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l's best gay friend (上)

Niels Gamm

by 엔젤라권

클럽바Club bar의 문은 비밀의 문이다.

어셈블리의 스텝이나 이미 여러 번 방문한 공연자가 아니라면 밖에서 들어오는 문을 찾기란 쉽지 않다.

‘클럽바’라고 쓰여진 간판도 없으며 클럽바를 아는 우리만 이 공간을 클럽바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어셈블리에서 공연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아티스트 패스Artist Pass’를 받게 된다.

패스는 자신이 공연하는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한 출입증의 기능 이외에도 어셈블리 공연장 22곳에서 공연하는 200여 개의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또한 어셈블리 카페, 레스토랑, 주변의 푸드트럭 등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이 곳 클럽바도 패스가 있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문’과 ‘벽’의 경계가 애매한 이곳의 출입구는 외부에 있는 퍼블릭 바Public bar의 카운터 옆쪽에 위치해 있다 보니, 사람들은 이곳에 어딘가로 들어가는 문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손잡이가 없는 문을 밀고 들어가면 3미터 정도의 밀폐된 공간이 나온다. 맞은편에는 또 하나의 손잡이 없는 문이 있다. 문을 열면 예상하지 못한 규모의 넓은 카페가 한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붉은색을 기본으로 한 인테리어와 높은 지붕에 매달려 있는 5개의 아름다운 샹들리에, 그 주위를 감싸듯 검붉은 실크가 자연스럽게 드리워져 있다.


출입구 옆에 길게 펼쳐진 바 공간을 제외한 3면은 거울과 스테인드글라스로 고급스럽게 감쌌고, 낮은 나무 칸막이로 구분 지어 놓은 테이블과 의자 사이에는 키가 큰 나무를 배치해 안정감 있는 초록의 색감을 더했다. 투명 유리로 마감해 놓아 날씨를 확인할 수 있는 지붕은 비가 자주 오는 에든버러에서 꽤나 유용하며, 빗소리를 들으며 기울이는 술잔에 운치를 더한다.


1999년부터 10여 년간 어셈블리룸즈의 품격 있는 르네상스풍 ‘레인바Lane Bar’의 시대였다면, 2015년 코리안 시즌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어셈블리 죠지스퀘어의 모던한 ‘클럽바Club Bar’의 시대가 도래했다.


2017년 8월 둘째 주 토요일 저녁,

여느 때와 같이 릭과 데니스와 나는 하루의 일정을 정리하며 클럽바에서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릭은 언젠가부터 푹 빠져 있는 발베니The Balvenie 싱글몰트 위스키 잔을,

데니스는 스텔라 맥주 Stella Artois 파인트 잔을,

나는 프로세코 Prosecco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서로의 주류 노선이 확실한 우리지만 공연만큼은 시간을 맞춰 함께 보려 노력했다. 우리는 프로그램북을 펼치고 이 날 저녁에 보기로 한 블레스크 공연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클럽바의 문이 열리고 윌리엄이 들어왔다.

마치 내가 이 시간에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나에게 할 말을 미리 정해 놓았을 테고, 그 말이 스스로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네 남자친구가 왔어. Your boyfriend is here.


클럽바의 문이 활짝 열리고, 키가 큰 4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매년 그러하듯이, 우리는 이산가족상봉처럼 서로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다가갔고, 닐스Niels는 한 팔로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일 년에 한 번 에든버러에서 ‘생존 확인’을 하는 친구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독일 친구를 나는 ‘나의 테디베어My Teddy bear’라 불렀고, 우리는 다른 친구들처럼 얌전히 비쥬만 하는 법이 없었다.


서로 힙하고 핫한 20대에 만나 일과 일상을 공유한 친구.

난타의 초창기 유럽 초청공연을 진행한 L사에서 일하던 그와는 긴 투어를 함께 하며 친구가 되었고, 그가 세계에서 가장 큰 아트 매니지먼트사의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되었을 때 함께 축배를 들었으며, 최근 자신의 회사를 차린 그의 새 출발을 마음 깊이 응원하고 있었다.


닐스는 한참을 들고 있던 나를 내려놓고 함께 온 친구들을 소개했다. 그와 함께 오는 친구들은 독일 회사의 동료들이거나 네덜란드 공연장 관계자일 때가 많았다. 이름만 소개하는 첫 만남에서 정확한 직업을 알기는 어렵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직업이나 역할들을 캐치해 나갔다.

축제에서 만나는 우리는 ‘내 친구의 친구 = 내 친구’라는 간단한 룰로 단시간에 친해진다.


