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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챠드 파인만은 천재 물리학자고, 나는 과학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이과를 택하긴 했지만 사실상 나는 이과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학생이었음을 그때는 몰랐다. 그런 내가 갑자기 웬 파인만의 자서전을 읽으려 했을까. 이유는 단 하나, 파인만의 엄마와의 인터뷰를 읽은 후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천재를 아들로 둔 엄마의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그 애가 무슨 천재냐며 코웃음을 치며 시니컬한 대답을 해준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도 재밌어서, 대체 그 아들내미의 모습이 어땠길래 그 천재의 엄마 입에선 그런 표현이 나왔을까 호기심이 일었음이다.
사실, 고백건대 ‘파인만’이 읽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궁금했다. 20세기의 천재이며 과학자라는 진지하면서도 고매한 타이틀을 가진 그가 그렇게 개구쟁이 었고 장난꾸러기였다는 사실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게다가 책 표지 속의 그는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누군들 매력적인 사람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까. 여성이고 남성이고를 떠나서 난 지적이고 매력적인 사람들을 좋아한다. 여성으로는 미셸 오바마, 재클린, 그리고 칼리 피오리나. 남성으로는 나를 온전히 사로잡은 알랭 드 보통이 그렇고, 파울로 코엘료가 그렇고, 스티브 잡스는 물론 파인만이 그렇다.
위인들의 삶은 겉으로만 살짝 들여다보아도 ‘모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정교육이 남달랐음을 느낄 수 있다. 근래에 읽은 스티브 잡스를 보아도 그랬고, 그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도 그랬고, 또한 조니 아이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교육열이 강하고 아이들 교육에 참여하는 분들을 부모로 두었다. 파인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인만의 아버지는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아들이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과학자가 될 거라고 확신 속에 말씀하시곤 한다. 그의 꿈의 현실이 되도록 파인만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연의 이치를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가르쳐주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정성스럽게 아들에게 쏟는 부분은 감동적이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책에서 느끼는 파인만의 아버지는 비록 당신이 깊고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으셨을지는 몰라도, 어떤 사물을 보고 관찰하며 아들에게 당신의 언어로 재밌는 표현으로 설명해주신다. 그러기 위해 아버지는 파인만과의 둘 만의 시간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는데, 아들에게 얼마나 정성이셨더랬는지. 오죽하면 파인만의 친구들의 어머니들이 그런 파인만의 아버지를 부러워해 자신들의 남편들을 들들 볶았을 정도라니. 한국이나 외국이나 자식들의 교육에 대한 엄마들의 극성은 같은가 보다 싶어 웃음이 나왔던 부분이다.
이렇듯 파인만의 아버지는 사물을 보고 섬세한 부분까지 관찰하는 방법, 그리고 즐겁게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런 아버지를 통해 파인만은 어렸을 때부터 어떤 원인으로 어떠한 과정에 이르게 되고, 또한 어떠한 결과에 이르게 되는지를 사고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게 된다. 때때로 틀린 설명을 하실 때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에게 과학적인 사고를 키워주고자 함이었다. 즉, 자연의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도 그 근원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갖게 하고, 그 현상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하는데서 과학에 깊은 관심을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훗날 어려운 물리 이론을 재밌게 풀어내는 파인만의 유머로 근원을 이해하는 방법, 그리고 자신만의 언어로 재밌게 표현할 줄 아는 그의 능력은 아버지로부터 배웠음은 굳이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파인만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육이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책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파인만의 어린 시절의 첫사랑 알린, 그녀와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그가 가장 가슴 아파하며 서술했던 부분이었다고 이 책을 엮은 렐프 레이턴은 말하고 있다. 그토록 사랑했던 운명의 만남인 그녀, 알린이 그렇게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지 않았다면 파인만의 삶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파인만의 알린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로맨틱해서 숨이 멎을 정도였다. 그들의 사랑은 눈부시게 맑고 아름다웠으며 당당했다. 죽음을 앞둔 삶이기에 사랑하지만 헤어진다는 그런 신파극은 그들에게 없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알린도, 그런 그녀를 매주 병문안하면서 함께 하는 파인만도 그 둘이 함께 하는 동안 행복했다. 그들의 짓궂은 장난기는 참으로 닮아서 로르 앨러모스의 군간부들을 여러 방법으로 부부가 합동으로 골탕을 먹이곤 했다.
알린도 그도 그들이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기에 어쩌면 그들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그렇게 매 순간을 만끽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가끔, 아주 가끔씩 그렇게 시한부 인생을 사는 그들이 부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들 자신의 죽음의 시기를 앎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으니까. ‘스스로에게 남은 유한한 시간을 이미 알고 있기에 삶에 대한 마음도 자세도 달라지며 온전히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물론 내가 내게 주어진 삶에 열정으로 임하기 위해 시한부 삶을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때때로 어떤 극단적인 자극은 우리에게 열정을 쏟아붓게 하고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천재 과학자이면서 개구쟁이고 장난꾸러기에 유머까지 갖추고 잘생기기까지 한 그가 이렇게 한 여인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다니.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점점 파인만에게 빠지고 있었다.
