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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o Nov 21. 2021

갚지 못한 마음

K에게

첫사랑이 진행되던 10대 시절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엉터리 같은 시간들' 이었다.

 

한 과목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교육정책이 실시되고

일본문화가 수입되어 한국대중문화의 위기라며

호들갑을 떠는 뉴스가 나오고

예언에 따른 말세가 도래했다는 괴담이 떠돌았다.

흉흉한 시절이었다.

 

그 날들의 한 가운데에서

나의 사춘기는 시작됐다.

 

공부에 의욕 같은 건 없었고

소심한 성격과 몸치인 탓에

유년시절이 막 행복하거나 좋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건 게임과 만화, TV쇼 정도였다.

 

16세가 되던 그 해, 나는 중3이 되었다.

학급에는 선행학습을 진행한 학우들이 많았다.

시험 때만 벼락치기로 공부하던 내 성적은

그들에게 도저히 비벼볼 수 없었다.

 

처참한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내게 성적향상에의 의지는 거의 없었지만

부모님께서는 나를 인근의 보습학원에 등록시켰다.

대학교는 진학해야 사람 구실은 하지 않겠냐며.

 

강제로 가게 된 학원은 생소했다. 낯설었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작은 교실과

아이컨택 잦은 강사와

과다한 숙제가 무척이나 낯설었다.

학업에 예민한 몇 몇 녀석들은 껄끄러웠다.

적응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한 명 한 명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봉지과자와 빨대 꽂은 음료수 하나로

깨발랄한 대화를 오래도록 나눌 수 있던 시절이었다.

 

어느덧 무리 없이 집단에 녹아있는 나를 발견했다.

16세라는 나이의 마법인가...

 

같은 수업을 듣던 친구들 중에

유독 눈에 띄던 사람이 있었다.

 

두툼한 다이어리에 스티커 사진을 도배하고

원색의 후드티를 곧잘 소화해내던 그 아이.

요즘 유행어로 인싸 그 자체였다.

이제는 마흔쭐이 된 소녀를 '그녀'라고 지칭해보자.

 

그녀는 마주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마법 같은 화법의 소유자 였다.

숨 막히는 미모는 둘째 치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 않던

우리는 공통의 관심사 하나로 급속도로 친해졌다.

불세출의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덕분이었다.

케이블 음악방송의 뮤직비디오만 보고

패션잡지만 탐독할 줄 알았던 그녀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푹 빠졌있다니, 의외였다.

 


멋진 그림체 때문에 재밌어 보여서 감상했는데

끝까지 봐도 내용이 애매모호해서 답답했단다.

전설로 추앙받는 걸작 애니메이션이지만

에반게리온은 기승전결이 깔끔한 작품이 아니다.

한국어 더빙을 거치면서 삭제된 내용도 많고...

 

나는 PC통신과 인터넷에서 검색한 TMI를 썰로 풀었다.

 

서드 임팩트.

싱크로율이란 무엇인가.

레이의 비밀.

왜 사도는 지구를 침공하는가. 등등등...

 

이런 것들을 열심히 공부해서 그녀에게 설명 했다.

무언가에 대해서 설명 하는 건 지극히 주관적이었다.

나의 감상과, 나의 감정이 오롯이 담겼다.

 

소심하고 우울한 주인공들이 나오는 에반게리온을 통해

우리는 서로 닮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등 떠밀려 억지로 로봇에 탑승한 만화 주인공의 상황과

삼위일체가 되어 서로의 감정에 공감했다.

우리의 싱크로율(!)은 그 누구보다 높았다.

 

사회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황량하고 막막했지만

만화-비디오 대여점, 오락실, 피시방 등

10대들에게는 신세계가 펼쳐지던 시절이었다.

 

게임과 만화에 빠진 nerd였던 내가

그녀와 친해지며 비로소 자존감이라는 게 생겼다.

나도 여자사람과 친해질 수 있구나.

씹덕이지만 관심을 받을 수 있구나.

일반인 코스프레는 이렇게 하는거 구나.

 

나는 그녀와 나눌 대화를 매 순간 시뮬레이팅했고

생각을 글로 남기는 버릇이 생겼다.

 

불평불만 가득했던 nerd였던 내가 변했다.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기고

이런 날이 오래되길 바라는 소망도 생겼다.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에 열심히 했다.

그녀에게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랐다.

 

우리는 행복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첫사랑이 그러하듯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의 어느 여름밤 이었다.

그녀는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갈 거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석차를 낮춰 달라는 요청을 받았단다.

인문계 갈 학생들 앞길을 막지 말아달라며.

우리가 살던 곳이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었던 탓이다.

 

학원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더 이상 학원 다니며 공부할 필요가 없다면서.

