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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Dec 08. 2021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고

나한테는 도토리 줍는 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 키가 작아 땅과 가까웠기



책 리뷰에 앞서 작가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포리스트 카터 또는 Asa Earl Carter라고 불리는 그는 1925년 9월 4일에 태어나 1979년 6월 7일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윌로 존이 있는 그곳, 산 넘어 바람이 오는 나라로 떠났다. 54세의 나이, 너무나도 짧은 생이었다.


포리스트 카터는 어릴 때 ‘작은 싹’이라고 불리다가 ‘작은 나무 Little Tree’로 불리게 된다. 한창 엄마 품에서 안겨 있어야 할 5살 때 엄마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 산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자연과 함께 숨 쉬며 자연을 사랑했고, 평생을 자연과 함께 살아온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그는 자연의 숨소리를 느끼는 법을 배우고, 삶의 지혜를 배웠다. 책에서 느껴지는 그는 차분하면서도 총명하고 생각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꼬마였음이 느껴진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게 하고 옳고 그른 것을 스스로 깨달아 알게 해 주신 지혜로운 할아버지. 조용하고 따뜻하시면서도 깊은 지혜와 사랑으로 할아버지와 리틀 트리를 조용한 배경음악처럼 둘을 배려하며 보살피는 아름다운 할머니로부터 삶 안에서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삶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배웠다. 그렇게 인디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 속에 성장한 그는 체로키 인디언 혈동을 이어받은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작가였다.


포리스트 카터는 54세의 짧은 삶을 살고는 세상을 떠난다.  그에게 이 혼탁한 세상은 슬프지 않았을까? 그의 깊은 외로움이 전해지는 듯했다. 바람처럼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었던 리틀 트리. 그는 그렇게 늘 산을 그리며 산을 바라보았을 것 같다. 어쩜, 그에게 삶은 그리움이었을지도.


너무나 맑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리틀 트리. 내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리틀 트리의 눈으로 삶을 바라본다면 그래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들을 단순히 Love 하는 게 아니라 Kin 하게 된다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지겠지. 내가 '있음'으로 해서 아름다워지는 삶, 포리스트 Little Tree의 눈을 통해 배운 따뜻한 배움이었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엔 그가 백인 우월주의자로 KKK단이었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믿을 수가 없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산에서 자랐고 할아버지로부터 ‘다름’을 넘어선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 그가, 그렇게 맑은 영혼을 가진 그가 백인 우월주의인 것도 믿을 수 없다. 그가 그 잔인한 KKK단이라는 사실은 도저히 이해 안 가는 부분이다. 물론 위키피디아에 정확성을 알 수 없다고 표기되어있기에 누군가 잘못 알고 올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의 저서로는 <제로니모> <조 웨일즈의 복수의 길> 등이 있으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그의 자전적 소설로 그 살아생전엔 별로 주목받지 못했으나 그가 죽고 난 후 빛을 발한 책이다. 절판되었던 이 책은 뉴 멕시코 대학 출판부에 의해 다시 발간되었고 무려 17주간이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고수했으며, 후에 ABBY상을 수상했다.




리뷰로 들어가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한비야 언니의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다가 비야 언니의 강추로 읽게 된 책이다. 책을 읽기 전 맨 앞 페이지에 이렇게 적어 넣었다. 


“나의 영혼이 좀 더 맑고 따뜻해지기를 바라며...”


책을 펴자 [들어가며] 첫 줄에 책의 한 부분이 적혀있다.

할머니가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널리 펴지게 된다.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아직 한 구절도 읽지 않았는데, 따뜻한 뭉클함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메말라있던 나의 영혼을 살포시 보듬어주는 듯한 느낌에 순간 울컥했다. 


작가 조사를 하며 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정보를 알고 읽어선지, 읽는 내내 주인공 리틀 트리와 포리스트 카터가 오버랩되었다. 마치 어른 포리스트 카터가 5살 꼬마 리틀 트리의 눈으로 바라본 삶을 표현한 듯 맑고 순수하면서도 순진한 표현들. 작가의 감정이나 사실에 대한 묘사는 참으로 부드럽고 섬세했고 따뜻했다. 온전히 나를 사로잡아버렸다. 


