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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a C Dec 18. 2017

승무원의 임신. 결혼. 육아

1년 동안 한꺼번에 닥친 쓰리 콤보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 결혼은 다음 생으로 미뤄야 할 만큼 힘든 일임을 일찍이 깨닫고 비혼을 선언했던 내가 호르몬과 콩깍지의 힘으로 연애 두 달만에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30대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도 분명 우리에게 존재하지만 그보다 '결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 컸다. 대다수는 감성에 젖어 현실을 못 보고 있다며 1년만 살아보고 다시 얘기하라고 콧방귀를 뀌고 있겠지만 결혼의 이유에 대해 얘기한 것이지 결혼 지속의 이유를 얘기한 건 아니다. 결혼 지속의 이유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발견하고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16주 안정기라고 베트남으로 신혼여행간 간 큰 나. 비행기안에서 호되게 당하고 4일 중 하루는 속이 안 좋아 오롯이 즐기진 못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난 직 후, 나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했고 오히려 지난 한 달 동안 마셨던 술의 양과 복용했던 약의 종류와 양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면서 생긴 걱정이 더 컸다. 나는 지금 낳아도 사회학적으로는 노산이었다. 생물학적인 생식능력은 아직 젊을지 모르나 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 나는 52세, 남편은 57세이다. 결혼 생각이 없던 내가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혼 얘기가 오가고 있던 와중에 이렇게 된 일이라 나중에 할거 조금 빨리 앞당기는 것뿐이었다.

연애 두 달만에 우린 결혼 준비에 들어갔고 동시에 나는 임신휴직을 하게 되었다.


승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임신휴직은 임신 사실을 알고 난 직 후부터 강제로 쓸 수밖에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열차 안은 일반인에게조차도 위험할 수 있고 자기장과 흔들림으로 조기 유산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임신한 승무원은 승무를 할 수 없다. 업무가 달라 내근직으로 전환이 되지 않아 임신휴직을 반드시 해야 한다. 무급 휴가여서 한 푼이 아쉬운 승무원들은 임신 사실을 숨기고 몇 달을 더 다니기도 한다고 들었다. 정말 위험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되고 슬픈 일이다. 임신한 줄 모르고 다니는 경우도 있고. 아무튼 나는 지금 남편이 된 그 당시의 남자 친구의 승무 결사반대로 임신확인서를 받아 든 다음 날 휴직계를 냈다. 정말이지 지금에 생각하면 고마운 반대였다.




만취한 다음 날 숙취가 24시간 가는 느낌


입덧은 그랬다. 술이라면 콩나물해장국 한 그릇 하고 한숨 자고 일어나 헛개수 한 통 비우고 나면 말짱 해졌겠지만 이 놈의 입덧은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는 시간을 빼면 숙취가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자꾸 국물이 있는 면이나 국 같은 음식만 들어가고 그것마저도 안 들어가면 포카리 스웨트나 토레타 같은 것들로 연명했다. 다행히 본격 입덧이 시작되기 직전에 부산 친정으로 내려가 있었으니 다행이지 자취방에서 혼자 고생할 뻔했다. 결혼식에 흥미 없던 나는 집 근처 웨딩홀 두 곳을 추려내 가성비를 따져 골라 계약했고, 간소한 결혼을 하기로 해서 이런저런 오고 가는 약소한 선물들도 없어 말 그대로 요양을 하게 되었다. 이제 입덧과 함께 어지럼증과 두통과 목 뒷골이 당기기 시작했다. 산책을 하려고 겨우 1층으로 내려가면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일쑤였다. 일어나 앉아있기도 힘들어 그 더운 여름에 씻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입덧 때문 에라도 임신하기 싫을 정도다. 나에게 2017년 여름은 정말 지옥이었다.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임신인가


임신하고 난 뒤 제일 체감했던 것은 임신은 여자를 독하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지만 도와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심지어 국가조차도. 주민 등록된 거주지와 지금 실제 있는 거소지가 달라 보건소 혜택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무급 휴가 중이고 자취방이 정리되지 않아 수입은 없는데 지출은 그대로인 셈이라 병원비를 아껴보고자 보건소를 알아봤지만 헛수고였다. 부산 친정에 있는데 입덧하는 몸을 끌고 영등포 보건소로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낸 세금이 영등포구로만 간 것인지. 국가에서 지원받은 바우처 50만 원은 24주가 되니 7만 원이 남았고, 입체 초음파 한 번에 바우처는 바닥을 드러냈다. 이젠 잘 때마저도 허리와 어깨 골반이 너무 아파 통잠을 잔 적이 언제였는지.. 내가 너무 힘들고 피곤하니 독해질 수밖에. 초기에 임산부 배찌를 달고 임산부석 바로 앞에서 식은땀 흘리며 주저앉았는데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던 대학생이 생각난다. 무릎에다 토해버릴걸 괜히 힘들게 참았다 싶다. 요즘 나는 임산부석에서 비켜주지 않으면 큰소리로 말한다.

