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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젤라권 Feb 22. 2021

님아, 그 맨박스에 들어가지 마오

연휴 때면 집에 내려가 새언니와 조카와 함께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거실 소파보다는 식탁이 편한 우리는 다양한 주전부리를 곁들여 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는 호기심과 배려를 장착한 조카를 그의 다양한 역할에 걸맞는 호칭으로 부른다. 그는 바리스타이자 고기찢기장인이자 파티셰이다. 전문성을 인정받은 조카는 그 일을 본인의 당연한 업무로 인지하고 전문성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매진한다.


몇 년 전, 캡슐커피를 내려주는 조카를 나는 바리스타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냥 바리스타도 아닌 ‘바리스타 선생님’이라 부르며 카푸치노의 풍부한 우유 거품을 추가로 요구했다. 명절 때마다 나의 전문 바리스타는 ‘고모 커피 드시겠어요?’라고 고마운 질문을 건네고, 과한 우유로 넘치는 사랑을 담아 과한 시나몬을 올린 무거운 카푸치노잔을 내 앞에 놓아준다.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벤티 사이즈 카푸치노다.


이번 구정 연휴엔 고3 바리스타가 만들어 준 카푸치노와 함께 파티셰로 변신 중인 그의 두 번째 도전작 ‘스콘’을 먹는 영광을 누렸다. 죄책감을 덜기 위함이라며 버터를 조금씩 조금씩 덜어 넣는 그의 움직임은 작은 저울 위의 눈금이 레시피에 적힌 정량을 가리킬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조카가 스콘을 만드는 과정은 시트콤이었지만 그 맛은 일류였다. 


집에 내려가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변에 나와 있는 책이나 책장을 스캔한다. 문득 집어 든 한 권의 책을 연휴 내내 틈틈이 읽고, 우연히 읽은 책이 마음에 들어오면 새로운 작가의 발견이라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집에 돌아오면 알라딘으로 작가의 지난 책들을 몇 권 주문한다. 이렇게 정말 읽고 싶은 책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건 굉장한 즐거움이다. 여러 권의 책을 한 번에 주문할 경우 알라딘 굿즈를 고르는 재미가 덤으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사실… 알라딘 굿즈가 갖고 싶어 꼭 필요하지 않은 책을 꾸역꾸역 장바구니에 담을 때도 많다. 그러니 꼭 사야 하는 책들이 많아진다는 건 큰 기쁨이다.


커피를 마시며 나의 눈은 어느새 테이블 위의 책들을 스캔하고 있었다. 

고3이 되는 조카의 교재가 가득한 테이블 위에 청록과 붉은색의 배치가 강렬한 책이 올려져 있었다. 소설, 에세이의 느낌보다는 다이어리나 조금 큰 메모장 혹은 알라딘에서 제작한 굿즈같은 펜시한 느낌의 커버와 사이즈의 책 'Man Box'. 제목과 디자인은 무심하게도 책의 정체에 대해 그 어떤 힌트도 주지 않았다. 내용을 가늠할 수 없는 표지에 이끌려 무심코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작가 소개와 목차를 보던 나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조카에게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았다.

언제 어떻게 알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인권과 평등 이슈에 관심이 많은 조카는 관련 내용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책인 것 같다고 했다. 저자의 사회활동에 대해 알고 나니,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조카가 대견했다. 


“다 읽었어? 어땠어?"

"아직 도입부요.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엊그제 받았어요.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요"


저자인 토니 포터의 TED 강연은 미국의 한 매거진이 선정한 ‘모든 남성들이 꼭 봐야 할 강연’에서 언급된 바 있다. 그러나 유튜브를 통해 찾아본 강연의 관객은 안타깝게도 90% 이상이 여성이었다. 

출판사의 서평은 ‘남성이 남성에게 말하는 가장 단도직입적인 페미니즘’이라고 쓰여 있지만, 페미니즘이란 단어는 이 책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 


책은 제목 그대로 ‘남자다움(맨박스)’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해방될 때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삶의 크고 작은 문제에서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이 책의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문제는 가부장적 사회가 잘못 만든 ‘남자다움’이라는 통속적 가르침 때문에 행해지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데이트폭력 등의 사회문제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악인은 아니라고 방관하는 착한 남자들의 침묵이 어째서 폭력에 대한 무언의 승인인지 설명하고 있다. 딸을 가진 아빠가 딸이 살아가기에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불편하지만 반드시 직시해야 할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고, 이를 함께 해결하자고 남자들에게 간곡히 청하고 있다.


나는 딸을 가진 아빠들이 좋다.