너무나 예쁜 이야기들, 이 책은 절대 빨리 읽고 싶지 않았다. 마치 좋아하는 초콜렛을 서랍에 숨겨 두고 몰래몰래 하나하나 꺼내어 살금살금 먹는 것처럼 그렇게 아주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싶었다. 그 모든 것을 나의 세포 안에 하나하나 그 느낌을 온전히 담아내고 싶었다.


이 책은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 아주 특이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작가의 섬세한 표현, 심리 묘사,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산에 사시는 분들답게 어린 리틀 트리의 눈높이에 맞게 모든 삶과 자연의 이치를 간략하고 쉽게 설명해주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마치 컬러풀한 그림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쩜 그래서 그 느낌이 그리도 더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동화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깊은 삶의 철학. 왜 뉴 멕시코 대학 출판부에서 다시 출판을 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메마른 현대인의 영혼을 촉촉이 적셔줄 아름다운 고전이 필요했을 것이다.


Little tree는 할아버지의 삶을 바라보는 우직한 정직함과 깊은 인간미, 그리고 할머니의 따뜻함과 지혜로움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조용하면서도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나름대로 이해하려 하고 함께하려 하며 열심히 배우는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분명하게 확신이 없는 자신들만의 상상 속에 근거하는 의견이라면 ‘조사해보면 알겠지만..’으로 시작한다. 순수하고 맑은 사고가 그대로 묻어나는 표현. 손자가 당신들로 인해 검증되지 않은 정확하지 않은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정확성에 신중을 기하시려는 모습. 그 짧은 표현에는 진실되고 정직한 것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느껴지기도 했고, 또한 그와 함께 ‘조사’ 해 보아서 당신들의 생각이나 정리한 논리가 사실이 아닐 경우 옳은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넉넉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조사해보면 알겠지만..’으로 글이 시작되면,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까?' 나의 모든 감각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미친 듯이 빠져들곤 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멕베스와 줄리어스 씨저 그리고 조지 워싱턴이 할아버지와 얽힌 이야기 부분에서는 너무 웃겨서 정말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할아버지는 집중력이 좋은 분이셨다. 어디 그뿐인가. 인내심과 분석력도 뛰어나며 상상력 또한 풍부하신 분이시다. 결국 조지 워싱턴이 머리에 총알이 스쳐 지나가 위스키세를 만든 것에 대한 정당한 설명이 될 이유를 찾아내셨으니 말이다. 할아버지가 정숙하지 못한 멕베스 부인의 행동을 두고 며칠이나 끙끙거리시며 고민하시다가 암사슴과 비교하며 이해하시려는 모습은 정말이지 압권이었다.


줄리어스 씨저 부분을 하나 옮겨보자면...

 <<줄리어스 시저>>가 죽는 장면에서 할아버지는 시저 편을 들었다. 시저 씨가 한 일마다 모두 편들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고, 또 사실 시저 씨가 어떤 일을 했는지 일일이 알 방도도 없지만, 부르투스와 그 일당들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비열한 인간들이다. 일부러 친구를 넘어뜨리고는 떼거지로 몰려들어 칼로 찔러 죽이다니! 시저 씨와 의견이 맞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생각을 확실하게 말해서 타협을 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았는가라고 하시면서, 이 문제를 놓고 할아버지가 워낙 심하게 흥분하시는 바람에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달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할머니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모두 다 죽임을 당한 시저의 편이다. 그러니 당신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어쨌든 그건 워낙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라 지금 왈가왈부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고 할아버지를 설득하셨다.


리틀 트리도 그에 못지않다. 사전 공부를 B까지 나가지 못해서 ‘사생아 Bastard’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은 어찌나 웃기던지. 너무 귀여운 우리 리틀 트리. 


정작 당신은 좋아하시지 않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불편한 구두를 신고 교회를 가는 할아버지. 언제 미칠지 모른다고 생각되는, 그래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목사에게 헌금을 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그래도 ‘자릿값’을 낸다 생각하면 괜찮으시기에 헌금을 할아버지. 


