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고모와 중2 조카의 첫 해외여행

2017년 8월 에든버러.

by 엔젤라권

2017년 8월.

그 어느 해보다 특별한 에든버러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일중독인 오빠에게 (제발) 가족과 함께 에든버러로 여름휴가를 보내러 오라고 말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난 후였다.

2017년 3월 드디어 오빠에게서 여름 가족 휴가 계획을 세워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오빠는 결국 다시 일을 선택했다. 새언니와 조카 2명만 보내겠다는 오빠와 오빠 혼자 두고 가기는 미안해서 안 되겠다는 새언니. 그렇게 또 한 번 사랑하는 가족의 에든버러 방문이 무산되는구나… 상심하고 있을 때,


2명은 혼자 감당이 안 될 거예요. 첫째는 이제 중2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새언니는 중2 첫째 조카만 데려가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가족이 모두 오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세 잊고, ‘조카의 첫 해외여행 동반자가 된 고모’라는 타이틀에 심취해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어릴 적, 우리는 아빠의 누나 동생들보다 엄마의 언니 동생들과 친하게 지냈다.

이모와 삼촌을 더 자주 봤기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고모와 고모부는 왠지 너무 ‘어른’ 같았고 편하게 놀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조카가 생기고 내가 ‘고모’가 되었을 때, 나는 입 밖으로 말은 안 했지만 ‘이모’라 불리고 싶었다.

고모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겐 너무 묵직하고 멀게 느껴졌다.


조카 얘기를 하면 모두 눈에 하트가 그려지겠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콩깍지가 제대로 껴 있는 고모다.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와는 달리 일 년에 얼굴을 보는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명절이나 제사 때 오빠 집에서 1박 2일을 보내는 것 이외에 조카들과 뭔가 새로운 걸 함께 해 본 경험이 없었다.


철없는 고모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중2 조카와 함께 한 에든버러에서의 하루하루는 소중한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축제의 첫 주는 마음에 여유가 없다.

코리안 시즌에 선정한 5개 작품의 셋업 과정을 확인하고, 첫 공연을 관람하며 관객 반응을 직접 확인한 뒤에야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5개 공연장을 돌며 부족한 셋업 시간에 고군분투하는 팀들과 공연장 스텝들을 독려하고, 홍보담당인 웬디 아줌마와 5개 작품의 프리뷰를 관람하고 각각의 홍보방안을 수립하고, 언론 인터뷰와 포토콜을 진행하고, 어셈블리 갈라와 매거진 파티에 참석하다 보면 축제의 첫 주가 훌쩍 지나가 버린다.

매년 루틴 같은 나의 스케줄 안에 처음으로, 아니 내 삶에 처음으로 ‘미성년자’ 조카가 일상을 함께 하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를 책임질 만한 재목이 못된다.

솔직히 어린 조카보다 내가 더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바쁜 스케줄 안에 일정이 겹치면 나는 식사시간을 제일 먼저 제외시키곤 했다. 식사를 챙기는 게 건강을 챙기는 거라는 당연한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늘 일이 최우선이었다. 거절하는 법 없이 있는 대로 일을 떠맡았던 어느 해의 축제에서는 보름도 지나지 않아 옷들이 모두 커지고 바지가 빙빙 돌아가기 시작했다. 피골이 상접해가는 친구를 보며 주변에서는 자주 입에 주전부리를 넣어주었고, 나는 곧잘 받아먹으며 연명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의 지도편달로 지금은 먹는 즐거움을 아는 인간, 스스로 건강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요지는… 내가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를 챙겨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조카에게 뭘 먹을지 물어봐야 하는 건지, 삼시 세 끼를 다 챙겨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조카가 알아서 잘 챙겨 먹는 건지, 뭘 먹고 싶다고 얘기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건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전까지 ‘성인’만 있는 우리의 (식사)일상은 이러했다.

각자 본인의 스케줄에 맞춰 집에 비축되어 있는 식량(시리얼, 우유, 빵, 요거트, 과일, 라면, 누룽지 등) 중에서 먹고 싶은 아침을 알아서 먹고 일과를 시작했다. 스케줄이 맞으면 밖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혹은 따로 먹고, 저녁은 누군가 집에서 요리를 해서 다 같이 먹거나 각자의 일정에 따라 알아서 할 때가 많았다.


중2 조카는 고모보다 머리 하나는 큰 키에 힘도 세어서 고모 가방도 들어주고 고모가 업어달라고 하면 길에서도 업어주는 아이였다. 그러니까, 누구를 키워보지 않은 고모가 보기에 조카는 이미 너무나 듬직한 어른이었다. 그런데 또 얘기를 나누다 보면 아직 아이 같기도 하고…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챙겨줘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일행 중 제일 먼저 일어나는 나의 아침 루틴은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열어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서 배가 고파 오면 시리얼과 과일을 먹거나, 간단히 토스트를 먹으며 일정을 정리했다.


'조카와 함께 하는 Day 1'

시차 때문에 새벽부터 일어나 거실로 나온 나는 소파에 앉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조카는 몇 시에 깨워야 하는 걸까? 일어날 때까지 놔두면 되는 건가? 대단한 아침을 차릴 것도 아니고 그저 시리얼 먹을 건데 같이 먹자고 꼭 깨워야 하나? 평소엔 몇 시에 일어나지? 여름방학이니까 늦잠을 자도 되는 거 아닌가?