"임산부 아니시면 나와주실래요? 저 xx역까지 가는데 더 멀리 가시는 거면 저 내리고 앉으세요."

다들 잘못 알고 있는데 임산부 배려석이라고 쓰고 임산부 전용석이라고 읽는다는 걸 모르고 있나 보다. "임산부를 배려해서 만든 자리"라는 거지 네가 배려해야 임산부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거다.




도저히 각이 안 나오는 육아 스케줄


승무원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방법은 진정 할머니 찬스밖엔 없는 것일까. 아빠의 병간호를 엄마가 20년째 해오고 있어 친정에서 육아는 어림도 없다. 콩이가 6개월째 친정에 있지만 내가 관리를 다 하고 있고 저지레를 하지 않고 조용한 아이라 그나마 집에서 이쁘긴 하니 참아 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육견과 육아는 엄연히 다르니까. 내가 대학교 다닐 때부터 우리 남매에게 결혼 후 육아는 셀프라는 확고한 신념을 밝힌 엄마라서 나 또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집에 떠 넘기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데 내가 같은 승무원 남편을 만날 줄이야. 어린이집에 맡기려 해도 시간과의 싸움이 되었다. 이 들쑥날쑥한 출퇴근 시간을 어떻게 맞춰가며 아이를 맡긴다는 것인가. 시가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어머님도 초반에 고령임을 강조하시며 형님네와 시누네 아이를 봐주시느라 힘들었다 얘기하시는데 내가 더 짐을 올린다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양가를 똑같이 생각한다면 똑같이 힘든 것이기에 나는 양가를 선택지에서 다 밀어냈던 것이다. 우린 수도권에 있고 시가는 광주, 처가는 부산이라 우리의 스케줄이 허락하지 않을 때(예를 들어 숙박이라던지 새벽 출근, 자정 퇴근이 겹치는 때) 가끔 맡길 수 있는 곳이 가까이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육아 스케줄은 생각할수록 꼬여만 간다.





도와줄 거 아니면 강요하지 마세요, 정부씨.


결혼 후 경단녀가 되는 길은 매우 쉽다. 임신하거나, 집안 대소사가 너무 많아 일일이 쫓아다녀야 하거나, 독박 가사에 독박 육아를 하거나, 아이를 맡길 곳이 없거나 혹은 임신을 해야 하거나 등등. 나는 그나마 회사가 여초 직장에다 복직 후 내쳐지는 일이 없는 기타 공공기관이라 계속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선택권이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잘 안다. 출산과 육아에 큰돈을 쓸 여력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고 싶은 욕심도 없다 하더라도, 법으로 필수라는 카시트 하나를 사도 몇십만 원이 깨지는 이 상황이, 엄마인 스스로를 원망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이, 한없이 슬프고 안타깝다.


인터넷 여론을 보면 '그러게 능력도 없는데 왜 낳느냐, 계획적으로 따져서 낳았어야지' 하는 말들이 많은데 낙태죄도 아직 폐지되지 않은 마당에 절대, 이렇게 해서는 절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없어 결혼이 안 그래도 늦어지는데 능력 갖춰 아이 낳을 준비 다 했더니 난임이 되어 결국 쌓아놨던 돈은 난임치료에 다 부어서 아이 하나 어렵게 낳고 나면 나이는 먹을 대로 먹은 채로 다시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경험자들의 얘기를 들으면 이게 정상적인 사회인가 싶기도 하다.


출산 육아용품사러 간 맘페어에서 들었던 슈(SES)의 강연. 난 하나도 덜덜한데 셋이나 키운 그녀가 존경스럽다.







얼마 전 늦은 신혼집 입주를 끝내고 살림을 정리하는 게 꼭 소꿉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소꿉장난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무던히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친언니나 다름없는, 두 아이의 엄마인 사촌언니의 격려? 위로? 경고? 와도 같은 한마디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지만 말이다.

"너도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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