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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젤라권 Dec 27. 2020

Time waits for no one!?

와인 라벨이 던진 질문

운이 좋게도 나에겐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가 있다. 6살 유치원 친구부터 70대 노신사 친구까지.

겨울의 초입, 어느새 70도 중반을 지나고 있는 노신사 친구 2명과 함께 한남동 한 레스토랑에서 이른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다. 우리가 자주 찾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화덕에 구운 피타빵과 피자도 맛있지만 다양한 가격대의 와인 셀렉이 무척이나 맘에 드는 곳이다. 겨울 시즌을 맞아 새로 리스팅 된 와인 리스트를 찬찬히 들여다보던 중 흥미로운 이름에 시선이 멈췄다.

'Time waits for no one /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름에 이끌려 주문한 이 스페인 와인은 부드러운 넘김과는 다르게 단 한 병으로 세 사람의 시야를 블러Blur하게 만드는 반전을 연출했다.


사진작가인 노신사 친구는 몇 년 전부터 사진 작업 이외에도 오브제와 사진을 함께 전시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매년 하나의 설치물을 만드는 그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걸 좋아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결과물로 나올 작품을 상상하고, 다른 시각의 아이디어와 나름의 해석을 추가하곤 했다.

 

몇 년 전, 하나의 녹이 슨 의자에 오르려는 수백의 형체 다른 숟가락으로 만들어진 그의 첫 작품을 보고, 나는 '왕좌의 게임'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리곤 꽤나 장황한 부연설명을 했던 기억이 있다. 미국드라마와 영국드라마를 줄여서 미드, 영드라 부르며, 어떤 작품이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지, 장르는 어떻게 나뉘고, 시즌과 에피소드는 어떻게 다르고 등등. '왕좌의 게임'을 보진 않았다고 했지만, 그도 '미드, 영드'라는 줄임말을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인지하지 못한 나의 선입견은 칠십 넘은 한국 친구가 평소에 미드나 영드를 보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고정관념을 고착시켜 놓은 듯했다. 


어릴 적 아빠가 보는 프로그램은 9시 뉴스와 동물의 왕국, 진품명품 정도였다. 아버지뻘 친구들이 모두 우리 아빠와 취향이 같을 리 없는데... 친구는 나이로 사귀는 게 아니라 말하면서도, 나의 무의식은 관용어구에 묶인 편견과 선입견으로 연령대별 삶의 틀을 한정해 놓고 대화하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후 우리의 대화에는 자주 미드, 영드가 언급된다. 친구는 최근에 푹 빠져있다는 미드 '바이킹스'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대화는 어느새 각자의 최애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추천하는 국면을 맞이했다. 얘기는 결국 '한번 시작하면 주말이 훌쩍 지나고, 수면부족으로 다음날의 일정에 지장이 있다'는 일상밀착형 대화로 번져갔고, 마무리는 늘 그렇듯 '시작하질 말아야 한다, 한 자세로 1박 2일 있으니 건강에 해롭다'는 등 남 탓 아닌 내 탓으로 끝났다. 무해하고 무용한(Harmless, Useless) 얘기들은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의 격렬한 공감의 끄덕임과 함께 했고, 나는 나의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가 지금의 일상과 별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8시 반. 와인 한 병을 사이좋게 나눠마신 우리는 입가심(?)을 하러 자리를 옮겼다. 평소 같으면 커피숍에서 한 시간 정도의 여담을 나누고 술기운이 가신 후 멀쩡히 각자의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얼굴에 와 닿는 초겨울 바람은 코로나 이전 찬바람이 불던 2월의 기억을 소환했고, 우리의 발걸음은 기억을 따라 움직였다.

따뜻한 조명이 비추는 간판 없는 나무문에 노크를 하자,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작은 문이 눈높이에서 열렸다. 얼굴을 확인한 바텐더는 나무문을 열고 젠틀한 제스처로 입장을 환영한다. 마치 금주법이 있던 시대에 '밀주를 판매하는 바'에 몰래 들어가는 듯한 짧지만 흥분되는 시나리오에 기분이 재밌게 환기되는 멋진 공간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안내책자를 손에 들고 찾아온 일본인 관광객과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처럼 딱 한잔의 사치를 즐기고 싶은 손님들로 북적이던 곳이다.

