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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젤라권 Dec 28. 2020

나의 소소한 행복... 포코펠리체

포코펠리체

이탈리아어로 '포코=작은 / 펠리체=행복' 작은 행복이란 예쁜 이름.

이름만큼이나 예쁘고 따뜻한 마음의 사장님과 셰프가 있던 나의 아지트 '포코펠리체'는

같이 일하던 살가운 직원언니까지 모두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던 곳이다.


번화하지 않은 서교동 어느 골목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일상의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을 보장하는 곳이었다.

당시 공연장을 정리하고 상심할 일이 많았던 나와 광화문, 삼청동, 강남의 분점들을 모두 정리하고 작은 가게에 모인 사장님과 셰프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동병상련에 유유상종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봉골레'라고 쌍 엄지척을 날리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메뉴판을 보지 않았다.

'오늘은 뭐 먹을까요?'라고 물으며 엄마에게나 하던 어리광을 부리게 되었고, '알아서 주세요~'라 말하며 백만프로의 믿음을 가감없이 내보였다.


믿음의 시작은 자몽이었다.

브레이크타임에도 반갑게 맞아주던 사장님은 그 날 자몽을 씻고 있었다.

베이킹소다(?)로 벅벅 씻고 흐르는 물에 수차례 헹구고...

'난 집에서도 저렇게 안하는데...'

그 날 마신 자몽쥬스는 그래서 더 맛있었던걸까? 


좋은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믿음, (집보다 더) 청결을 유지한다는 믿음, 손님을 대하는 그들의 미소가 진심이라는 믿음. 

믿음은 편안함을 배가시킨다.

미소로 반겨주는 곳,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는 곳, 그런 장소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나는 아끼고 아껴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만 하나둘씩 그곳에 데려가기 시작했다. 

포코펠리체는 그들에게도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여사장님은 늘 허리가 좋지 않다고 했다. 진심어린 눈빛과 반짝이는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오래 서 있어야 하는 그녀의 일을 허리는 더 이상 버텨주지 못했다. 행복한 7년이 지나고 그녀가 떠나자, 셰프도 스승님이 계시다는 제주도로 내려갔다.  


'이따가 거기서 봐요~'라고 약속을 잡을 수 있었던 일상의 사치가 사라졌다.

나는 길 잃은 아이처럼 인터넷을 헤맸다.

'맛집'이라는 키워드에 가득한 레스토랑 리스트를 보며 망연자실했다.

나의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 하나가 그렇게 추억이 되었다.




인생에 다시 없을(없기를 바라는) 2020년, 나는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일상의 순간들을 수집하고 있다.

모든 경제적인 이슈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을 한 편으로 치워놓고 한 사람의 일상으로만 보면, 지금 나의 시간은 그 어느때보다 풍요롭다.

성인이 된 이후로 가장 긴 시간 한국에 머물고 있다. 추석과 제사 등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모두 함께 할 수 있다. 작년까지 추석연휴에는 어김없이 해외공연이 잡혔었다. 출국할때마다 미안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떠났던 발길은 이제 가족들을 만난다는 충만함과 함께 집으로 향한다.


일에 쫒기지 않고 대청소를 시작했다. 반나절 혹은 하루만에 '쫒기듯' 끝내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거실 서랍, 내일은 서재, 모레는 옷장, 글피도 옷장, 그 다음날은 주방 수납장...

의자의 느슨해진 나사를 조이기 위해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지고도 끝끝내 찾지 못했던 육각렌치들도 모두 찾아 한자리에 모았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공구들을 박스에 담아 라벨지를 붙인다.

20년은 미뤄둔 듯한 집안 곳곳의 정리를 하며 켜켜이 쌓여있던 작은 죄책감들이 함께 씻겨져 내린다.

살기 위해 '봐도 못 본척' 하고 살았던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들이 서서히 가벼워진다. 행복하다.


책의 표지를 보며 단편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길지 않은 시간에 버릴지 말지, 어느 칸에 분류할 지를 결정한다.

버려질 책과 매거진, 자료들을 담을 박스를 10개 준비했지만, 그 또한 부족하여 끈을 주문했다.

의자에 올라 맨 위칸의 책들을 꺼내고 분류작업을 마치고 다시 꽂아놓는 반복된 노동으로 팔과 다리에 이름모를 근육이 생겼다. 매거진이 가득 담긴 박스는 나같은 인간이 들 수 없는 무게여서 다시 소분하여 담고 일부는 끈으로 묶는다. 책을 들고 오르락내리락을 수십회 반복하고 나니 혓바늘이 올라왔다. 저질체력.

끝끝내 버리지못한 책들은 다시 책장으로 회기한다. 그 질척한 마음을 끊어내려 또 한참을 고민하지만 지금은 아닌 멀지않은 시간에 또 한번 당찬 마음으로 정리에 들어가리라 다짐한다. 행복하다.


같이 일하는 나보다 어린 동지들이 말했다. 나는 좀 쉬어도 된다고...

그 말에 면책권이라도 주어진 듯 위로를 받고 나는 쉬는 중이다.

나의 쉼은 그동안 미뤄왔던 글쓰기로 시작해서, 한달간의 주변 정리, 그리고 다시 글쓰기로 돌아왔다.


백신을 맞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해외여행, 해외공연, 해외축제가 재개될 수 있는 시점은 아직 요원하다.

한 인간이 누려도 되는 가장 기본적인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수집하는 경험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by 엔젤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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