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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o Dec 26. 2020

내게 드리워진 나무 그늘

J에게


누구에게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억이 있다.

좋은 감정이 남아 있다면 추억이라 명명하지만
자다가 이불을 걷어찰 정도로 흑역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의 행적이 현재에 영향을 끼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지나버린 후에 남는 감정은
무덤덤함과 피식거림 사이에 위치할 것이다.


가끔 인터넷에 추억팔이 게시물을 읽거나
철없던 시절이 오버랩되는 상황에 처할 때면
나는 과거를 곰곰이 곱씹어 보며 처연해지곤 한다.



PC통신.


나의 사춘기를 지배했던 강렬한 존재.

내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던 커뮤니티에 댓글을 달던
온라인에서 글자로 행하는 모든 행위의 기원이다.


PC 통신하며 낄낄대던 10대 시절이
내겐 그저 오래된 과거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 해가 지날수록 나의 지나간 세월은 흐릿해져 간다.
감정이 생생하던 날들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기억은 재개 APT단지처럼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더 늦어지기 전에 한 번은 꼭 글로 나마

PC통신을 하던 과거의 나를 회고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도 함께.


글자로만 존재했던 그 많았던 이름들 중에

유일하게 현실로 튀어나와서
나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시간 동안

친구가 되어줬던


J.


90년대 당시 컴퓨터 성능이나 보급률도 처참했지만
PC 자체가 고가인 데다

접속을 위한 전화비도 부담되는지라 

PC통신 유저들은 소수였다.
유저들 중에 중학생은 더 지분이 적었고.

PC통신 자체가 아직은 주류의 문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당시를 관통하던 감정의 결은

대부분 아웃사이더 적인 감성이었다.
요즘 유행어로 중2병, 싸이월드감성이 태동하던 시대.


학교생활에 영 적응하지 못하던 열다섯 살의 나는
스펀지처럼 타인의 감정들을 흡수했고 영향을 받았다.

표현하기보다는 눈팅을 주로 하던 내게

J는 어느 순간 갑자기  들어왔다.

동류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투와 발상 비슷했다.


지루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공간에서 처음 만나
유독 내게 살갑게 대해주던 J를 실제로 만나게 된 건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돌아갈래 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호시절이었다면 참 좋았으련만

나의 어린 날은 지루하고 답답했다.

방과 후 대부분의 시간을 PC통신을 하며 보냈다.


그러다 영화 '접속'이 개봉하고 인터넷 유머가 빵 뜨면서

PC통신이 주류의 문화에 편승하게 됐을 때
나는 놀이터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상실감에 빠졌다.


감정의 '결'이 다른 사람들의 침략처럼 느껴졌다.
익숙했던 공간은 급격하게 낯선 것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결국 컴퓨터 앞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잉여의 삶을 반강제적으로 끝마치게 되었다.

고교 진학 후 달라진 학습환경과 무거운 의무감이
깨를 짓눌렀고 사춘기가 시작됐다.


나와 동갑내기였던 J를 다시 만나게 된 곳은
우연히 들린 E넷의 락음악 커뮤니티에서 였다.


그때는 인터넷이 무려 실명제였다.
ID 옆에 실명이 쓰여있다.
본인의 생일을 ID로 쓰고

여전히 '감정의 결'을 유지하고 있는
J를 몰라볼 수는 없었다.


다시 시작된 인연.


내가 잘 모르는 외국의 록 음악을 추천하는 그녀에게
낯설음과 동경같이 느꼈다.

그녀가 즐겨 듣던 김동률, 라디오헤드,

자우림의 음악을 따라 듣고
락 커뮤니티의 인기글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현실이 지루하고 따분할지라도
그 속에서 본인만의 취향을 발견했다면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하고
즐거움에 대한 추구를 게을리하지 마라.


그 당시 정립된 삶의 문장은 지금 이 순간도 유효하고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이런 류의 Rock Spirit.



스무 살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J는 노란 머리를 하고 잘 웃어주던 사람이었다.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라디오의 새벽 방송 DJ 같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갓 스무 살이 된 발랄한 여자였다.


불행히도 나는 그 당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만화가 지망생이었지만 기본기가 없었고
노력해야 할 시간마저 일용직으로 하루를 보내기 급급한 절망적인 스무 살.

꿈을 도피처 삼아 분노와 허무에 빠져있던 그 시절.

그녀와의 대화는 종종 공감할수 없는 별나라 이야기였고
나는 냉소와 개드립(;;)으로 일관하곤 했다.


알고 지낸지 오래되었지만 서로가 낯선 상황.

그녀와 나 사이에는 파도치는 바다만큼의 거리감이 있었다.
우리는 처지가 다른 suffer였고 갈 길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연락을 주고 받았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관계가 좀 더 가까워진 계기가 있다.

그녀가 자신의 대학교 축제에 나를 초대해준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전공하고 멋진 친구들 속에 쌓여있는

J와 반나절을 함께 보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군생활을 하며, 전역하고 나서도 날씨 좋은 봄날이면

이 날의 추억을 무던히도 곱씹으며 힘든 날을 버텨왔던가.


J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부채감을 느낄 정도로 많은 걸 받아왔다.
J가 알고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철없던 10대 시절을 그리워하고

찬란한 20대 시절 추억하는 게
나는 서툴고 좋은 기억마저 딱히 없다.


내가 J에게 느끼는 고마움의 가장 큰 지분은

우울감에 허우적대던 그때를 함께 해주었다는 것이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웠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J가 알려준 음악들이, J가 소개해준 친구가,

J가 들려줬던 소소한 일상들이
어두운 시간을 헤쳐 나오는데

많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었다.


그 후 나는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고, 직장인이 되어,

가끔  글을 쓰고 사진도 찍고 있다.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의지에

J가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마음 한편에 그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다.




그 후 나도 바빴지만
세상 역시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정신없이 변하더라.


문득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얼마 전부터는 변하는 건 없고 나만 늙어가고 있었다.

풍성하던 잎사귀는 다 떨어지고
이제 나뭇가지마저 말라가는 고목처럼.


10대와 20대의 예민했던 날들동안
J는 내게 나무 그늘 같은 사람이었다.
알게 모르게 휴식과 위로가 되어주던...


어느 날 문득 나무 그늘은 사라져 있고
나 자신도 어느새 강렬한 뙤약볕에 익숙해지며
그늘 없는 삶에 적응해 있더라.


지난날을 돌아볼 겨를 없이 정신없이 살다가

잠을 몰아자듯 기억을 거슬러가다 보면

문득 감수성 폭발해서 이런 글이 쓰여지기도 한다.


때로 우연히 듣게 되는 음악이
기억을 공유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커뮤니티의 인기글이라고 올라오는 사진에서

가끔씩 J를 떠올리고
그녀에게 안부를 묻고 지나온 과거를 회상한다.


잘 지내고 행복하기를.

어렸던 지난 날을 추억할때

나라는 람이 가끔은 불쑥 떠올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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