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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o Dec 27. 2020

을의 집단에 군림하는 생태계 교란종

행정감사 싫어요


해가 저문 오후 6시이지만 홍주임은 도무지 퇴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5시부터 배달 야식 맛집을 검색하다 칼퇴근한 옆자리 김주임이 야속하다.

업무를 공유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아직 안 끝난 일이 산더미인데..!!


본부장이 과거에 서로 소통하라고 없애버린 파티션이 아쉽다.

차라리 몰랐으면 배가 부글부글 끓지나 않을 텐데...


2년에 한 번 돌아오는 마법의 시즌, 행정감사.


어느 조직이나 업무가 집중되거나

사업비를 많이 지출하는 부서는 정해져 있고

감사 담당자들은 대개 그런 부서를 집중적으로 조진다.

일을 열심히 한 죄로 핑퐁게임의 패배자가 되었고

생산한 문서량이 많으니 뒤져볼 것도 많다.


행정감사 중이라고 기존의 업무가 마비라도 됐으면 좋겠지만

일상 업무는 반복되고 팀장님께서는 실무에 관여하지 않는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와중에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들린다.


'최근 3년간 XX업무 관련 내용 파악합니다. 익일 12시까지 보고 바랍니다'


홍주임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망한 한숨을 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가령 이번 지원금을 집행한 문화재단에 기자와 국회의원들이 자료를 달라고 요청하는가 보더라. 그래도 기자들 요청자료는 건건이라 괜찮은데 국회의원들은 ‘다 달라’고 한다. ‘문준용과 관련한 자료를 대선 이후 2017년부터 싹 다 내놔라’ 이런 식이다.


 전해 듣기론 이번에도 지원자 천 몇백 명의 서류를 모조리 챙겨달라고 했다더라. 업무량이 실로 어마어마한 거다. 그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아니지 않나. 이런 일은 처음이라 매뉴얼도 없다고 했다. 문화재단 담당자들에게 미안하다. 미안해서 더는 못할 것 같다. 이젠 내가 미워서 안 뽑아줄 것 같다.”


그러곤 꼬집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여튼 이건 잘못된 일이다. 진짜 행정력 낭비다. 국회의원들이 정치에 대통령 자식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가. 그 때문에 행정력을 낭비하는, 정말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

https://news.v.daum.net/v/20201227133008480



부당한 지원금 수령이 의심된다며

몇 년치 자료를 요구했단다.

죽어나는 말단 실무진들.

서울문화재단과 일면식도 없지만 내용만 봐도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돌아버리겠다ㅠㅠ


행정감사를 마치고 선술집에서 만난 홍주임,

내근업무 때문에 행정과에서 근무하는 나의 동기는

이때만 되면 돌아버리겠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지적사항을 만들어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고픈 감사단과

승진을 앞두고 재임기간 동안 흠결을 남기고 싶지 않은 팀장님 사이에서

그저 '끌려' 왔을 뿐인 본인만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단다.


외근에서 일하던 시절과 대비해

월급은 월급대로 줄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은 더 줄어들었다며.

그렇다고 승진이 빠른 것도 아닌데 행정감사까지 받으려니

돌아버리겠다고 하는 말하는 동기에게서 측은함을 느꼈다.


행정감사가 왜 힘들까.


행정감사 기간 중 가장 힘들다고 꼽는 부분은


최근 3년 치 자료를 정리해서 제출해달라고 요청하기.

 ㄴ 전날 저녁에 연락해서 다음날 정오까지 달라고 경우가 있음.


전임자가 처리한 업무를 왜 그렇게 했냐고 소명 요청하기.


업무처리 관련해서 내용이 충돌하는

공문을 인용해 잘못했다고 지적하기.


등 등이 있다...


행정망 내부 게시판에 실무자들이 힘들다고 토로하고

공무원 노조에서 1인 시위를 해도

언론을 포함해 일반시민들도 이런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

법적절차가 준수지 않은 갑질인데 말이다.

국감국조법에 의하면 자료요구는 본회의, 상임위원회 또는 국정감사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것은 오만한 횡포,갑질 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라는 갑을 섬기는 을의 집단,

그 곳에 군림하는 생태계 교란종들에 의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해서 누군가 해야 하는 업무.

사기업이 담당하기에는 수익성이 나지 않아 국가가 나서야 할 일들.

공무원은 사무분장에 맞게 소임껏 일을 하면 된다.


높은 성과를 위해 다툼할 경쟁기업도 없고

사양사업이라고 회사가 없어질 일도 없다.


하지만 여기에 정치적 의도를 갖고

성향이 다른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자료를 요청하고

본인의 조직 내 입신양명을 위한 행동을 취할 때

말단 공무원들은 말 그대로 죽어난다.



최근 10년간 서울시 공무원 연도별 자살자는 2011년-2012년 각 1명, 2013년-2016년 각 2명, 2017년 3명, 올해 현재까지 3명 등 총 16명에 이른다. 특히 부상자를 포함한 27명 모두 5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이었다.

https://m.joseilbo.com/news/view.htm?newsid=362618




공노총은 신쌍수 경찰청 노조 위원장과 유관희 경기도청 위원장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정감사 때마다 국회의원의 지역구 민원 해결과 개인 얼굴 알리기를 위한 불합리한 지시를 공무원이 감내하고 있다”며 “이는 곧 지방 고유사무에 대한 간섭이며, 지방자치에 대한 훼손이자 지방정부의 삼권분립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공노총은 “국정감사에 앞서 국회의 ‘고질적인 중복·과다·반복된 자료 요구의 관행을 개선하자’고 촉구했지만, 새롭게 시작된 21대 국회에서도 과거 국회가 보여준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답습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http://www.public25.com/news/articleView.html?idxno=3429


힘들게 들어온 공직활 중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특정부서의 특출 난 몇몇 일꾼에게 과중한 업무가 주어지고

난이도 낮은 단순 업무에 종사하는 월급루팡들이 상당수인

조직이 주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인 걸까.


업무의 부당함에 대해 토로하면

그럼 면직하시고 딴 거 하시라는 쿨가이들 때문인 걸까.


반복되는 비극 앞에서 교과서 같은 문장 한 줄 내뱉고

적극행정 주문하는 그분들 때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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