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잘못에서 배우라고 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훌륭한 행동에서 배우라
피터 페리디난드 드러커 (Peter F. Drucker)는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출생했는데, 그의 부친 아돌프는 오스트리아의 재무성 장관을 지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으로 이주한 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교수로 봉직했다. 그의 모친 캐롤라인은 오스트리아에서 최초로 의학을 공부한 여성으로서, 특히 프로이트의 제자였다고 한다.
이렇게 그의 부모의 뒷 배경만 보아도 피터 드러커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고 자랐고 공부했고 영향을 받았는지 느낄 수가 있다. 그의 가족은 주로 관리, 의사, 변호사들의 계보였고, 드러커의 아버지 아돌프는 일하겠다고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피터 드러커를 설득시켜 대학을 가게 했고, 그가 대학 교수가 되길 원했다. 아마도 풍부한 경험에서 오는 예리한 관찰력이 아들이 피터 드러커의 숨은 자질을 파악했기 때문일 게다. 아버지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고 피터 드러커는 교수로서, 컨설턴트로써, 편집인으로써 그리고 존경받는 작가로서 그의 명성을 떨쳤으니 말이다.
피터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뿐만 아니라 그의 성장을 도와주는 좋은 지인들이 많았다. 특히, 그에게 음악적 감성을 길러준 할머니. 그녀는 심지어 클라라 슈만의 제자였는데 브람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까지 했던 아주 매력적인 여성으로 피터에게 르네상스적인 경영인이라는 이름이 붙어 다니는 것은 그녀의 영향이 많이 컸던 걸로 짐작된다고들 말한다.
아버지의 친구 슘페터는 그의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정치상의 의사결정 능력의 결여로 말미암아 인플레의 억제 내지는 정지에 실패하여 붕괴할 것을 예언했다. 그 이론은 피터에게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등 여러 곳에서 캐인스류의 '경제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이렇듯 피터는 어렸을 때부터 사교적이고 지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게니아 여사의 살롱에 초대되면서 그의 사교 생활이 시작되었고, 노벨 문학상 소설가인 토마스 만도 그 살롱에서 만나게 되었다. 피터는 여러 저서에서 “기업 또는 개인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보다는 강점을 더욱 보강하는 것이 더 낫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아마도 살롱 출입 때 들은 “신은, 생각할 수 있는 한의 잘못을 범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서 인간을 창조했다. 따라서 타인의 잘못에서 배우라고 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훌륭한 행동에서 배우라.” 는 유대인 랍비들의 영향이 많은 영향을 끼쳤을 거라 추측된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드러커는 그가 가진 환경만큼이나 인간관계에서도 참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특히, 그의 삼촌과 사촌이 빈 대학 교수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학생들에게 열려있지 않은 도서관은 그에게도 문이 닫혀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친구인 트라운트라이네크 백작의 도움으로 국립 도서관의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특혜를 받게 된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탐구심이 이끄는 데로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고 그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으며 그것은 앞으로 그가 커서 만나게 될 여러 경험들에 양질의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그 후 그는 교수로서 컨설턴트로서 금융가로써 이름 있는 자유기고가로서, 져널리스트로써 명성을 떨치게 된다. 그가 가진 많고 많은 매력적인 강점과 재능중에서도 내가 가장 존경하고 나도 할 수 있고 배우고 싶은 부분은 그의 학습법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우리는 배워야 한다고 평생학습을 주장했으며, 그 역시 몸소 기간별로 공부를 해나간다. 그가 공부한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분야의 일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상황을 최선으로 임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어주었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
독특하게 와 닿았던 것은 바로 리더에 관한 그의 관점이었다. 내가 평소 리더에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카리스마틱한 리더십을 추구했던 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카리스마가 리더를 망치는 수상쩍인 요인으로 꼽고 있다. “참다운 지도자는 영리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성실하다"며 원칙에 근거한 리더십을 강조한 부분이다.
20세기 최후의 경영 르네상스인 피터 드러커는 GM 사장인 슬론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는데 그것은 바로 슬론이 강조한 유능한 인재의 중요성이다. “지식 근로자의 생산성을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보수 자원봉사자마저도 효율적이어야 하고 성과중심의 채용 선발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것은 그 당시의 경험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특이할 만한 것은, 피터 드러커의 한국 방문이다. 한국동란 이후 미국의 요청으로 한국을 방문을 한 드러커는 그 이후 몇 번 더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의 경제 성장을 같이 지켜보았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심지어 가깝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드러커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의 한국인을 위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역사에 기록된 것 가운데 한국전쟁 이후 40년 동안
한국이 이룩한 경제성장에 필적할 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클래스에 있던 한국 학생들이 그 성장에 기여했음에 흐뭇해하는 노교수 피터 드러커. 그가 흐뭇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그려져 내 입가에도 자연스럽게 살포시 미소가 걸렸다.
