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만 쉬운 일

Guy Masterson

by 엔젤라권

2018년 8월 24일,

어셈블리 죠지스퀘어Assembly George Square의 클럽바Club bar에서는 가이Guy Masterson의 ‘25번째 프린지’를 기념하는 파티가 열렸다.

가이는 올해도 직접 쓰고 연출한 신작과 자신의 솔로 공연을 가지고 에든버러를 찾았다. 그 해 프린지에 첫 선을 보인 연극 ‘마릴린 음모The Marilyn Conspiracy(마릴린 몬로의 죽음과 관련된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한 연극)’에 출연하는 매력적인 배우들과 그의 25년 프린지 추억에 각각의 페이지를 장식하는 ‘프린지 가족’들이 모여 샴페인 잔을 높이 들었다.


가이가 처음 에든버러를 알게 된 건 나보다 5년 빠른 1994년이었다.

‘언더 밀크우드Under Milk Wood’라는 연극에 배우로 출연했던 그는 이 아름다운 도시와 프린지 정신에 반했고, 다음 해 그의 삼촌인 리차드 버튼Richard Burton의 인생을 다룬 연극 ‘플레잉 버튼Playing Burton’의 연출로,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 후로 25년간 그는 수많은 작품의 배우이자 연출이자 제작자로 한해도 쉬지 않고 프린지를 찾아왔고, 2019년 그가 연출한 신작 ‘샤크 이즈 브로큰The Shark is Broken’은 2020년 런던 웨스트앤드에서 상연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20년 동안 서로의 작품을 묵묵히 응원하고 있는 우리는 입 밖으로 말하진 않지만 일에 대한 진정성과 능력을 완벽히 인정하고 있다. 모든 작품이 대중적인 흥행을 거두지 못할 지라도, 우리는 서로 작품에 담은 진심을 본다. 작은 돛단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동료의 심정으로, 나는 우리가 이 바닥(?)에서 살아남아 ‘제발’ 서로 오래 보고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몇 년 사이, 세계 곳곳에서 모이던 친구들 중 몇몇은 연이은 흥행실패로 사라져 갔고, 몇몇은 공연예술계를 떠나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문화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하고 문화를 지켜야 한다, 문화의 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세상에서 문화, 특히 공연예술은 작고도 작은 산업의 파이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가 힘들 때 공연예술은 마치 없어도 되는 사치품이 된 기분이 든다.


운 좋게도 우리는 지난 20년간 살아남아 서로의 작품을 볼 수 있었고, 그의 작품은 그의 진심과 끊임없는 창작열을 그대로 담아내며 매년 그 깊이를 더해갔다. 그는 새로 만나는 친구들에게 ‘그녀는 대작들을 가져온다구. 엄청나게 히트 치는 공연들. She brings big productions. Huge hits.’라는 설명과 함께 나를 소개했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는 놀라운 배우예요. 그의 연극을 꼭 봐야 해요. He’s just an amazing actor. You shouldn’t miss the play.’라고 그의 공연을 자랑스럽게 추천했다.


2017년, 한국 공연을 에든버러에 소개한 지 18년이 되던 해까지도 나는 선정작에 ‘연극’을 포함시킬 수 없었다. 자막을 읽으며 연극을 본다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이미 수십 차례 경험한 바 있었다. 배우의 연기에 집중하며 감정을 따라가야 하는데, 자막을 보려고 위로 옆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다니… 결국 어느 하나도 제대로 보기는 어렵다.


에든버러에 소개해 온 공연의 장르가 퍼포먼스와 무용, 음악, 전통공연 등으로 한정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환경에서 한국 연극을 평가받고 싶지는 않았다.


2017년 연락이 온 한 극단 덕분에 코리안 시즌의 선정 장르는 그 한계를 넘을 수 있었다. 연극 ‘흑백다방’은 2인극이었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지만, 넓게 보면 어디에나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 대해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텍스트가 가진 힘이 워낙 강한 연극이라 선정을 머뭇거리게 했지만, 상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인지하고 있는 언어 장벽을 해결할 방법.


2인극. 2명의 배우. 부담 없이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월 한 달간의 짧지 않은 공연 일정을 한국 배우와 영국 배우가 나눠서 공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 관객들은 우선 친숙한 영국 배우의 공연을 볼 것이다. 그리고는 같은 대본으로 연기하는 한국 배우들의 공연이 궁금해질 것이다. 하루씩 번갈아 하는 공연. 홀짝홀짝.


극단의 대표이기도 한 연출에게 1차 번역된 영문 대본을 요청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미 ‘가이’를 떠올리고 있었다. 긴 세월 서로의 작품을 응원해 왔지만, 그와 같이 작업할 기회는 없었다. 가이는 텍스트에 힘이 실린 연극을 하는 배우이자 연출이었고, 나는 퍼포먼스, 뮤지컬, 음악극을 만드는 연출이자 제작자였다.


