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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o Jan 18. 2021

세상과 불화하는 남자의 영화 - 더 레슬러(2008)

어린아이들이 골목에서 뛰놀며 왁자지껄하던 내 유년시절.

토요일 오후만 되면 다들 집으로 들어가 동네가 조용했다.

구몬학습이나 씽크빅 때문이 아니라 TV를 보기 위해.

AFKN에서 방송되는 WWF 레슬링 프로그램은

또래 소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지금도 눈을 감으면

레슬러들과 고유의 기술들, 사운드가 생생하다.

짜고 친다는 루머성 팩트로

풍선처럼 팬덤이 사그라들었지만

나는 남들보다 좀 더 오랫동안 레슬링을 좋아했다.

브록 레스너가 더락을 때려잡고 난 이후부터는

이전처럼 마음이 뜨겁지는 않더라.


그때쯤 K-1 같은 이종격투기가 유행하고

나 역시 성인이 되어 축구와 게임에 빠져

레슬링은 내 머릿속에 추억으로만 존재했다.


레슬링뿐 아니라

소소한 것에 환호하던

설레는 삶은 나이 먹을수록 서서히 멀어져 갔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야구'는 선수들이 공과 빠따로 루는

참혹한 전쟁이었음을


화려한 조명 아래서 춤과 노래, 연기를 할 수 있는

'연예인'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데뷔한 이후에도

대중의 반응에 따라 매 순간 생존의 기로에 서는 청년임을


빳빳한 정장을 입고 용돈을 쥐어주던 대기업 다니던 삼촌은

사실 구조조정의 한파를 버텨가며

위태로운 40대를 보내고 있었음을


알게 될 때쯤에는


나 역시 전쟁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삶을 살아내는 아저씨가 되었다.


'더 레슬러'의 미키 루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아이고 저 아저씨 참 짠하네 였고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이게 남 얘기가 아니구나ㅠㅠ 로

감상이 바뀐 건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스포츠 영화에는 두 부류가 있다.


우생순, 국가대표 같이 갈등과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성취를 이뤄내는 전형적인 형식의 드라마.


그리고 장르의 탈을 쓰고 인생을 성찰하는 예술영화.


'더 레슬러'는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


전성기가 끝나고 B급 행사를 뛰는 프로레슬러 로빈,

아니 랜디의 삶이 망가져 가는 과정을

담담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걸로 영화는 진행된다.


건강이 위태롭고 가족과 소원하고

주머니도 허전한 상황.

그런 와중에도 랜디는

스트립바에서 서비스도 받고

동네 꼬마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몸 관리를 위해 태닝과 스테로이드도 복용하며

꾸역꾸역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레슬링 선수들은 그를 신뢰하거나 존경했고

사인회에서 만난 팬과 사진도 살갑게 찍어준다.

다만 사생활 측면에서 보면 아쉬웠다.

딸과 불화하고 마약에도 능하고(?)

화려한 젊은 날과 비교해 가진 것도 많지 않다.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중에도

관객의 환호성이 환청으로 들리는

레슬링밖에 모르는 순진한 바보였던 랜디.


단지 좋아하고 몰두했던 분야가

사양길을 걷는 프로레슬링이었고

그 세계에서 밥벌이를 한다는 이유로

치른 대가는 만신창이가 된 몸상태와

빈곤한 노년이었다.


랜디에게서 우리네 아버지들,

베이비부머들의 삶이 떠올랐다.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살아남기 위해 본인의 시간을

갈아 넣을 수밖에 없었던 젊은 세월을 보낸 그들.


전산능력과 영어로 무장한 후배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난 뒤 은퇴한 그들에게

가정은, 가족은 따뜻하지만은 않다.

자녀와의 이미 어색해진 관계로 대화가 잘 안되고

배우자에게는 삼식이라는 이름으로 구박받는다.


가장 많은 우울증 환자가 많은 연령대가

50대 이상의 남성이라는 통계가 있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1OIJRFVEZP


레슬링 무대의 탑로프에서

지난날의 회한과 감격이 교차하는 얼굴로

관객석을 바라보는 랜디.


20대 때 '더 레슬러' 영화를 봤을 때는

이 장면에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아픈 몸에도 꿋꿋이 자신을 증명하는구나.

뭐 이런 정도의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지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감상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엔딩곡이

유독 가슴이 시리다.




호시절이 끝난 뒤 사양산업으로 지칭돼도

여전히 자신들의 분야에 머물러 있는 장인.


코로나로 라이브클럽 무대가 없어져 버린 인디밴드.


소속사와 재계약을 끝나고 잊혀진 아이돌 멤버.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2010년 드래프트 출신의 프로스포츠 선수들.


30년간의 직장생활이 끝나고

재취업에 실패하여 일용직을 알아보던 퇴직자들...


이들에게서 랜디의 모습을 본다.

거울 속의 나에게서도.




지인들과는 연말의 생존 여부를 묻는 안부가 고작이고

번 아웃된 몸으로 퇴근하고 나면 손가락 까딱할 힘이 없다.

디스크 때문에 늦잠도 잘 수 없는 주말에는

문화생활은 커녕 밀려있는 가사에 허우적대며 시간을 보낸다.


하루 동안의 의무에서 마침내 해방된 홀로의 시간.

언젠가는 좋은 날을 오리라며 행복을 유보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현재가 된 미래의 시점에서 글을 쓴다.


마트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랜디'를

견딜 수 없었던 미키 루크처럼

관리자들과 민원인에게 '을' 로써 존재함을

견딜 수 없는 자아가 나에게는 딱히 없다.


기업의 '을' 이 되기 위한 12년의 교육과정을

견뎌낸 덕분일까.


하지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남자라면

나이를 먹을수록 공감할 수밖에 없는 영화.


좋았던 날들을 속절없이 보내고

지리한 중년과 고단한 말년만을 남긴

남자들을 위한 영화.


대략적인 개요와 결말을 안다고 해서

2차, 3차 감상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인생영화.


더 레슬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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