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반에 있는 저녁 약속. 나는 조금 일찍 퇴근을 하고는 Shopping Higienopolis에서 내렸다.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좀 있는터라 김영하 팟 캐스트를 듣던지, 책을 읽던지 시간을 보낼 참. 비가 와서인지 휴일이라 그런지 쇼핑몰을 가득 매운 사람들. 그 사람들을 뚫고 나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타벅스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서있었다. 평소 같으면 인내심이 별로 없는 나는 그냥 딴 곳으로 향했겠지만. 오늘은 느긋하게 그 긴 줄에 한 자리 보탰다.
서비스가 느린 스타벅스지만 (물론 주문을 늦게 하는 손님 탓도 좀 있다. 미리 주문을 생각해놓지 않는 이해가 좀 안 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 그나마 빨리 서비스를 하기 위해 캐셔대에서는 계산만 할 수 있도록 한 직원이 미리 줄 선 손님들의 주문을 받으며 이름과 주문이 적힌 스티커를 넘겨주고 있었다.
그래선가. 제법 줄은 빨리 줄어들고 나는 언제나처럼 Café latte Tall Size를 받아 들고는 운 좋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한 브라질 청년이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는 그 옆 빈자리. 아줌마는 용감하다. 나는 별 큰 주저함 없이 그 옆에 가서 앉았다.
내가 앉은자리 앞에는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작은 테이블 건너편에는 엄마와 딸인 듯한 두 여성이 앉아 있었다. 역시나 딸인듯한 여성은 컴에 몰두해 있었으며 엄마인 듯한 분은 아이쇼핑을 하듯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옆으로는 두 가족이 모인 듯한데 웬 어린아이들이 그리도 많은지, 정말 아수라장이었다.
난 우리 애들 우찌 키웠는지 모르겠다. 애들은 정말 정신없다~
나와 가까이 있는 의자엔 그 아이들 중 꼬마 둘이 시소 놀이하듯 의자를 들썩대고 있었는데, 자기 얼굴에 두배쯤 되는 큰 안경을 쓴 3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와 한 6살쯤 되는 꼬마였다. 그중 안경 쓴 꼬마 아이와 눈이 마주쳐 살짝 웃어주고는 나는 곧 김영하의 팟캐스트로 빠져들었다.
시간이 좀 지났을까. 낯선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바로 눈이 마주쳤던 안경 쓴 꼬마 아이. 내 옆에 서서 내가 플래너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내가 “Oi~!!” (안녕~!!) 했더니 그 녀석 대뜸 하는 말.
“É menina?” (여자아이예요..?)
“Sim, sou menina.” (응, 여자 아이야.)
그 질문이 어찌나 우습던지...
그 질문을 들은 같이 있던 조금 더 큰 녀석 한 수 더 뜬다..
“신발 보면 모르니..? 여자애잖아...”
“&%#@@%&@”
반사적으로 내 신발을 바라보니 난 굽이 높은 통굽 샌들을 신고 있었다. 그렇지, 여자 신발 맞네.^^;;
아마도 그 어린 꼬마 아이는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하긴, 머리는 엄청 엄청 짧고 옷도 체크무늬 남방에 까만 진바지를 입었으니. 살짝 헷갈리기도 했겠다. 그게 궁금하여 나를 열심히 쳐다보았고 결국 호기심은 그렇게 용감한 질문을 하게 한 듯한데. 그 menina란 표현이 어찌나 웃기던지. ^^
폴츄기스로 Menina란 ‘여자’을 뜻한다기보다는 ‘여자 아이’ 즉 어린 여자 아이들을 뜻하는 단어다...
그러니 이 50을 넘은 아줌마한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닌 것이다
“Mulher (여자예요)? Homem (남자예요)?” 하고 물었으면 내가 그리 웃기지 않았을 텐데...
“Menina (여자아이예요)?” 하고 물으니 얼마나 웃기던지..^^
흠...
고 녀석이 내가 맘에 들었나 봐~ 하하하~ ^^
그러면서 지금 나더러 뭐 하고 있는 거냐며 관심까지 표한다. 하하하하~ ^^
그래서 mp3로 들은 것을 플래너에 적고 있다고 말해주니
“아~그래요~?” 너무나도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고는 가버린다.
관심 있는 게 아녔나 봐~ 하하하~ ^^
녀석~ 얼마나 귀엽던지~ ^^
혼자 웃다가 눈을 돌리니 앞에 앉아계시던 브라질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우린 깔깔대며 웃었다. 아마도 그녀도 그 장면들을 모두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요즘 내 머리는 평소보다 훨씬 짧다. 정말 언뜻 보면 남자 같은. 그렇다 보니 그 어린 꼬마 아이의 눈에는 그렇게 헷갈리게 비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벅스에 가면 재밌는 사건들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생각지도 않게 끼어드는, 삶에 깨소금 맛을 내주는 아주 재밌는 일들..
언젠가는 모르는 할머니가 커피를 사주시질 않나, 어떤 중년 부인은 다짜고짜 나를 붙잡고 당신의 기도 생활에 대해 이야길 하지 않나, 그런가 하면 자리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멋진 청년(흐뭇~^__^)이 앉으라며 의자를 갖다 주어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한번은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관심도 없는 브라질과 아시아의 경제와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람에 참 황당한 때도 있었다. 그 조그만 공간에서 참으로 소소하니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시간이 날 때면 나는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냥 가만히 밖을 바라보거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만끽하는 곳이다. 사람들 표정을 보는 것도 쇼핑을 오가는 사람들을 가만 바라보는 것도 재밌는 놀이다. 그렇게 혼자 있어도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곳. 대중과 함께 하면서도 온전히 내 공간이 주어지는 곳. 내가 스타벅스를 사랑하는 이유다.
문득 김영하가 팟 캐스트에서 들려준 장 그르니에가 ‘섬’에서 말한 데카르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루소는 시골에서도 사람들에게 부딪히며 자기 공간이 없다고 투덜댔는가 하면, 데카르트는 대도시인 암스테르담에서 대도시가 부여하는 모든 혜택을 고루 다 누리면서 자기만의 영혼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
“여자아이예요..?”
그 귀여운 꼬마 아이의 깜찍한 질문 덕분에 재밌고 유쾌하고 즐거운 하루였다...^^
앞으로 몇 번은 더 떠올리며 웃게 될 것 같다...^^
“웅~ 그래~ 나 아줌마 아니야~ menina야~ ^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