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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o Jan 02. 2021

귓가에 여운처럼 남는 city pop

L에게

https://youtu.be/OMWTf1ORqco





City POP


1970~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낭만적인 분위기의 음악 사조를 두루 부르는 명칭이다.

펑크·재즈·프로그레시브락 등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에서 유래한 주요 음악적 요소와

신디사이저와 같은 전자악기를 결합하여 도회적 세련미를 보여주었던 음악으로,

일본에서 초기에는 '시티팝스'라고 불리다가 1970년대 후반 '시티팝'으로 정착되었다.


 - 출처 : 다음백과


형형색색 led 불빛이 빛나는 밤거리가 연상되는 음악.

City POP.
세련되고 신나는 사운드 속에서도

노랫말은 지극히 감상적이라
음미하며 듣다보면 가슴 한편이 쓸쓸해지기도 한다더라.


그녀를 떠올릴 때면

가에 자동 재생되듯 시티팝이 흐른다.


화려한 외모와 수려한 언변 속에
소녀감성이 은연중에 튀어나오는 반전 매력을 가진 L.




그녀는 총무과에서 대리 직책을 맡고 있던 직장인이었다.
나는 L의 업무를 돕기 위해 고용된 단기 아르바이트생이었고.


회사의 수년치 세금계산서를 분류하는 작업이었는데
문서 분류 알바가 대개 그렇듯 '꿀알바'였다.
쉬웠던 업무보다 만족스러웠던 건

견학하듯 접한 주변 환경이었다.


그곳은 국내 출판사 중에서 손에 꼽는 대기업이었다.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유명 출판사에서의 아르바이트는
집돌이였던 내게 즐겁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팀 단위로 구획된 사무실에서
누군가는 차분히 서류 작업을 했고
누군가는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열정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회의한다며 찻잔을 들고 세미나실로 향하는 모습도 보았다.
글밥 먹는 회사는 이런 분위기구나...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다.


나는 칼같이 빳빳한 슈트를 입은 직장인들과 함께 출퇴근했으나
표정에 깃든 고단함을 눈치채지 못했고
대리석 바닥에 조명이 반사되는 빌딩에서 식사를 해결하며
여기 음식들이 왜  비싼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20대 중반이었지만

동년배에 비해 많이 어리고 미숙했다.

각진 바위가 세상의 풍파를 거치며
바닷가에서 둥글둥글한 몽돌이 되는 과정을 겪듯
나 역시 여리여리한 유년기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내게 다가온 첫 풍파, L과의 시간들이었다.


문서를 날짜별로 분류해서 정리하는 단순 업무였지만
회사에게는 예민한 세금계산서에 대한 일이었다.
업무지침이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어

담당자의 컨펌을 받기위해 하루에 3번 정도를 찾아갔었다.

L의 데스크는 회사 입구의 로비에 있었고
그녀는 그곳에 꽃처럼 앉아있었다.



정작 그녀가 건넨 답변에는 업무적인 것보다
나를 향한 사적인 질문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서류더미로 어지러운 데스크 위에

간식거리를 꺼내놓고 인사를 건네던 L.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중한 자투리 시간을

나와의 대화 따위에 쓰지 않았을 테니까...


차갑고 서늘했던 업무담당자의 모습에서
아침에 커피빈에서 마신 고소한 라떼를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까지.
L과 가까워지는 시간들이 얼마나 설레고 즐거웠던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낯선 사람에게 들려주는 일.
그녀가 내게 건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아, 내가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웃고 떠드는 내 모습이 낯설기까지 했다.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은 파티션이 설치된 책상에
자신을 쑤셔 박듯 앉아서 수백 통의 전화를 받고
모니터 속 문서가 내뱉는 끝없는 단어들을 마주 하는 일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과 배려를 잊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그녀를 찾아갈떄면 본인 업무를 일단 다 밀어 두고 '응대' 해줬다고 한다.
사소한 거 하나하나를 신기해하는 어린애처럼 느껴져서
하나라도 가르쳐주고 싶어 도저히 대충 보낼 수가 없었다나...


다년간의 직장생활로 다져진 세인지

그녀 자신의 AURA였는지

L의 상냥함과 소소한 관심 앞에서
나는 무장해제당해버리고 말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웃어주었고
낯 간지러운 허세에도 귀 기울여주던 그녀.
가히 우문현답에 가까웠던 대화들.
나는 그 즐거움에 흠뻑 빠져있었다.


전년도 겨울에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이듬해 3월을 맞이하기 직전에 끝이 났고
그 후에도 그녀와 나는 누나 동생 관계를 유지했다.




대학생이 되어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그녀의 연락은 특별한 시간으로 날 인도했고
만날 때마다 긍정적인 기운을 가득 북돋아주었다.
사회생활의 선배였고 든든한 멘토로써 존재해준 L.


대학 동기들과 교수님 험담과 취업 걱정 따위

영혼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마다
가끔 그녀와 나누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얼마나 더 이런 시간을 보내야 어른이 되는 걸까...


업반이 되어 학점관리와 스펙 쌓기에

나 역시 여유 없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L과 연락하는 빈도는 점차 줄어만 갔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회사를 옮겼고
나 역시 졸업반이 되면서

서로 연락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눈치챘겠지만, 이제야 말하건대 나는 그녀를 좋아했었다.
시간이 지나며 쌓아온 관계에 대한 소중함이 더 컸기에
차마 이성적인 호감을 표현하지 못했을 뿐.



직장인이 되어 회사에서 험난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그녀와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L의 상냥한 말투 속에 드리워진 그늘을 느낄 수 있었고
이 사람 진짜 웃긴다며 풀어대는 썰 속에 가려진 고충을 헤아릴 수 있었다.


마냥 화려하기만 해 보였던
그녀 역시 갑질에 시달리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일중독에 시달리며 때로 위로받고 싶어 했던 여자였다.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은.


녀의 소소한 표현들을 알아채기에는

나는 너무나 어리고 서툰 '쪼렙'이었고.

지난 시간들을 추억하고 감사를 전달하기에는
L마지막 통화기록 까마득히 오래 돼있더라.
카카오톡이라는 게 생기고 난 후 그녀의 프로필을 보며
연말연시마다 인사를 썼다 지우기를 몇 해를 반복했던가.




'너는 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야'


언젠가 술자리에서 자학성 짙은 찌질한 발언을 늘어놓던

내게 건넨 L의 위로.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과 부정적인 사고관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우리네 인생은 결국 어깨가 무거운 직장인A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본인만의 방법을 찾으라고.


L의 충고 덕분에

나는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의무는 성실히 수행하되
삶의 다른 가능성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력의 결과물을 그녀에게 공유했을 때 받았던 평가는
때로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주며

삶의 동력이 되어주기도 했다.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이제는 그녀의 술잔에 cheers를 외치며
덕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L과의 거리는 해가 갈수록 멀어져만 간다.


인연의 끈이 점점 가늘어지더라도
부디 끊기지만은 않기를 소망한다.


누나.


누나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누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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