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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Mar 27. 2023

Muse의 노래같은 김영하의 <퀴즈쇼>

인생의 어떤 특별한 순간에는 비유가 현실이 된다.


오래전에 읽었던 <퀴즈쇼>는 김영하 작가가 쓴 장편 소설 중 가장 첫 번째 읽은 장편 소설이다. 


<퀴즈쇼>가 어떤 내용이냐고 묻는다면 참으로 심플하다. 민수라는 청년이 최여사라고 불리는 할머니 밑에서 고이 자라다가 어느 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와중에 애인과도 헤어지게 된다. 최여사의 친구였던 곰보빵 할아버지로부터 최여사의 빚이야기를 듣게 되고 할아버지에게 집을 넘겨준다. 특별히 삶의 열정도 특별한 목적도 없는 민수는 할머니가 갖고 계시던 헌책을 판 돈으로 고시원 생활을 하게 된다.


으리하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쾌적한 집에서 살다가 창문하나 없는 고시원생활을 하게 되는 민수는 심심하던 차 '퀴즈방'이라는 채팅방에 들락거리게 되고 거기서 ‘벽속의 요정’이라는 닉의 여성을 알게 되고 그녀의 매력에 푹 빠지며 급기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가 퀴즈쇼에 출전한 것은 오로지 ‘벽장 속의 요정’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런 가운데 민수는 고시원에서 미지의 옆방녀를 알게 되고 그녀에게 어찌어찌하여 2십만 원이라는 돈을 꾸게 된다. 그런데 고시원을 하루 비운 사이 그녀는 자살을 하게 되고 고시원마저 쫓겨나게 된다.


민수는 꿈이 있고 그 꿈과 목적을 향해 열정을 불태우는 그런 청년은 아니다. 책에서 느껴지는 민수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청년이다. ‘사생아 태생’이라는 특이한 출생환경과 독특한 할머니와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에 더하여 타고난 본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늘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에 더 훈련이 되어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사랑하는 지원이와의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에도 그는 미래에 다가올 불행을 미리 연습하며 스스로를 도닥거린다. 꿈이라고, 이것이 현실이어도 곧 끝나게 될 거라고. 지원이는 자신에 걸맞은 부유한 집안의 엘리트와 만나게 되고 자신을 버리게 될 거라고. 잃는 것에 익숙하고 갖는 것에 어색한 민수는 그 어떤 색이 입혀지지 않은 무채색 같은 그런 느낌이다. 담배 연기 자욱한 어두운 Bar같은 느낌. 바로 뮤즈의 음악처럼.




암튼, 민수가 출전한 퀴즈쇼를 보고 민수에게 접근하는 ‘이춘성’이라는 캐릭터가 참 재밌다. 순수하면서 잃는 것에 익숙한 민수에게 나타는 그가 행여라도 나쁜(도박이나.. 그런..) 곳으로  발을 들여놓게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지만 이야기 전개는 더 독특하다. 


민수는 퀴즈로 돈을 벌고 잃고 하는 아주 이상한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또 다른 등장인물인 유리의 말에 의하면 그들의 정신은 백업이 되어 안드로이드 같은 우주로 보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상세계에서 죽게 되면 그들의 육체가 누워있는 그곳으로 정신이 되돌아가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가상세계에서도 ‘관계’의 복잡함은 존재하고 현실과 똑같은 감정적인 문제, 경쟁의 문제, 목표와 사랑과 얽힘과 부딪낌은 어김없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첨엔 호기심과 매력으로 임하던 민수는 여러 가지 얽힘 속의 주인공이 되고 그는 유리의 살인에서 벗어나고자 도망을 치게 되는데 자기가 들어갔던 도시와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나오게 되며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지원을 다시 만나게 되고 자신의 책을 팔았던 헌책방 주인을 만나게 된다. 민수는 그곳에서 일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지원이와 새로운 관계를 암시하면서 말이다.




<퀴즈쇼> 스토리는 심플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 심플한 스토리로 김영하는 ‘이민수’라는 한 청년을 통해 그렇게 524 페이지에 걸쳐 집요하게 펼쳐낸다. 놀라운 능력이다. 


이 책을 읽으며 김영하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내겐 더 큰 재미로 다가왔다. 그가 '팟캐스트'를 통해 소개한 많은 작가들이 책 곳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때 느껴지는 즐거움은 마치 숨은 보물을 찾았을 때의 짜릿함을 안겨주었다. 책 속에서 만난 인물을 현실에서 만난 듯한 그런 신기한 느낌이랄까. 마치 사차원과 삼차원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그런 아주 기묘하면서도 희열이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내 사랑 십자드라이버>처럼 드라마틱한 내용들로 나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것도 아니었고, 또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으로 뒤가 궁금해져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은근한 중독 같은 흐름으로 결국은 어제 새벽까지 퀴즈쇼를 붙들고 있었다.


김영하 때문(?)에 소설을 읽고 있는 나. 앞으로도 좀 더 많은 소설이 내 손에 들려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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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와 '벽 속의 요정' 지원의 사랑을 이어주게 된 노래...

Muse의 Unintended 함께 올린다.

<퀴즈쇼>의 회색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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