딸바보 아빠들은 딸을 키우며 함께 성장한다.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이 깊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며 더 좋은 사람(A good man)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자신의 딸들이 얼마나 천재적인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자신을 이해해주고 걱정하는 딸들이 자신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 수많은 기적에 대해 찬사와 감동을 늘어놓는다. 그리곤 이내 눈 안에 근심이 가득하다. 그녀들이 살아갈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녀들이 살아갈 세상이 편견 없이 평등하길 바란다. 안전하길 바란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한 사회생활을 돌아보며 그들은 후회하거나 좌절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가 바뀌고 있다고 말하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저자인 토니에게는 한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이 있다. 아이들이 4~5살쯤 됐을 때, 딸이 울음을 터뜨리면 그는 품 안에 딸을 꼭 끌어안고 ‘아빠가 지켜줄게’라 말했지만, 딸보다 2살밖에 많지 않은 아들이 울음을 터뜨리면 ‘왜 우는 거니! 고개 들어! 똑바로 봐! 왜 우는지 똑바로 설명해 봐!’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남자답지 못하게 우는 아이를 보며 좌절감을 느꼈고 남자답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더욱 강하게 몰아붙이며, ‘방에 들어가. 앉아서 잘 생각해 보고, 남자답게 말할 수 있을 때 나와!’라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이 왜 그런 건지, 뭐가 잘못된 건지 생각한다. 곧 그의 머리엔 그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십 대에 세상을 떠난 남동생의 장례식에서 돌아오던 차 안에서 그는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휴게소에 멈춰 어머니와 누이들이 모두 화장실에 가고 21살인 자신과 차 안에 단 둘이 남아 있게 되어서야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자신에게 '울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토니가 울지 않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그에게 '여자 앞에서는 절대로 울어서는 안 된다’, ‘울지 않는 건 남자답고 자랑스러운 일이다’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유일하게 남자답게 분출할 수 있는 감정인 ‘분노’는 자신을 포함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 이 분노는 또한 자신보다 신체적으로 약한 자들에게 표출될 때가 많으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 그 희생양이 된다.


가부장적 집안에서 자란 또래 친구들은 성인이 된 이후로, 1) 부모님과 변화를 외치며 싸우거나 2) 큰소리 내기 싫어 외면하거나 3) 자주 보지 않는 게 답이라 결정하고 거리를 둔다. 한 친구는 바뀌지 않는 상황에 숨이 막힌다며 전문직을 포기하고 홀연 단신 해외로 떠났다. 한국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에 무작정 떠난다고 한 그녀는 15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나는 가정적인 아빠 덕분에 불평등을 느끼지 않는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 운이 좋았다고 말하곤 한다. 평등이 '당연한' 게 아니라 ‘운이 좋은 것’인 이 사회는 분명 잘못되었다.


BTS의 RM이나 배우 하정우, 김윤식 등의 셀럽인 남자들이 언급하지 않았다면, 이 책은 국내에서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남자다움’이라는 맨박스에서 나오자고 얘기하는 저자도 남자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는 이분법으로 나누면 여자이거나 남자이다. 78억 인구의 반을 하나의 틀에 넣어 보편화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는 우리 인생 여정을 함께 하는 그 절반인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원래부터 그래왔다’고 얘기하는 너무나 당연한 (부당하거나 과한) 대우 혹은 배려에 대해, 당연시되는 말들에 대해, 그게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내려온 듯한 ‘여자는 이래야 된다. 남자는 이래야 된다’라는 '주워들은 말'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 세대인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말을 가감 없이 ‘주워듣고’ 자신도 모르게 사용하게 된다. 가치도 명분도 없는 대물림은 끊어내야 한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윤여정은 손주에게 사랑을 담아 ‘Pretty boy"라고 말한다. 네댓 살 정도로 보이는 손자는 그 말에 화가 나 할머니에게 소리를 지른다. "I'm not pretty! I'm good looking!"

저자가 책에 소개한 한 일화에서 ‘여자아이 같다’는 말을 듣는 게 ‘죽고 싶을 만큼 싫다’는 남자아이들의 대답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조카는 그의 아빠인 나의 오빠가 책에서 말하는 맨박스에 갇힌 남자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착하고 마음 여린 우리 오빠는 남자라는 책임감에 갇혀 사는 사람이다. 자신의 여린 감정을 드러내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다,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오빠가 지켜야 할 가족이고, 오빠는 우리의 보호자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가 서로의 보호자란 생각을 못하는 바보다. 


딸 둘에 아들 하나를 키운 우리 아빠는 나의 친구이자 나를 지켜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었다. 

‘밤에 다니면 위험해’라는 말과 통금시간을 정해 놓은 걸 제외하면 '여자니까 이래야 한다'는 말은 아빠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아빠가 오빠에게만은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말을 했던 걸 기억한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와 오빠가 기억하는 아빠는 다를 것 같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오빠가 그 작은 상자에서 나와 스스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한껏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by 엔젤라권


https://brunch.co.kr/@angellakwon/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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