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엔젤라권 Dec 26. 2020

할 말 다하며 사는 프로 불편러

생각을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2.5+a 거리두기가 시행되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라고 하니, 예정된 가족모임을 취소해야 하나 앞당겨야 하나 고민하며 모두 기사 검색에 여념이 없었다. 직계니 방계니... 성이 같으니 다르니... 평소 같으면  입에 담지 않았을 말을 입에 올리며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다.

어린 조카들은 이 말의 뜻을 알까? 알아야 할까?


우리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관계를 결정짓게 만드는 '가족 간 호칭'과 '나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원치 않는 벽을 만든다. 

나는 어른, 너는 아이. 

나와 당신은 연령대가 비슷하고 말도 잘 통하지만 성이 다른 이방인.

가족이라 말하지만 가족 안에서도 관계는 수없이 나뉜다.


오빠 집에 놀러 가면 나와 조카 둘을 포함해 권씨가 4명. 성이 다른 새언니가 1명.

두 아이의 엄마인 동갑내기 나의 친구 그녀를 '새'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불편함에 나는 한때 호칭을 최대한 부르지 않고 대화하는 방법을 택했었다.  


내 인생의 동반자의 가족이 집에 놀러 온 날,

성격 좋은 그의 형은 '성'으로 가족의 관계를 나누는 얘기를 농담 삼아 던졌다. 5인이하 집합금지 때문에 나온 얘기였다.

나와 그의 아내인 형수만 성이 다르다. 아무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 그저 실없이 지나가는 가벼운 얘기임에 분명했지만 초등학교 5학년과 6살인 두명의 조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듣고 있는데...'

그저 농담처럼 던진 얘기였고, 아무도 별 반응을 하지 않았기에 이야기의 주제는 금새 바뀌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내뱉는 수많은 불평등과 차별의 관용어구는 자연스레 우리의 다음 세대로 구전된다.

엄마아빠가 한 말이니, 가족들이 한 말이니, 의심 없이 귀에 담고 머리에 담은 말들이 어느 비슷한 상황에 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어른들은 아이의 말에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어디서 들었어?'라고 신기해하거나 기특해한다.


누군가 그에 관해 바른 말을 시작할 경우 돌아오는 반응은,

'아무 의미 없다. 별 뜻 없이 한 말이다. 별 거 아닌 걸 왜 별걸로 만드느냐. 기분 좋은 모임에서 분위기 망치지 말자...' 등 이다. 마주하게 될 현실이 뻔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회성'이라는 이름하에 문제 삼지 않게 된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을 말한 것도 아니라고 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고, 별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냥 말하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닐까.

 

악의 없는 코로나 5인이하 분리의 법칙에 의하면, 우리 조카들은 새언니의 엄마아빠(외조부)와 성이 다르니 만나면 안 된다는 건가?

가족 모임을 앞두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온갖 기사와 질문을 검색해 본 가족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몇 달 전 영국에서 시행된 'Rule of Six'처럼 그저 인원수로 한정을 짓고, 단서조항에 '한 집에 같이 사는 사람들을 예외로 둔다'라고 하면 클리어하지 않았을까?

뭐 이리 정부가 나서서 시대착오적인 '파벌' 이슈를 부추기는가...


아이들이 듣고 있다.

편을 가르는 말들, 불평등과 차별의 관용어구, 자신의 생각이 아닌 말들은 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

누구도 웃지 않는 차별의 농담은 필요가 없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지 않은 나이와 호칭이 사랑과 존경을 담보하지 않는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인격이다.

'그냥 한 말이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이만하면 평등하지. 나는 개화된 문명인이야...'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면 부디 입에서 나오는 말이 머리를 거쳐 나오게 하길...

이름 모를 어느 시절 누군가가 한 말이 아닌 스스로의 말로 대화하길...



할 말 다하며 사는 프로 불편러. 

불편한 사람으로도 살아볼까요? ㅡ,.ㅡ


by 엔젤라 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