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타이밍이다_Ep.1

#01. 뮌헨 톨우드 페스티벌_Year 2000

by 엔젤라권

밀레니엄.

스물여섯의 나는 달려가고 있던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용기가 없었다.

맞지 않는 타이밍은 운명도 스쳐가는 인연으로 만든다.



2000년 6월,

뮌헨 축제에서의 한달은 공연예술 분야에서 같은 일을 하는 10여개국 친구들과 함께 보낸 놀이같은 하루하루로 기억된다. 이름을 외우기 어려웠던 독일맥주와 몇 년산 어디 와인인지 중요하지 않았던 유럽와인이 우리의 낮과 밤 난장 같은 수다와 함께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시작된 톨우드 페스티벌Tollwood Festival은 여름축제와 겨울축제로 나뉘어 일년에 두번 개최된다.

올림피아공원Olympiapark에서 진행되는 여름축제에는 1,000여명이 넘게 들어가는 뮤직텐트, 씨어터텐트, 댄스(캬바레)텐트 등 쟝르별 공연을 올리는 팝업씨어터가 세워진다. 서울 올림픽공원에 세워지던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빅탑씨어터가 큰 공원안에 여러개 들어서 있는 모습이다.

텐트 공연장들은 퍼플, 오렌지, 옐로우, 그린 등 화려한 외관 조명으로 어둡고 깊은 숲속에 숨어있는 보석처럼 빛나고 한달간 1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만난다.


우리가 공연한 씨어터텐트Theatre Tent는 따뜻한 오렌지 빛으로 빛났다.

도착한 순간부터 달큰하고 나른한 초여름의 저녁공기와 지는 해의 끝자락에 묻어나던 짙은 앰버빛이 어우러져 환영받는 기분이 들게 했다.


축제를 준비중인 텅 빈 공연장 안에는 조도가 낮은 워킹라이트working light가 켜져 있었다.

키가 큰 누군가가 명상하듯 잔잔한 얼굴로 무대를 쓸고 있다.

우리가 객석을 가로질러 무대로 다가갈 때까지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고, 인사를 건네는 나의 목소리에 놀란 것 같았다.

상황파악을 하려는 듯 잠시 멈춰 있던 그는 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이방인들을 향해 예의바른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나는 왠지 우리가 그의 공간에 침입해 조용한 명상을 깬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Hi, I’m Andrei. Welcome to Tollwood.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며 가까이에서 보니,

그는 짙은 갈색의 자연스러운 곱슬머리에 높은 콧대에 비해 조금 작은 녹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마른 체격이지만 넓은 어깨와 큰 손을 가진 앙드레이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키에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온 듯 3명의 현지스텝들이 공연장으로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그 중 한 명이 열걸음이나 앞에서부터 손을 내민 채 축지법을 쓰듯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머리카락이 많지는 않지만 아름답게 빛나는 은발에 핀란드의 국민캐릭터 무민Moomin(포동포동한 몸매에 새하얀 무민은 토베 얀손Tove Jansson이 창조한 상상속 동물로 핀란드의 대표 캐릭터이다)을 닮은 토우카의 사람좋은 얼굴과 동그란 배가 한눈에 들어왔다.

환영받는 기분이다.


35년간 공연일을 해왔다는 토우카는 핀란드 탐페레에 있는 한 공연장의 극장장이었다.

연차가 쌓여 일년에 6개월의 휴가를 보낸다는 그는 긴 휴가기간에 유럽의 축제를 돌며 무대크루stage crew로 일한다고 했다.


앙드레이는 씨어터텐트의 무대감독이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그도 여름이면 유럽의 축제를 돌며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셋업 첫날부터 토우카는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한국공연을 처음 본다는 그는 세트, 소품, 운용방식 등 궁금한 게 많았고,

한국어로 명칭을 말해주면 몇 번을 반복해 따라했지만 외우지는 못했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지만, 첫 공연은 늘 고도의 긴장상태에서 진행된다.

특히 해외공연은 손발을 처음 맞춰보는 현지스텝들과 단 한번의 리허설을 진행하고,

바로 본 공연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한국스텝도 배우도 현지의 스텝도 예민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련한 스텝일지라도 전체 공연의 진행을 숙지하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리는데…

공연준비는 늘 시간이 부족했다.


첫 공연을 관객의 뜨거운 호응과 함께 무사히 마치고 나니, 서로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두터워졌다.


다음날부터 현지스텝들은 우리의 콜시간(초청받은 공연팀이 준비를 위해 공연장에 도착하는 시간)전에

공연 준비를 완벽히 끝마쳐 놓았다. 공연장에 도착해 무대를 점검하던 나는 전날은 보이지 않던 소품테이블 위의 '그림'을 발견하곤 한참을 서 있었다.


소품을 본 따 그린 그림은 한국어로 된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운 스텝들의 임기응변이었을 수도 있고,

프리셋Pre-set을 편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에겐 작은 감동이 밀려왔다.


앙드레이가 그렸어. 물론 내 아이디어였지만.
Andrei drew this. Of course, It was my idea though.


토우카가 다가와 윙크하며 말했다.

나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토우카를 꼭 끌어안았다. 그의 사람좋은 웃음과 함께 동그란 배가 부풀어 올라 나는 곧 튕겨져 나왔다.


유럽에서 만난 현지 스텝들은
자신의 본업이 연출이든 배우든,
어느 공연장의 극장장이든 관계자이든,
다른 축제에서 어떤 직함으로 일하든,
상대방에게 특별한 관심을 바라지 않았다.

모두가 평등했고 모두가 친구였다.

'직함이 붙지 않은 한시적인 파트타임' 업무를 고민없이 선택할 수 있는 용기_그들은 ‘용기’라는 단어를 이렇게 쓰지 않겠지만_와 소소한 일들도 즐겁게 책임을 다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20세기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경력 2년차 한국스텝인 나는 공연계의 선배들에게
나이와 경력, 국적과 성별이 중요하지 않다는 ‘당연한’ 진리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Human being’의 도리를 배워갔다.


몇일 지나지 않아,

씨어터텐트에서 일하는 스텝들은 우리 공연을 ‘우리 공연our show’이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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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젤라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