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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o Feb 19. 2021

공무원의 시보떡 문화가 비판받기까지

얼마 전 다음 카페 인기글에 올라온

'공무원 인수인계 현실'에 대한 글이다.

https://dloere4.tistory.com/8901


교육행정직으로 임용 된 신임자의 고군분투를

다룬 글인데 직렬이 다른 나 역시 격하게 공감한다.


'출납검사 결재 올리라고 해서 그게 뭐냐고

되물었더니 전임자가 한 거 뒤져보라고 한다'

는 대목에서 이르러서는 박수까지 치면서 읽게 되더라.


대한민국 대부분의 직장의 일자리들이

실무교육기간이 짧고 현장에 내던져지듯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미국 간호사처럼 업무 적응기간을 6개월 이상 주는 경우는

말 그대로 다른 나라 이야기일 것이다.


커리큘럼에 따리 신임자를 교육하고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프리셉터를 붙여주기는 하지만

정작 업무의 핵심적인 능력은 도제식 학습을 통해 배양된다.


대부분의 조직이 프리셉터가 신임자의 적응과 교육에만

매진할 정도로 인력이 충분하지 않고

잦은 인사이동 탓에 인수인계 자료를 만드는 데

소홀한 탓이다.


빵꾸난 업무 수습하고 선배에게 된통 깨져가며,

야근 달아놓고 전임자가 작성한 문서를 뒤져가며,

업무를 한 해 반복하면

비로소 한 명의 믿음직한 직원이 탄생한다.


시대는 21세기하고도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신임자를 큰 사람으로 키워내는

직장 내 교육에 있어서는

쌍팔년도의 망령 같은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공무원이 신규로 들어되면 6개월 간의 '시보'기간을 거쳐

임용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시보 기간이 끝나면 동료직원에게 돌리는 것이 시보떡.

이게 최근에 문제가 되어 장관까지 나서서

조사하라는 말이 나왔다.


http://naver.me/GWFZBhzO


언론의 의혹맛집 공공기관에서 터진 잡음답게

시보떡 문화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대체 시보떡 같은 문화는 왜 생겨난 걸까.


도가니(2011)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사립학교에 임용된 후
일정 금액을 제단에 기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돈을 대출하여 상납한 후 씁쓸한 표정을 짓는 주인공.


영화 속 썩어빠진 비리에 경멸감을 느끼면서
말단 직원에 대한 '착취'의 경험이
내게도 있었음을,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음을 떠올렸다.


군인 시절, 신병교육대에서 교육을 마치고
자대로 배정받자마자 A급 군화라며
선임과 강제로 교환했던 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내가 간호대학 재학할 때
선배에게 졸업반지를 선물하는 문화가 있었다.
1학년 때 1만 원, 2학년 때 2만 원, 3학년 때 3만 원
을 각출하여 졸업생에게 반지를 해주는 것.


소액이라면 소액일 수 있고

어차피 졸업할 때 받으니까
불합리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졸업생이 되어 받은 반지는 투박하고 조악했다.


국가고시 때 받은 도시락과 더불어

반지 제작이 총학생회 용돈벌이 수단일 수도 있었겠다
라는 킹리적 갓심마저 들었다.
http://omn.kr/1mnyr


rn.bizza님의 '리얼 간호사 월드'라는 웹툰을 보면
야간근무마다 팀의 간식을 준비하는 막내 간호사가 나온다.
사비로 간식 챙기는 것도 충분히 비극적인데
선배라는 작자는 롤케이크 샀다고 막내에게 '꼽'을 준다.

https://www.instagram.com/rn.bizza/


나 역시 bizza님과 비슷한 경험이 있다.

야간근무 때 간식 사가는 건 다반사였고

여자 친구에게도 사주지 못한 백화점 화장품을

사다 바친 기억이 있다.


신규 간호사로 입사하면
해당 부서에서 프리셉터를 붙여
대략 1달간의 트레이닝을 거친다.


트레이닝을 마치고 '독립'을 하면

신규 간호사가 프리셉터에게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드려야 한단다.


그 선물이란 게 백화점 코스매틱 제품이었다.
디X르 향수, 에X띠로더 갈색병 같은

고가의 제품들을 요구했고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조직에 속했던 보통의 사람들처럼
부조리에 대해 감내하고 참는 방법을 선택해왔다.
불합리했지만 순환된다는 측면에서
어쩌면 공평하다고 생각했고
악습의 되물림을 차단할 용기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크게 반성한다.


시간이 지나며 (존버 하다 보니)
나 역시 연차가 쌓였고 중견직원이 되었다.
신규가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근무했고
가르친 멘티에게 선물을 받기도 했으며
시보떡을 먹으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간호대학의 졸업반지 , 직장선배에게 선물 상납

시보떡 등 많은 부조리가 세상에 알려지며

조직에서 사장되고 있음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 긍정적인 변화의 이유는 뭘까?


시민의식이 성숙해진 걸까?



아니면 선배의 도제식 가르침이 없어도

참고할 레퍼런스가 많은 시대의 편리 덕분일까?


나는 후자라고 본다.


라인을 타거나 선배의 노하우를 흡수하지 않고는

동기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는

조직문화는 이제 끝났다.


각자도생 하는 시대이다.


내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조직의 병폐에 대해

토로할 수 있는 공간은 넘쳐난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휘발된 시대에

조직에 애착은 갖되 과잉 충성할 필요까지는 없다.


선배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는

친밀감이 크게 좌우됐고

조직에 무리 없이 스며들기 위해서는

시보떡이 아니라 시보'쇠고기'라도 바칠 기세였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다만 아쉬운 건 있다.


시보떡 옹호론자들은 말한다.

신임자들이 시보떡을 사는 순간이
신임자가 최초로 동료를 위해 주머니를 여는 날이라고.


24시간 돌아가는 소방서의 경우
현장활동을 수행함에 있어서 삼시 세 끼는 부족하고
간식을 사는 건 대부분 선배의 몫이기 때문이다.


일반직 공무원들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보떡은 본인을 동료로 받아주어서 감사하다는
신임자의 인사이고
본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을 어필할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처럼 내려오는 악습으로 인해
어느 한 사람이라도 불편하거나
부담감을 준다면 없어지는 게 맞다.


내가 안타까운 점은

조직의 불합리함이 도태되는 과정이

상향식 건의와 타당성 검토 같은

내부적 자정작용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


이게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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