가이에게 대본을 보내고 일정을 협의해 나갔다. 반갑게도 그는 호주 애들레이드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시차의 불편함 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1차 리딩을 마치고 대사를 수정해도 되겠냐고 조심스레 물어왔고, 리딩이 거듭될수록 영어 대본은 생명력을 얻으며 탄탄해졌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그는 슬픈 소식을 전해왔다. 25주년을 맞는 2018년이 자신의 인생에 가장 바쁜 해가 될 것 같다는 얘기와 함께, 자신이 연출하는 2개의 신작과 다른 프로덕션과 공동 제작을 약속한 작품 3개, 그에 더하여 자신이 배우로 출연하는 앵콜공연까지 계획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이는 너무 마음 아프지만 자신이 욕심을 부렸다며, 다른 공연에 피해가 가면 안되기 때문에 몇 개의 스케줄은 정리해야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25주년 기념공연을 취소하라고 말할 순 없었다. 전적으로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순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배역에 애들레이드에서 자신과 리딩을 함께 한 배우 니콜라스를 추천했다. 사진과 리퍼런스를 보내왔지만 자세히 볼 이유가 없었다. 나는 가이의 판단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보낸 대본을 그냥 한번 읽어본 게 아니다. 이미 수차례의 리딩을 하며 대사를 수정한 장본인이었다. 캐릭터 분석이 뛰어난 이 배우이자 연출이 추천한 배우라면 신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때 형사였으나 지금은 심리상담을 하고 있는 중년 남성 캐릭터’.

아쉬운 마음에 나의 작은 마음은 여전히 가이가 연기했다면 강함과 부드러움의 콘트라스트가 더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놓지 않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그가 추천한 배우 니콜라스가 해석한 캐릭터가 연극에는 더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나의 기획과 예상은 기쁘게도 모두 적중했고, 연극은 그다음 해 앵콜공연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가이와 나는 정확히 어디서 처음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됐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마도, 아니 분명히 1999년 레인바에서 인사를 나눈 수백 명의 아티스트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기억에 없는 첫 만남 이후에 어느 해의 어느 순간부터 친구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매년 8월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서로를 발견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커지고 커져 어느 순간 친구를 넘어 가족 같은 사이가 되어 있었다. 긴 시간과 함께 겹겹이 쌓인 신뢰는 가랑비에 옷 젖듯 깊어져 갔다.


2020년 2월.

나는 네덜란드 26개 도시 투어 공연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일주일을 보낸 후 런던으로 향했다. 윌리엄이 지난 4년간 심혈을 기울여 리노베이션 한 리버사이드 스튜디오가 마침 재오픈한 상태였고, 공연 이외에 영화도 상영하는 이 극장에서 윌리엄은 첫 상영작으로 ‘기생충’을 선택했다고 했다. 나는 공연장도 둘러보고 올해 코리안 시즌에 선정한 공연 관련 이야기도 나누고, 웨스트앤드에서 보고 싶었던 공연도 몇 개 관람할 계획으로 런던 방문 일정을 잡았다.


마침, 제2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극작가 톰 스토파드Tom Stoppard의 신작이 오랜만에 웨스트앤드에 올라간다는 기사를 읽은 후였고, 연극 ‘레오폴드슈타트leopoldstadt’는 운 좋게도 내가 방문하는 기간에 상연되고 있었다. 런던에서 연극을 함께 보기에 가이보다 좋은 친구는 없다.


1899년부터 1955년까지 비엔나에서 생활한 유대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은 공연 후 우리의 술자리 대화를 가족 이야기로 이끌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는 아니지만, 외부의 환경이 가족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등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밤이 깊어질 무렵, 이야기는 어느새 가이의 20대로 넘어가 있었다.

이미 수차례 들었던 삼촌과의 유럽여행 이야기. 나는 중간에 끊지 않고 풀버전으로 그의 여행기를 다시 한번 들었다. 그의 삼촌인 리차드 버튼은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은 배우이자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받은 셀럽 중의 셀럽이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두 번째 남편이기도 한 그와 가이의 여행은 연기를 공부하던 젊은 가이에겐 신세계였던 듯하다.

예약하지 않고도 모든 곳에서 환대를 받았던 셀럽 이야기. 지금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그 시절 일반인은 상상도 못 했을 개인의 차를 배에 실어 국경을 넘은 이야기, 여권 따위 필요 없이 삼촌의 얼굴이면 모든 게 해결됐던 그의 여행담은 지금 같으면 ‘갑질 논란’에 휘말릴 법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흑백영화처럼 펼쳐지는 그의 여행 이야기는 낭만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이야기의 내용은 변함이 없을 텐데, 이야기를 듣는 나의 기분은 매년 달라진다. 나이 탓인가… 쌓여가는 시간과 함께 경험하게 되는 삶의 우여곡절이 똑같은 이야기에도 새로운 감정을 입히는 것 같다. 그의 눈처럼 하얀 머리와 수염을 바라보다 나는 문득 내가 보지 못한 그의 초창기 연극이 궁금해졌다. 1995년 그가 연기한 그의 삼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의 밤은 가족 이야기를 담은 공연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얘기와 함께 8월을 기약하며 마무리되었다.


PS.
2018년은 어셈블리 극장장이자 예술감독인 윌리엄의 ‘38번째 프린지’, 옥스퍼드 플레이하우스 예술감독인 루이스의 ‘30번째 프린지’, 독일 프로모터 친구인 닐스의 ‘22번째 프린지’, 그리고 나의 ‘20번째 프린지’였다.

서로의 나이를 묻지 않는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매년 올해가 ‘몇 번째 프린지’인지 카운팅하고 있다. 새로 만난 공연계 사람들과 얘기할 때도 은근슬쩍 이번이 자신의 ‘몇 번째 프린지’인지 어필하고, 대략적인 나이를 계산하고 있을지도 모를 상대에게 빠르게 ‘계산하지 마! Don’t Calculate!’이라고 덧붙인다.

작년 말부터 윌리엄과 어셈블리 공연장은 4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의 축제를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73년 만에 처음으로 개최되지 못한 축제에 대해 우리는 '숫자 세기'를 멈추고 다 함께 1년을 유예하기로 했다. 어셈블리의 40주년은 그렇게 앞에 New를 붙여 41이 아닌 ‘New 40th’으로 2021년을 준비 중이다.


by 엔젤라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