많은 걸 캐묻고 싶었지만 싸늘한 표정에

차마 대화를 더 이어나갈 수 없었다.

모든 정황이 원치 않는 유학임을 시사했다.

 

나에게 정떼기를 하듯 냉담한 자세에

관계는 차츰 소원해졌고

예전 같지 않은 어색한 분위기가 자주 연출되었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잠깐 알고 지낸, 이제는 연락할 일 없는

사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잔인한 시간들이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될 무렵

소문을 통해서 그녀의 근황을 들었다.

 

계획했던 유학은 취소되었고

진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부모님이 하던 사업이 크게 휘청였고

'일부러' 낮춘 내신 성적 탓에

인문계 지원이 불가하다고 했다.

우울증으로 심리치료를 받는다며.

 

97년 겨울 외환위기로 인한 IMF 사태가 터졌고

그로 인한 환율폭등 유탄을 그녀가 맞은 것이다.

 

자국의 경제가 폭삭 망해버린 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삭막하고 냉랭해진 사회분위기를 읽을 수 있게 된 건

좀 더 나중의 일이었다.

  

비극적인 일 이었다.

 

아쉽게도 그녀가 유학을 가지 않았다고 해서

한번 소원해진 관계가 다시 복구되는 일은 없었다.

 

용기를 내어 전화통화를 10분 정도 했다.

근황토크.

그 중심에는 이런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난 지금 너 같은 거와 친해질 여유 따위는 없다는 것.

힘드니까 날 좀 내버려둬.

안타까운 마음이 끓어올랐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방법,

친한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방법,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마인드. 기타 등등등.

나에게 누구보다 큰 긍정적인 영향을 줬던 그 사람.

그녀에게서 그녀를 만나기 전 나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녀 덕분에 어두운 터널을 헤쳐 나왔는데

정작 나를 구원해 준 그녀는 더 깊은 갱도에 빠져버렸다.

 

어떻게든 도움의 손길 건네고 싶었지만

그녀 안에 드리워진 어둠을 걷어낼 힘이 내겐 없었다.

 

나는 약하고 미미한 존재였다.

사무치는 자괴감과 슬픔 속에

1997년의 남은 며칠을 보냈다.

새해가 밝아도 춥고 시린 겨울은 이어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그녀의 소식에 집중했다.

 

관계는 끊겼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낙엽처럼 바짝 말라있더라도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싱싱한 푸르름을 이내 회복했다.

10대가 끝나고 스무 살이 될 무렵까지

계절이 순환하듯 보내지 못한 마음은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싸이월드 사람 찾기 기능 덕분에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연락이 닿았다.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반가웠다.

 

그녀의 사진들과

그녀가 남긴 일기장

그녀의 친구들과 주고받은 방명록

 

다행히 우울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일촌을 맺고 전화번호를 받았다.

싸이월드가 유지되는 동안,

휴대폰 서비스가 유지되는 동안

이제는 그녀와 연락이 끊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섣부르고 멍청한 예상이었다.

 

긴 세월동안 응축된 보내지 못한 마음은

오래도록 그녀를 맴돌았다.

밥 한번 먹자 커피 한잔 하자 주말에 만나자

공염불처럼 건네던 제안은

나의 군 입대를 앞두고 극적으로 성사됐다.

 

그 만남에서 나는 오래도록 간직했던

지난날의 감정을 토로했다.

 

아... 그랬어?

 

꽃바람이 불거나 별빛이 내리는 일은 없었다.

당시 유행하던 허무개그 스러웠다.

몇 초의 침묵 후에 우리는 깔깔 웃었다.

 

과거를 함께 회고하는 건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던 사이였던 건 맞다.

걱정하는 마음은 알고 있었단다. 반응하지 않았을 뿐.

내가 당신을 좋아했다는 건 전혀 몰랐었다고 한다.

자신에게 유독 오지랖이 넓었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2002년.

월드컵을 치르고

군대에 입대하고

첫사랑과 5년 만에 재회하다.

 

그녀를 좋아했던 마음은 아쉽게도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내 안에 온전히 남아 있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떠나보낸 기억은 없는데.

 

얼마 전 에반게리온 완결편 극장판을 보았다.

25년만의 완결...

온갖 추억보정으로 열여섯의 그 날들로

날 보내주었다.

 

같이 봤다면 참 좋았을 걸.

 

마음은 늪같고

과거의 기억은 깊은 곳에 퇴적되어 있다.

지나간 감정을 끄집어 낼 수는 있다.


그녀가 내게 건넨 상냥함은

부채감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 깊게 침잠해 있었다.


꺼내어 가끔은 환기라도 시키고 싶건만

이런 마음이 드는 날의 빈도는 해가 갈수록 줄어다.


그게 참 아쉬웁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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