평일이고 2차나 3차를 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 할 수도 있지만... 우리 외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웬만한 주종은 다 갖춘 이 곳에는 메뉴판이 없다. 세명의 바텐더는 손님들과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날그날의 기분을 캐치해서 칵테일을 추천해 준다. 물론 심플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주종을 주문해도 된다. 발베니 온더락 2잔과 버번콕 1잔을 시킨 후, 우리는 우리의 대화에 몰입했다. 나는 나의 두 노신사 친구들에게 지금 쓰고 있는 글에 대해 얘기하며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5명의 축제 친구 이야기와 조카 이야기로 채운 브런치북 '페스티벌 피플'을 릴리즈한 후, 나는 다시 매거진을 채워 줄 축제의 친구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페스티벌 피플'의 여섯 번째 주인공이 될 폴을 만난 건 1999년이었다. 2007년까지 최장 기간 축제위원장으로 일한 그와 나는 에든버러에서의 시작이 같아 더 친했는지도 모르겠다. 세계의 축제에서, 공연예술계에서, 학계에서 마스터클래스와 특강을 진행하고 있는 폴은 축제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다. 그가 에든버러를 떠나 다른 지역의 축제를 맡았을 때에도 우리는 매년 8월 에든버러에서 만났다. 그렇게 십 년쯤 지난 어느 날, 나는 그의 하얀 수염을 바라보다 문득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가 가장 오랜 기간 일했던 에든버러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고, 그는 웃으며 '이제는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다니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나는 노신사 친구들에게 폴과 함께 한 20년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들려주었다. 몇 년 전, 은퇴하지 않은 폴을 보며 은퇴를 떠올린 당시의 상황과 그로 인해 왠지 우울했던 나의 감정을 설명하며, 은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에 대해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두 친구는 자신이 수십 년 일궈 온 회사를 운영하며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 한 친구는 사업이 안정화된 40대의 어느 시점에 취미로 시작한 '사진'이 자신의 두 번째 업이 되었고, 하다 보니 어느새 30년의 경력이 쌓여 해외 전시에 초청받는 작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죽는 날이 은퇴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일과 프로젝트에는 시작과 끝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이 지속되는 한 자신에게 은퇴란 없을 거라고 말이다.  


은퇴의 사전적 의미는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이다. 단어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된다. 시간적, 재정적 자유를 갈망하는 30, 40대 친구들은 '은퇴=자유'라 말하며 성공한 은퇴를 꿈꾼다. 일이 곧 자신의 삶이라 말하며 '은퇴가 모야?'라 되묻는 비현실적 문화예술계 친구들과 나는 재테크, 부동산, 연금 등 실질적인(down to earth)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은퇴준비, 노후준비의 구체적인 계획과 대응 전략은 백이면 백 모두 다르겠지만 경제적 자립의 기반 없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은 다수의 사람에게 공포로 다가온다.


폴의 흰머리를 보며 떠오른 이 단어는 아빠 세대의 '은퇴=사회적 단절'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묘한 우울함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이 단어를 내 인생에 대입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에겐 우주만큼 광범위한 이 미지의 영역을 키워드로 잡아 쓰고 있는 폴의 이야기는 현재 A4용지 4장을 채우고도 '아... 이게 대체 무슨 얘기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그저 머리만 쥐어뜯게 한다. 뭘 말하고자 하는지 알맹이 없는 단어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허공을 떠돌았다. 어디선가 읽은 은퇴 관련 기사들을 쓸 데 없이 나열하다 또 한참을 지웠었다. 그렇게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도 끝내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사진첩을 정리하다 발견한 와인 라벨...

'Time waits for no one'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협박인가.ㅡ.,ㅡ)


당장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정리되지 않는 대로 있어 보는 것도 나에게 필요한 마음수행이라 스스로를 안심시켜본다. 늘 스스로에게 숙제와 데드라인을 주며 시간에 쫓기게 만드는 쫄보지만, 이렇게 시간과 함께 흘러가 '괜찮다'는 주문을 반복해 외우는 시간도 나쁘지 않다. 그저 묵묵히 있어(존재해/Exist)보는 시간나쁘지 않다.


다양한 친구를 만난다는 건 축복이자 위안이다.

불안하지 않은 삶 없고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사람 없다.

하지만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는 자명한 사실에 위안받으며, 나의 70대의 일상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친구와의 수다를 즐기고, 와인 한잔을 즐기고, 영화와 드라마를 즐기고, 글을 읽고 쓰고... 건강하기만 하면 그렇게 큰돈 없이도 즐겁게 살 수 있다.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은 백해무익이다.



by 엔젤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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