그러나 이 날은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닐스가 소개한 짧은 머리의 독일 친구는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과묵했다. 짧은 머리에 말끔하게 면도한 얼굴과 단정한 옷차림. 언뜻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는 모습은 공연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군인 장교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닐스의 옆에 앉아 그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살피는 것 같았고, 닐스와 내가 인사를 나눈 뒤부터 왠지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닐스의 태도도 조금 어색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내 옆자리에 앉아 자주 장난을 치던 그가 오늘은 거리를 두고 앉아서 지나치게 예의를 갖춰 대화를 이어갔다. 30분남짓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공연시간이 다 되어 간다는 이유를 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닐스에게 일정을 물어보니, 그의 일행도 우리가 보려는 블레스크 공연을 볼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는 함께 죠지스퀘어 가든에 있는 팔레 뒤 파리에테Palais Du Variete 공연장으로 향했다. 프린지 공연의 객석은 지정석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오는 순서대로 줄을 서고, 줄을 선 순서대로 입장하여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사람들에 밀려 자리에 앉고 보니, 내 옆에 독일 친구가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 닐스와 네덜란드 친구들이 앉고, 뒷줄에 릭과 데니스가 앉았다.


베스트 오브 블레스크Best of Burlesque는 진지한 공연이 아니다. 제목 그대로 그 해의 블레스크 공연 중 하이라이트를 모아서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 공연이다. 같이 온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술잔을 마주하고, 진행자의 입담에 큰 소리로 반응하며 왁자지껄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게 이 공연을 보는 목적이다.


공연시간 내내 독일 친구는 웃지 않았고, 나도 함께 맞장구치며 즐길 친구가 옆에 없어 얌전히 공연을 볼 수밖에 없었다. 잠깐씩 고개를 돌려 닐스와 눈이 마주칠 때면 곧바로 독일 친구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애매한 미소를 건네며 시선을 돌렸고, 그렇게 한 시간이 지루하게 흘러갔다.


공연이 끝나고 굿 나이트 인사를 나누며 닐스가 조그맣게 말했다.


“내 남편 때문에 불편했지…”


진작 귀띔이라도 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것처럼 불편한 기분이 떠나질 않았다.


닐스는 3년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7년째 함께 살고 있는 파트너와의 결혼이었다. 성대한 결혼식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멀리 있는 친구들은 부르지 않을 거라고 말했던 그는 가족들과 함께 스몰 웨딩을 진행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결혼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에는 멋진 턱시도 차림의 남자 둘이 서로를 마주 보며 손을 맞잡고 서 있었다.


‘남편과 남편 Husband and Husband’


독일은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이다.

놀라운 건, ‘가장 먼저 합법화된 나라 중 하나겠지…’라는 내 생각과 달리 2017년에야 힘겹게 법이 통과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전부터 ‘생활 파트너십’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아이를 입양할 수 없다는 점 이외에는 부부가 갖는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하지만, 옆 나라 이웃나라 네덜란드보다 17년이나 늦게 합법화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닐스는 내 인생의 첫 번째 게이 친구다.

2000년대 초반, 20대의 닐스와 나는 자주 카페 창가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셨다. 여고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패션에 대해 악의 없는 평가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곤 했다. ‘난 저런 헤어스타일의 남자가 좋더라’, ‘난 옷을 저렇게 입는 사람은 별로더라’ 등 서로의 스타일과 성격을 알아가며, 우리는 말이 가장 잘 통하는 친구가 되었다.


‘왜 게이가 여자들의 베스트 프렌드일까? Why Gay guys are a girl’s best friend’라는 일러스트 가득한 책을 영국의 한 서점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그가 게이라서 '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우리는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행복하고, 나누는 모든 대화가 즐겁고,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을 정도로 서로를 잘 이해한다.


2019년 가을, 코리안 시즌 5주년을 기념하며 서울에서 5주간의 축제 ‘베스트 오브 더 페스트’를 진행했다.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 7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13후르츠케이크’를 특별공연으로 올리며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어릴 적 ‘미래’라고 상상한 2020년, 아직도 이 세상에는 비밀의 문 너머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길버트 베이커Gilbert Baker는 다름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것은 인류 문명의 오랜 목표라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기 자신의 편협함을 극복하고 세상의 편견과 맞서야 한다고 말하며 ‘레인보우 플래그Rainbow Flag’를 만들었다.


축제가 존재하는 이유도 이와 같지 않을까? 다름에 대한 공감과 이해,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 차별과 혐오의 낙인 없이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어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의 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by 엔젤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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