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클럽바에서의 만남은 기분 좋은 우연이었고, 우리는 축제 전 약속한 대로, 월요일 브런치를 먹으러 스푼Spoon으로 향했다. 코리안 시즌을 진행하는 나와 공연팀은 대부분 한 달간의 일정으로 에든버러에 머물지만, 공연을 섭외하러 오는 프로모터들은 매년 방문 일정이 다르다.
닐스는 길어야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축제에 머물렀다. 그의 하루는 브런치 미팅 또는 오전 11시 공연으로 시작되었고, 공연장의 거리를 꼼꼼히 계산하고 세운 공연 관람 일정은 30분 단위로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가능하면 축제 시작 전에 서로의 방문 일정을 공유하고 브런치 약속을 먼저 잡았다.
스푼은 월요일 오전 11시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현지의 식재료만 엄선해서 사용하는 레스토랑으로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카페 비스트로café bistro 중 한 곳이다. 스푼으로 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조앤 롤링Joan K. Rowling이 작은 냅킨에 해리포터의 초고를 써 내려간 ‘진정한 해리포터의 탄생지’인 ‘니콜슨스 카페Nicolson’s Cafe’였다. 다행스럽게도(?) 이 사실은 해리포터의 찐 팬만 알고 있어 아직까지는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사랑하는 맛집으로 남아 있다.
닐스는 아침Breakfast과 점심lunch을 구분하는 걸 좋아한다.
사실 말장난일 뿐이지만, ‘I need Breakfast’라는 그의 말은 ‘아침식사’가 아니라 ‘에스프레소’를 뜻한다. 닐스는 메뉴를 보기도 전에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를 먼저 주문했다. 나는 보고 있던 메뉴판을 한쪽으로 밀어 놓으며, “이따가 ‘점심’ 주문할 때, 프렌치토스트 시켜줘”라고 말했다.
커피가 나오자, 닐스는 에스프레소를 원샷하고 바로 ‘점심’을 주문했다. 메뉴의 맨 위에 있는 ‘빅 브렉퍼스트’를 주문하면서 ‘오늘은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을 것 같애’라고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을 덧붙였다.
프로모터로 일하기 전까지 닐스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무용수였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자신의 배 위에 두 손을 걸칠 수 있게 되었고 그 자세가 점점 편해 보이던 순간부터 나는 그를 ‘테디베어’라고 불렀다. 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매년 커지는 그의 배를 바라보면, 그는 ‘여기에는 맥주가 들어있어’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식사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건강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시경을 했다는 얘기, 이제부터 식단 조절을 해야겠다는 얘기, 작은 접촉사고가 있었지만 괜찮다는 얘기 등.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가족에 대한 안부로 흘러갔고, 닐스는 결혼식에 왔던 조카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벌써 이렇게 컸어? OMG, They’re so big now”
나는 연신 감탄을 하며 핸드폰의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축복이야… It was a blessing.”
그는 슬며시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를 당했는데 병원에서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봐. 끔찍하지?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어. 그래서 결혼하기로 결심했었어… 지금이라도 법이 바뀌어서 다행이야. 이제는 입양도 할 수 있게 됐으니… 우리는 나이가 많아서 안된대…”
말을 흐리는 법이 없는 닐스가 말꼬리를 흐렸다.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그 날 많이 놀랬지?"
“아~. 윌리엄 때문이야. 너를 내 남자친구라고 얘기하는 바람에 다들 오해했나 보다. 근데 누가 봐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는 맞지. 변명하느라 힘들었어?”
나는 ‘닐스,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최대한 장난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오해한 건 아니었구, 그냥 자기보다 두배는 더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과의 모습을 보고 약간의 질투와 소외감을 느낀 것 같애."
닐스는 멋쩍게 웃으며 얘기를 이어갔다.
"매년 여름휴가 때마다 내가 축제에 와 있는 것도 미안하고, 에든버러도 궁금해하길래 같이 왔는데… 서로의 다른 점만 확인하게 되네. 토요일에 딱 하루 같이 다니고는 다음날부터 호텔에 있거나 혼자 관광을 하고 있어. 공연 보는 걸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라…”
죄책감이 묻은 그의 표정을 보고도 ‘아니야, 네 남편은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너랑 함께 온 여행이 행복할 거야…’라는 입 바랜 말을 해 줄 수 없었다. 닐스의 성격에 남편이 함께 왔다고 해서 일을 줄이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하루에 5~7개의 공연을 보고, 사이사이 미팅을 하는 그의 빡빡한 일정을 함께 하는 건 누군가에겐 곤혹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특히 ‘휴가’라 생각하고 왔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닐스의 남편은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출근과 퇴근, 주중과 주말, 휴가가 명확한 그에게 닐스의 잦은 해외출장과 주중과 주말의 경계 없는 공연 스케줄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일 때문에 싸운 적은 없어. 워낙 배려를 해주는 사람이라… 근데 지쳐가는 게 눈에 보여. 집에서 기다려주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출장을 좀 줄여야 할 것 같아.”
