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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a C Aug 12. 2019

아직도 어려운 주취자 응대

폭언 폭행 성희롱은 처벌받아요


얼마전 ITX새마을 승무를 했더랬다.

복직하고 처음으로 ITX새마을을 탔는데

동대구역에서 교대를 하고 내리는거라

난생 처음 동대구역을 가게 되었다.

긴장이 되었다.

안그래도 생소한 곳으로 가는데

너무 오랜만에 는 ITX라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일은 너무 빨리 터졌다.

교대를 하고 몇개 역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한 할아버지가 비틀거리며 1호차로 들어갔다.

자리를 찾는건가 하고 통로에서 보고 있는데

1호차 끝에 있는 운전실 문을 열려고 하는 것이다.

문은 열릴 리가 없다.

운전 중에는 항상 잠겨 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옆사람이 말리자 무어라고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내가 들어가 혹시 화장실을 찾냐고 물었는데 이미 초점은 맞지 않고 대답이 없고 한참을 생각하는 것처럼 서 있다.

대화가 될 것 같지 않다는 촉이 왔다.

통로 밖으로 나가자고 하고 밖에서 보고 있으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대낮부터 주취자라니.

입석이 좀 있는 상황인지라 통제가 안된다면 다른 고객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

입석 검표를 마쳤고 석도 확인을 마친 상태라 그래도 무표는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다.

술에 많이 취해 하차를 못 하실 것 같으니 내릴때 되면 알려주겠다고 어디까지 가냐 승차권 보여 달라 하니 끝까지 삿대질에 욕을 해댔다. 니까짓게 뭔데 표를 보냐는거지. 여자라고 무시하는게 언행에서 묻어나왔다. 성희롱 발언도 서슴치 않기에 여기까진 충분히 예상하던 시나리오라 이제 강력대응하겠다는 표정으로 무전기로 전무님을 호출했다. 하필 전무님도 여자 분이라 순히 말을 들어줄까 했는데 옷차림이 다르니 일단 표는 꺼냈다. 아직 내리려면 한참인 역이다. 전무님이 알아서 하겠다고 일 보라며 나를 떠미는데 갑자기 이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잡고 밀치며 소리를 지르며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도 참지 않았다. 승무원도 필요한 순간에는 단호하고 강경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술로 사리분별이 안되는 사람에게 이런 대접받자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뭐하시는거냐고 하며 붙잡은 어깨를 팔로 쳐내는데 전무님이 나를 객실쪽으로 돌리며 얼른 가라고 하셨다.

전무님은 무슨 죄로 이 사람을 상대해야 되는건지.

결국 이 할아버지는 내릴 때도 말리는 옆사람과 시비가 붙어 공익요원이 달려와 끌어낼 때까지 고성으로 싸워댔다. 객실 안에서도 행패를 부리는걸 어느 건장한 청년이 거의 포박하듯이 붙잡아놓고 있었다고 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물론 회사에서도 이런 경우엔 최대한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게 하되 고객안전에 위험하다 생각되면 열차팀장의 판단하에 승차거부 혹은 하차 조치를 취하라고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다.

내리라고 한다고 순순히 내리면 애초에 실갱이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한번 거의 막차였던 부산행 KTX에서도 주취자가 있었다. 문이 닫히자마자 무표와 승차권 변경 등등으로 바쁘게 일을 끝내고 순회를 시작했는데 토를 너무 많이 한다며 옆자리 고객들이 제보해주어서 좌석을 확인해보니  빈자리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승차권을 확인하려고 깨워서 말을 걸어보니 일어나 걸을 수는 있을까 싶었다. 이 사람은 인천공항으로 간다느니 콜백을 해달라느니 알 수 없는 말들만 쏟아내곤 다시 자려고 했다. 그냥 두기엔 옆 승객들이 너무 불안해했고 진짜 집이 인천이라면 새벽에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의 그 황망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 같았다.

승차권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어느역에서 내려야하는지 알아내야 했는데 도저히 대화가 되어야 말이지 답답해서 돌아버릴 정도였다.

하필 이 날도 열차팀장님이 여자분이었고 체구도 작아 90키로는 되어보이는 주취자를 제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팀장님도 승차권이 없으면 내려야 된다고 강하게 말하는데 이 사람은 횡설수설하다 카드나 신분증을 주기도 했다. 이 팀장님도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가보라고 했는데 이 날은 왠지 혼자 두면 안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검표도 하고 검색도 하고 계산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래서 업무용 기계(우리는 이것을 MTIT 혹은 PDA라고 부른다)를 꺼내 녹화를 시작했다. 내가 임신휴직을 들어갔던 17년도 7월쯤 거의 고물이나 다름없던 기계를 최신형으로 바꾼 덕에 벽돌폰만했던 사이즈도 평범한 스마트폰만해졌고 기능도 어마어마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녹취기능. 카메라가 있어 사진도 동영상도 찍을 수 있다.

아무튼 난 녹화를 하면서 팀장님을 멀리서 따라다녔는데 글쎄 이 주취자가 가면서 중간 중간에 팀장님을 위에서 뒷목을 잡고 눌러 내리질 않나 한눈에 봐도 폭행을 하고 있었다. 뒤에서 쫓아가고 있는데 정차역에 도착하고 있었고 내 담당구역을 벗어나 더 앞으로 가고 있어 녹취를 멈추고 다시 되돌아갔다. 앞쪽은 남자 선배님이니 걸리면 가만있지 않겠지.

혹시나 몰라서 옆자리에 있던 젊은 남자 고객에게 연락처를 받았는데 이 분도 열이 받았는지 처음부터 다 찍어논 동영상이 있다며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진술해주겠다 했다.


나중에 팀장님께 물어보니 대전역에서 철도경찰에게 넘겼는데 신분증을 보니 집이 대전이었고(아니 그럼 왜 인천공항에 가자고 한 것일까) 어디 소속 공무원이었다며 분을 참지 못하셨다. 제발 술을 마셔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은 지켰으면 좋겠다. 과연 내일 정신이 들면 부끄러울까?

인계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없으면 더 좋다






요즘은 늦은 차를 타면 출근길부터 긴장이 된다.

오늘은 제발 술 취한 사람이 없길.

술에 취했다면 차라리 그냥 조용히 자길.

평화로운 열차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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