그의 배움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노력과 탐구심은 내게 주어진 자그마한 안정된 삶 속에 안주하고 싶은 나를 다구치며, 계속 변해야 한다면 ‘안정성 파괴’를 요구하고 있다. ‘안정성 파괴’. 아마도 그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표현이 아녔나 싶다.
어쨌든, 그가 삶 속에서 느끼고 배우고 깨우치고 경험했던 그의 주장들은 내 눈에 덮여있던 콩깍지를 살푼 한 꺼풀 벗겨주었다. 아직 벗겨내야 할 비늘 껍질이 더덕더덕 붙어있음을 느끼며 나도 그처럼 계속 공부하고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며 내 삶을 혁신하는 한 발자국을 ‘용기 있게’ 내딛겠다고, 스스로를 도닥거리며 잠시 침체되어 있었던 나를 추슬러본다. 피터 드러커와 함께 했던 시간,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그는 2005년 11월 11일 96세의 나이로 별세를 했다,
그의 저서로는 수 없이도 많지만, 그중 몇 개만 나열해본다. 일단은 우리가 읽고 있는 ‘프로페셔널의 조건’, ‘자기 경영 노트’, ‘미래 경영’, ‘경제인의 종말’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그리고 ‘마지막 통찰’등이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 있으면 닮고 싶어 진다. 그래서 그들을 흉내내기도 한다. 나나 무스꾸리가 좋아서 살짝 긴 단발에 까만 뿔테 안경을 끼고 다녔고 넷째 손가락에 굵은 고리 반지를 끼고 다녔다. 그런가 하면 조앤 리가 좋아서 포도주와 좋아하지도 않는 쌉쌀한 치즈를 곁들여 먹던 기억도 있다. 그렇듯이, 나의 정신적 지주인 선생님이 그토록 존경하는 피터 드러커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알고 싶었다.
일단은 서문에서부터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왜냐면 위대한 스승인 피터 드러커가 우리 한국 독자들을 위한 특별한 인사말을 써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수많은 학생들이 있는 가운데, 존경하는 스승이 내 이름을 부르시며 특별히 나만을 위해 좋은 말씀을 해주신 것 같은 그런 뿌듯한 느낌이 들었음이다.
그리고, 동양에 대한 보편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다른 책 저자들과는 달리 주로 일본과 중국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 그는 한국을 주요 관심 대상으로 꼭 집어넣었다. 물론 한국의 위상이 많이 높아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치우침 없는 보편적인 관심이 나의 애정 어린 관심을 끌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는 책 내내 ‘지식 근로자’에 대한 그야말로 ‘섬세한 배려’라고 느껴질 만큼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지식 근로자에 대한 인식과 어떤 이들을 ‘지식 근로자’라고 부르는지, 그들이 현주소와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또 조직 안에서의 그들의 역할과 밖에서의 그들의 역할과 자세. 또한 효과적인 지식 근로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비전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책임감으로 임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가 현명하고 ‘효과적인 근로자’로서 어떻게 스스로의 위치에서 해나가야 하는지를 나처럼 경영이나 경제 부분에서 문외한이 사람에게 쉽게 이해가 갈 정도로 계속 반복하는 방법으로 각인시켜주었다.
특히, 나의 시선을 붙잡은 것 중의 하나는 ‘집중’ 부분였는데, 효과적인 지식 근로자는 지금 당장 집중해있는 ‘하나의’ 과업 이외에 다른 일에는 전적으로 집중하지 않는다.
집중 – 즉 ‘진정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때와 사건에 따라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하는 용기 – 은 지식 근로자가 시간과 사건들의 종노릇을 하는 대신 그것들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P226)
이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습관처럼 하는 내게 ‘몰입과 집중’의 중요한 의미가 어디 있으며, 한 번에 한 가지씩 일을 할 때 우리는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내며, 또한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더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음을 깨우쳐주고 있다. 또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이성적인 분석이 아니라, 바로 ‘용기’라는 것은 늘 우선순위 결정에서 갈등에 바치는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여기서도 또 다른 성격의 ‘용기’를 내게 요구하고 있다. 내가 그리도 용기 부족인 사람인가. 다시 한번 멈추고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의사결정 부분은 내게 좀 복잡하게 느껴졌다. 그냥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나에게 매 순간 결정을 내리기 전에 분석하고 질문하고 피드백을 요하는 과정은 내게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나의 단세포적이 기질이 다분히 나타나는 부분이다.
요즘은 많이 생각해보게 된다. ‘전략’은 분명 나의 강점 테마에는 없고, 왠지 무척 복잡하게 느껴지는 부분인데, 그럼 나는 한 번도 계획을 세우지 않으며 지금껏 살아왔나. 절대 그렇지 않다. 지금은 단기 계획을 세우지만, 학생 때는 차후 5년~10년 계획까지 빽빽하게 성실하게 세우며 그것에 맞춰서 내 삶을 정리하며 그 목표가 이뤄지도록 치열하게 살았던 적도 있다.