그가 말했고,
“나도 같은 생각이야. 꼭 가야 하는 출장이라도 체류 일정을 줄여보려 노력하고 있어”
나는 동의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우리 대화의 핵심 주제가 ‘결혼생활’이라니…
삶의 시간은 우리에게 각각의 시간에 따른 주제를 던진다. 두 살 차이인 우리는 서로의 리즈시절인 20대를 기억하며, 일에 대한 고민으로 흔들리던 30대를 지탱해 주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으로 성숙해가는 40대를 응원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늘 뭔가 애잔하고, 자주 사랑스럽고, 가끔 아무것도 아닌 말에 눈물을 흘린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지만, 서로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네 뒤엔 내가 있어. I’ve got your back
My Teddy Bear
2020년 1월 마지막 주 일요일.
우리는 암스테르담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넌스피트Nunspeet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 마주 앉았다. 며칠 후면 26개 도시 투어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이전엔 더 긴 기간 동안 더 많은 도시의 투어를 진행한 적도 있지만, 우리에게 이번 네덜란드 투어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했다.
해외 공연의 경우, 초청받는 공연팀은 회차당 정해 놓은 개런티를 초청 측에 공유하고, 공연기간 및 회차에 따른 짧은 조정을 거쳐 계약서를 작성한다. 초청 측이 현지에서 지출하는 비용을 알 필요도 알 이유도 없다. 또한 객석점유율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손해가 없는지 혹은 어느 정도 되어야 이익이 발생하는지 궁금해할 이유도 없다. 초청공연의 계약서는 그래서 심플한 편이다.
초청 측이 공적인 기관이 아닌 경우, 대부분의 프리젠터는 손실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인지하고 모험을 한다. 해외 공연을 초청하는 경우, 현지에서 발생하는 대관료, 기술사용료, 홍보마케팅, 기타 운영비, 인건비와 공연비 이외에도 항공료, 숙박비, 퍼디엠을 예산에 잡아야 한다. 국내 작품을 상연할 때보다 BEP(Break Even Point/손익분기점)는 당연히 올라간다. 해외 공연을 초청하기로 결심한 순간 모든 프리젠터는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안는다. 물론 결과가 좋으면, 그에 따른 수익도 초청 측의 몫이다.
나는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내 친구 혼자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2년 전 그가 네덜란드 투어 얘기를 꺼낼 때부터 우리는 누구도 손해보지 않을 방법을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초청하는 프리젠터가 예산 항목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엑셀 파일을 공유하는 경우는 없다. 이번만은 예외였다. 우리 둘은 마치 공동기획공연을 하듯 예산을 함께 구성해 나갔다. 계약서에는 배우와 스텝들에게 지급할 비용을 미니멈 개런티로 정하고, BEP를 넘는 시점부터 수익을 나누는 러닝개런티를 추가로 넣었다. 공연팀이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프리젠터의 초기 부담은 낮추고, 결과가 좋으면 수익도 같이 나누는 서로를 배려하는 조건이 완성되었다.
다른 공연을 초청할 때에는 오프닝 나잇(Opening night/첫 공연과 축하 리셉션)에만 방문하는 초청 측 대표인 그는 먼 길 날아온 친구를 위해 2박 3일의 일정을 함께 했다.
저녁을 먹으며, 나는 이제 3년 차에 접어든 그의 회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떤 공연을 전속으로 맡았는지 어디와 파트너십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지 등. 자신의 계획을 말하는 그의 눈이 빛났다.
그는 우리가 축배를 들며 기뻐했던 세계 최대의 아트 매니지먼트사에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되었을 때를 상기시켰다. 당시 닐스는 공연예술분야를 위해 뭔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시들어갔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작품성과 상관없이 돈 되는 공연은 계약을 맺고, 돈이 되지 않는 공연은 취급하지 않는 곳’이었다고 말이다. 그는 원석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나름의 철학과 세계관을 담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공연을 알아보는 프로모터다. 하지만 회사는 그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 공연을 함께 키워가려는 곳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장 매출과 연결되는 일을 해야 했다고…
“내가 사업가로 보여? Do I look like a businessman?”
사업가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이 아니다. 우리는 사업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의 말은 우리가 아직도 철이 없어서 처음 공연예술에 몸 담았던 이유가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일 뿐이다.
사업. 사업가. 이윤창출이 목적이어야 한다면 우리는 직업을 바꿔야 한다. 무대가 좋아서 선택한 일, 공연이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며 느끼는 충만한 공감이 좋아서, 그리고 우리의 작은 생각이 누군가의 삶에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일하는 우리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쉽게 상처 받는다. 걷던 걸음을 멈추게 될 수도, 그대로 주저앉을 수도, 뒤를 돌아 다른 방향으로 걸어갈 수도 있다. 우리를 걷던 방향으로 다시 걷게 만드는 건 묵묵히 그 길을 걷고 있는 동료들이다.
닐스가 자신의 회사를 차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내가 20대 후반에 회사를 차린 이유.
작품을 만들고 문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함께 일하는 개인 또는 회사와 계약을 맺어야 하고, 계산서를 발행해야 하며,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사업자등록증이 있어야 했다. 국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서 경제활동’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대표가 되었다. 대표가 되고 싶어 회사를 만든 게 아니다.
닐스는 2박 3일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나의 모든 시간에 함께 했다. 공연의 셋업과 리허설과 스텝들과의 미팅으로 바쁜 나를 그저 옆에서 바라봐 주고 기다려 주던 친구는 ‘언제든 필요하면 달려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갔다.
'나는 진심을 담아 작품을 대하는 친구들이, 나의 동지들이, 일이 아닌 세상에 사람에 상처 받지 않고 오래 함께 할 수 있기를 매 순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