아니지만, 친구 아들이 군대도 다녀오고, 또 다른 친구의 딸은 결혼까지 했으니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다.


그렇게 함께 두 주먹 꼭 쥐고 원하는 대학에 가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우리

그 약속을 먼저 깨고 배신을 때린 것은 나였다.

고1 때도 아니고 고2 때도 아니고, 정확히 고3 때 이민을 떠났다.


많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가득 안고 마치 다른 은하수로 마실 가듯 그렇게 떠났다.

고3의 입시지옥을 유유하게 합당한 이유로 벗어나는 나를 친구들은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나 역시 그 입시지옥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외국에서의 생활이 그리도 처절 하리라곤 나도 친구들도 그 당시 알지 못했다.

단지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만이 서럽고 슬펐을 뿐.

우느라고 퉁퉁 분 눈으로 온갖 신파극을 벌이며 그렇게 헤어졌던 우리.


외국에서의 대학생활은 그당시 내가 한국에서 그리던 그런 낭만이 느껴지는 대학생활이 아녔다..

클럽 생활이니 여행이니 그러한 것은 내게는 사치였다.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늘 공부와 리포트 제출로 시간이 모자라던 생활.

그래도 내가 가장 치열하게 살았고, 꿈을 향해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때의 나를

나는 가장 사랑한다.


'The Boxer' 덕분에 추억 속에 풍덩 빠졌던 오늘...

The Boxer를 들을 때면 나는 볼륨을 올린다.

그때 나의 귓가를 힘차게 때리며 나를 열광 속으로 몰고 갔던 그때의 그 느낌을 그대로 느끼고 싶어서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때 중앙대학교 휴게실에서의 우리가 선하게 그려진다.

그때 느꼈던 감동, 놀라움, 동경, 희열, 열정으로 가득했던 우리...

그리고 순수했던 우리들의 그 시절의 마음 시리도록 아름다운 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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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xer - Simon & Garfunk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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