이 책은 정말 읽다가 생각지 않은 곳에서 미친 듯이 웃게 만든다. 읽는 나는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웃는데 정작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그림은 너무나 진지하다. 그래서 더 웃기는 상황. 모든 행동에 항상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고 늘 진지한 할아버지. 자신의 삶의 철학이 뚜렷하신 할아버지. 난 그런 할아버지가 정말이지 좋았다.^^


리틀 트리는 엄마 아빠가 일찍 세상을 떠나신 것을 제외하면 참 축복받은 아이였다. 그에게 넘치는 사랑을 폭포처럼 쏟아부어주고, 삶이 무엇인지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지혜로운 분들로부터 삶의 레슨을 배울 수 있었으니.



이렇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포리스트 카터는 삶이 행복했을까? 과거형의 사람이었음 현재가 힘들었을 것 같고, 현재형의 사람이었다면 그의 현재도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하게 꾸며갔겠지. 


책을 조금 읽다 보면 금방 느끼겠지만, Littler Tree는 정말 너무나도 감성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은 너무나도 귀여운 아이였다. 어떠한 일에도 그 작고 귀여운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을 반짝거리며 배우고 듣고 열심히 마음으로 함께하는 손자가 할머니 할아버지는 얼마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우셨을까.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의 지혜가 가득한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 놓으며 때에 맞춰 그것을 적용할 줄 아는 아주 영특하고 지혜로운 아이였다.


만일 포리스트 카터가 도시에서 살았더라면 그 모든 것이 그렇게 씸플 하고 명확한 의미로 다가오긴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연을 배우기보단 경쟁하는 삶을 먼저 배웠을지도. 그래서 그의 맑은 영혼은 경쟁 속에 혼탁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사람의 본성이란 타고나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그의 맑고 깨끗한 영혼은 자연을 향했을 것이고, 삶의 가치를 중심에 두는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란 그림이 그려진다. 도시에 사는 우리가 모두 혼탁한 영혼을 가진 것은 아니잖은가.




이야기가 끝났다. 그냥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 뺨을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과 흐느낌만 정적을 메우고. 윌로 존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당신들이 오신 그곳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리틀 트리는 블루 보이와 리틀 레드와 함께 자신만의 여행을 이어간다. 그 어디에도 없는 인디언 연방을 찾아서. 그리고 리틀 레드도 블루 보이도 하나하나 그의 곁을 떠난다.


이런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의 슬픔이 싫다. 차라리 가슴을 때리는 절절한 슬픔이라면 실컷 울고 나면 나아질 것이다. 이렇듯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나를 오랫동안 그 안에 머물게 하는 아린 슬픔. 그래서 아무 표현도 할 수 없는 느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포리스트 카터. 그가 어린 리틀 트리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많은 부분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받아들이려 했을 것이고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마치 바람처럼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었을 것 같은 포리스트.


읽는 동안 너무나도 행복했고, 너무나도 즐거웠고, 너무나도 감동이었다..

읽는 동안 너무나도 슬펐고, 너무나도 고통이었고, 너무나도 아픔이었다.

읽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깨달음이 있었고, 많은 뉘우침이 있었다..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 자연이 가르쳐주는 지혜가 무엇인지 그리고 삶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우리와 함께 하는 가족과 이웃들을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만 판단하지 않으며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Kin 해야 하는지. 


리틀 트리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보낸 짧은 삶 속에서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로 들려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한비야 언니는 왜 그렇게 꼭 읽어야 한다고 강추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리뷰를 쓰는 동안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댄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과 함께 했던 지난 며칠, '내 영혼이 따뜻했던 시간'이었다.


내 마음 안에 리틀 트리가 깊이 들어와 앉았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소년 리틀 트리. 우리 딸들에게 꼭~ 꼭~ 읽혀주고 싶은 책이다. 이 아름다운 책을 소개해주신 한비야 언니께 감사드린다.


이는 말씀...


마지막으로 번역하신 조경숙 님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 아름다운 책을 이렇게 맛깔스럽고 섬세한 표현으로 번역을 해주어 때때로 꺼이꺼이 울기도 하고 깔깔대고 웃기도 해가며 내가 이리도 감동 속에 난리 부르스를 출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많은 부분 번역하신 분이 원본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멋진 번역을 해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포리스트 카터가 조경숙 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 만약 어설픈 번역본으로 나왔더라면 이리도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조경숙 님 감사드립니다. 

 


2010.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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