파인만의 열정은 어떤 특정한 분야의 구분 없이 삶의 모든 곳 구석구석에서 표출되었다. 그것은 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했고, 그가 알린을 잃었을 때도 그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 ‘어려움’이나 ‘문제’는 재밌는 놀잇감이다. 그는 무엇이 고장 나거나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풀다가 그만둔다는 것은 도저히 억울해서 못 견딜 일이다. 그러한 그의 집념과 몰입 능력은 엉뚱한 데로까지 뻗처나가 나중엔 ‘금고 털이’로 명성(?)을 날리기까지 하는데, ‘프레드릭 드 호프만’의 금고를 터는 부분에서는 얼마나 웃었던지 눈물까지 흘리며 배꼽을 잡았다. 정말이지 그의 엉뚱함이란.
게다가 배움의 열정 또한 대단해서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배우던 랍비의 가르침 중 진실된 예가 아님을 알게 된 어느 날, 지금까지 배운 것 중 어느 게 진실이고 어떤 게 진실이 아닌지, 지금까지 배운 걸 어쩌란 말이냐며 따지며 엉엉 울던 꼬마 파인만. 그의 울부짖음이 너무나 귀엽고 진지해서 그의 설움(?)에 공감하기 전에 웃음부터 터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그의 삶 속에 ‘진실’이란 그토록 중요한 가치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하긴 우리 모두에게 그렇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진실’이란 너무나도 큰 고통을 안겨주기에 모른척하고 싶기도 하며, 고개를 돌리며 안 보고 싶어 할 때도 있다. 하지만 파인만은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 싶은 바로 그 순간에도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를 가진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암튼,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봉고, 북, 그림 등등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무엇에서든 아마추어로서의 능력을 있는 것 뽐냈다. 하나를 제대로 하기도 힘든데 그는 배우고자 하는 것엔 푹 빠졌고, 그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야 마는 그였다. 하지만 그것은 성과 주의자의 모습이 아닌 배움 자체를 즐기며 삶의 행복을 누리는 모습이다. 그렇게 그의 삶은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그는 한번 하는 것에 대해서는 끝장을 보는 그런 성취주의 성향을 지닌 그였다. 그랬기에 첼린저호 임무가 주어졌을 때 그는 암 투병 중이었지만 그는 권력에 맞서면서까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해냈다.
또 포어는 어떤가. 그는 브라질에서 포어로 강의까지 했음은 그의 포어 실력이 어느 쯤이었는지 과장 없이 보여 주는 부분이다. 대체 그의 열정의 끝은 어디쯤인 것이지. 마침 브라질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가 브라질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에선 그야말로 전율이었다. 비록 다른 시기에 살았지만, 같은 공간 어디쯤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숨 막히는 희열. 경험해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나는 어느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위인들의 삶을 읽을라치면 괜히 울컥해지고 뭉클해지며 가슴에 여린 떨림과 함께 눈물이 그렁대는지 모르겠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을 때도 그랬고 파인만도 그렇다.
그들 모두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에는 한치의 타협도 없었으며, 자신들이 하는 일을 사랑했고 온 정열을 다 쏟아부었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이다. 아마도 내게 그런 울컥하는 감동을 안겨주는 것은 바로 그들이 내뿜는 열정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가진 열정. 그렇게 자신들이 하는 일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떨리고 나도 그렇게 미치고 싶어 진다. 나도 그렇게 무언가에 미친 내가 되기를 그렇게 절절히 원하게 된다.
그들이 이룬 업적도 업적이지만, 나는 언제나 그들의 인간성에 더 깊이 매료되곤 한다. 그가 이룬 업적은 위대했고 그에 걸맞게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이룬 거대한 업적보다 나를 더욱 깊이 매료시키는 것은 바로 그의 인간 됨됨이었다. 내가 파인만에게 그토록 빠져들었던 것은 그가 이기적인 학자가 아니라 크고 넉넉한 학자. 그러면서도 자신에겐 철두철미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길을 가며 유머를 잃지 않는 한 사람. 자신의 분야에만 매달린 외골수 학자가 아닌 심지어 카나발 퍼레이드까지 참가하는 삶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인간 파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리먼 다이슨의 말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파인만은 고질적인 질병과 요절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더 크게 겪었지만, 셰익스피어가 알았듯이 모든 비극에는 희극의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극의 영웅도 때때로 잠시 물러나서 어릿광대에게 자기 자리를 내준다는 것이다. 비극의 한가운데에서 파인만이 제정신으로 버티기 위해서는 어릿광대짓이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 더...
늘 그렇듯이 책을 감동적으로 읽을 때나 재밌게 읽을 때는 내가 원서로 읽지 않은 이상에는 번역하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분들의 풍요로운 표현과 우리 정서에 맞는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저자가 표현하고자 한 그 느낌 그대로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말이다.
그 느낌 그대로를 느낄 수 있도록 멋진 번역을 해주신 김희봉 & 홍승우 두 분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