별스럽지 않은 고민은 하루 만에 해결되었다.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흘러가는 대로 생활해 보는 방향으로… 일정에 맞춰 같이 움직여야 하면 깨워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외출 준비를 시켰고, 여유가 있는 날은 알아서 일어날 때까지 놔두는 융통성 있는 생활이 자리 잡아갔다.


에든버러는 반나절만 걸어 다니면 대략적인 도심의 지리를 파악할 수 있는 가로세로 정리가 잘되어 있는 소도시다. 조카는 집과 마트, 로열 마일, 프린세스 스트리트, 공연장 그리고 해리포터 샵의 위치를 빠르게 익혔다.


영어를 사용할 기회를 늘린다는 이유로 나는 자주 조카를 마트에 보냈다. 크루아상, 우유, 주스, 계란, 과일 등 아침에 필요한 물품을 사 오게 했고, 돌아오는 조카의 쇼핑백에는 초코 크루아상이 한두 개씩 더 담겨 있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모든 일정을 함께 했다. 셋업 하는 공연장도 함께 가고, 미팅도 함께 가고, 공연도 함께 관람하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파티에도 함께 참석했다. 동양인의 나이를 맞추기 어렵다고 말하는 외국 친구들은 조카를 대학생 인턴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조카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고모에서 대표님으로, 대표님에서 캡틴으로, 일주일 만에 엔젤라로 바뀌어 갔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하는 현지 생활에 익숙해졌고, 공연이 안정궤도에 진입한 첫 주가 지나자 하루에 몇 시간씩은 서로 다른 스케줄로 움직이게 되었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메일을 확인하는 나와 소파에 반쯤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조카의 모습이 익숙해지던 어느 아침, 나는 조카에게 매일 하는 질문을 던졌다.


“오늘은 뭐 할 거야?”

“에든버러 성에 가보려구요”

“오~, 좋은 생각이다. 조심해서 다녀와~”


조카가 혼자 에든버러 성에 간다는 걸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조카는 이미 (나는 몇 년 동안 존재 유무도 몰랐던) 해리포터 샵을 찾아내 매일 출근도장을 찍고 있었고, 그에게도 에든버러는 어느새 편안한 일상의 공간이 된 것 같았다.


서울에 살면서 63빌딩, 남산, 경복궁, 남대문, 명동 등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관광지에 잘 가지 않게 되는 것처럼, 제2의 고향인 에든버러에서 나는 처음 2년을 제외하고는 관광지에 가지 않게 되었다. 해외에서 친구들이 방문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의 ‘일상 공간’에 관광지는 포함되지 않는 편이다. 서울과 다를 바 없이 익숙해진 에든버러에서 나는 현지인처럼 살고 있었다.


우리는 매년 한 달간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집을 렌트해서 생활했다. 위치가 너무 좋아 2년째 살고 있던 집에서 축제 거리인 로열 마일까지는 걸어서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로열 마일을 따라 10~15분 정도 올라가면 에든버러 성이 나온다.

Edinburgh Castle


해리포터 망토에, 그리핀도르 목도리에, 덤블도어 지팡이까지 꼼꼼히 챙겨서 나갔던 조카는 30분도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다.


“뭐 놓고 갔어?”

“고모… 거긴 보호자가 없으면 못 들어간대요…”

“어?”

“15세 이하는 보호자랑 같이 와야 티켓을 사서 들어갈 수 있대요”


몰랐다.

성인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도 처음이고, 영국에서 미성년자를 만날 일은 더더욱 없었다.


생일이 늦어 만으로 13살인 조카는 입장권을 사는 곳에서 똑똑하게 성인 가격과 15세 이하의 가격을 확인한 후, 여권과 현금 10파운드를 내밀었다고 한다. (성인은 15.50파운드, 5세~15세는 9.30파운드이다.)


여권을 확인한 직원은 조카가 기대한 티켓 대신에 ‘부모님 어디 계시니? Where’s your parents?’라는 질문과 함께 여권과 현금을 돌려줬다고 한다. 보호자가 없으면 입장권을 구입할 수도, 성에 들어갈 수도 없다는 사실도 친절히 설명해 준 것 같았다.


“쫌만 기다려. 고모랑 같이 가자.”


쿨하게 말했지만 죄책감이 밀려왔다. 생각 없는 어른 같으니…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건지…


13년의 삶을 살고 있는 배려 넘치는 꼬마 인간은 그동안 고모의 일에 방해가 될까 봐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조카와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을 뿐, '조카와 함께' 또는 '조카를 위해' 뭘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는커녕 내 일정 하나 조절할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나의 일과 일상이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국을 처음 방문한 조카가 뭘 경험하면 좋을지, 어디를 가고 싶어 할지 생각해 보지 못했다. 관광객이면 누구나 방문하는 에든버러 성도, 홀리루드 궁전도, 스콧 기념탑도, 세인트 자일즈 대성당도, 칼튼 힐도 데려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거리를 걸으며 마주치는 수많은 동상들을 보며 영국의 계몽주의자들에 대해, 문학에 대해 얘기해 줄 생각도 못했다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슬며시 가슴을 쓸어내린다.

‘보호자 없이 미성년자를 들여보내지 않는 에든버러 성’에 감사하며...


터닝 포인트.

무심한 일상의 공간이었던 에든버러의 곳곳은 그 시간부터 조카와의 추억이 묻어나는 특별한 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by 엔젤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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