그럼 무엇이 다른가? 내 개인적인 내 삶의 계획과 사업 계획과는 내게 확연히 다르게 다가온다. 내 개인적인 계획을 세우라 하면 Com mucho gusto!! Com muito prazer!! 행복에 젖어 계획하며 실행하지만, 사업 계획을 세워서 제출하라 하면 갑자기 머리가 텅 빈 듯한 느낌이다. 마치 나의 모든 사고력이 블록 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의 피드백 작업이 쉽지 않다. 여러 가지로 ‘전략’이라는 것과 연결되는 많은 부분들은 내게는 복잡하게 느껴지고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커뮤니케이션 부분과 정보 부분도 좀 내게는 좀 버겁게 느껴져 왔다. 뭔지 모를 겉도는 느낌. 내가 큰 조직에 있지 않아서 그런가. 나는 큰 조직에서 일해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나 정보 같은 것은 아주 직접적으로 빠르게 전해져 온다. 직접 일선에서 일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느낀다. 직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도 그때그때 일어나기 때문에 쓸데없는 종적인 절차가 생략된다. 바로 작은 회사의 이점이다. 어쩜 그래서 우리가 지금껏 생존해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처럼 작은 회사는 바로 그 ‘작다’는 이유로 재빠른 틈새 대처로 시장의 흐름에 대처해 나갈 수 있음으로..
큰 회사들과의 거래를 할 때는, 우리 회사라면 겨우 며칠이면 내려질 결정들이 큰 회사 같은 경우는 상위로 올라가는데 몇 주, 내려오는데 몇 주. 그리고 내게 전달될 때까지 며칠. 때로는 달을 넘기게 되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큰 조직사회에서의 틈새가 여실이 드러남을 느끼고 있었음에, 이 부분에서는 내가 속한 영역과 연결해서라기보다는 우리의 거래처들을 보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피터 드러커의 인생을 바꾼 7가지 지적 경험과 강점 부분, 그리고 시간 관리 파트를 읽으면서 실천이 따르지 않는 지식은 삶을 변화시키지 못함을 다시 한번 그를 통해 다시 가슴에 담았다. 내 시간을 어떻게 어떤 계획 속에 나의 어떤 강점을 살려서 임해야 하는지, 그것이 비단 내가 속해있는 조직 사회에서만이 아닌 내 개인의 삶 안에서 얼마나 다르게 작용하고 또한 내 삶이 달라지는지. 온몸을 타고 오르는 전율 속에 또 한 번 느꼈다. (제발 느낌으로만 끝나지 말지~!!)
특히, 피터 드러커의 학습법은 내게 떨림을 안겨주었다. 나 역시 평생 공부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며, 그가 말한 것처럼 내가 모든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해를 도울 수 있을 만큼의 배움은 얻을 수 있을 것.
아주 신나게 웃었던 부분은 바로 ‘리더십’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그는 우리가 평소 ‘리더’는 ‘강한 카리스마’를 가져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렸다. 드러커의 은근하면서도 강도 높은 꾸짖음(?)이 얼마나 웃겼던지. 마치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은 절대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역시 그는 원칙 주의자. 그래서 그의 엄격함 속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참다운 지도자는 영리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성실하다.”라고 표현하는 그에게 깊은 신뢰감이 느껴진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피터 드러커가 몇 번이나 강조했던 질문이다. 몇 년 전, 내게 주어졌던 질문이기도 하다. 그때 나는 ‘잊을 수 없는 사람, 감동을 주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렇게 기억되길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 존재 그 자체로 감동을 안겨주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펌킨으로 기억되고 싶다면 끊임없이 치열하고 성실하게 내 삶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내 삶 안에서 아름다움을 가꾸어야 할 것이다.
피터 드러커 할아버지. 읽으면서 참 푸근했다. 그는 옹졸하지 않았고 편협적이지 않았다. 그는 교만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비굴해 보일 수 있는 지나친 겸손도 없었다. 자상하고 따뜻하고 포근하면서도 폭넓은 이해심으로 이해해주고 또닥거려 주며 때때로 느껴지는 엄한 분위기는 왜려 그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어지게 했던 아주 매력적인 할아버지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폭넓고 깊은 지식이 너무나도 멋졌다.
살아가면서 이런 정신적인 지주를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고 행복이다. 선생님의 위대한 스승이신 피터 드러커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안겨줄 것임에 이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분명 내가 읽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책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Av. Paulista의 Saraiva Café 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이 끝나면 달려가 그곳에서 드러커 할아버지의 엄하면서도 지적인 이야기를 경청하며 들었다. 비록 짧은 시간 함께 했지만, 드러커 할아버지랑 데이트를 하면서 여기저기 새로운 곳도 가보며 독서여행을 즐길 수 있었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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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정리하다가 문득 그때 어느 지인 분의 이야기가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드러커 할아버지와 매일 데이트를 한다"는 나의 표현에, 진지한 표정으로..
"남편이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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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